Sunday, March 11, 2012

Joseon waste stamps par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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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konote.jp/pic/korea/kitte.html
出典:歴史写真 大正3年3月号:歴史写真會


http://blog.goo.ne.jp/nagoya-jp/e/f187982110849575ac272891bfbc7ec4

李花切手
http://komoro1939.blog136.fc2.com/blog-date-201103.html





紙屑になった切手
2006-04-13 Thu 23:53
ライブドアの上場が廃止になりました。まぁ、これでただちに同社の株券が無価値になったというわけではないのですが、高値で購入した人たちにすれば、もはや紙屑同然の代物と言っても差し支えないでしょう。

で、切手の世界でも、実際に発行されたものの、何らかの事情で切手としての効力を失い、紙屑同然の存在になってしまったモノは少なからずあるのですが、今日はその中でも、こんな1枚を取り上げてみることにしましょう。


これは、1884年に発行された李氏朝鮮最初の切手の1枚です。

朝鮮では、改革派官僚であった洪英植を中心に近代郵便創業の準備が進められ、1882年、日本の印刷局に切手の製造が発注されます。切手のデザインは、太極旗(現在の韓国国旗)をモチーフとした雛型をもとに、日本側でデザインを書き起こして作られたものでしたが、日本側の作成した太極文様はかなりデフォルメされており、朝鮮側の用意していた正規のものとは似ても似つかないものでした。

それでも、日本側がつくった5種類の切手の原版は1884年8月9日に完成し、計2万枚が「見本」としてただちに印刷され(5種の注文総数は278万枚)、朝鮮側に納品されています。

こうして、各種の準備が整い、事前の周知・宣伝も行われたところで、同年11月18日(旧暦では10月1日)、ソウル=仁川間で朝鮮の近代郵便が創業。準備されていた5種類の切手のうち、5文(ソウル市内発着の郵便物の基本料金に相当)と10文(朝鮮国内発着の郵便物の基本料金に相当)の2種類の切手が発行されました。

しかし、この計画は、同年12月4日(旧暦では10月17日)に発生した甲申政変により、郵便事業そのものが停止に追い込まれたことですべて頓挫してしまいます。

甲申政変とは、朝鮮の近代化改革をめぐる対立の中で、清朝との宗属関係から独立して国政を革新することを主張する開化派(独立党)が、近代化に抵抗する守旧派(事大党)を打倒して政権を掌握するために起こしたクーデタ事件です。当時の日本は、同じ年に起こった清仏戦争の隙を突いて朝鮮に対する影響力を強めたいとの思惑から、独立党への支援を約束していました。しかし、袁世凱ひきいる清軍は武力介入したため、クーデタはわずか三日で鎮圧されてしまいます。

このクーデタは、約半月前(11月18日)の郵便創業を祝うためのパーティに事大党の政府高官が列席する機会にあわせて実行され、郵征総弁(郵政長官)の洪英植もその首謀者に名を連ねていました。このため、クーデタが失敗し、洪が清軍によって殺されると、朝鮮の郵便事業は、逆賊の行った開化事業として、開業からわずか19日後の12月8日には廃業に追い込まれてしまいます。そして、それに伴い、準備されていた日本製の朝鮮切手は、すべて、郵便料金前納の証紙としての効力を失い、単なる紙屑となりました。

その後、朝鮮の近代郵便は、1895年7月22日(旧暦では6月1日)、日清戦争の戦場となっている中で行われた近代化改革(乙未改革)によって、甲申政変から10年以上が経過した後ようやく再開されました。
なお、このとき、再開された朝鮮郵政の切手製造を担当したのは、日本の印刷局ではなく、アメリカの民間会社アンドリュー・B・グラハム紙幣印刷会社(Andrew B. Graham Bank Notes Co.)です。

まぁ、今回ご紹介している切手の場合、郵便料金前納の証紙としては無効の“紙屑”になっても、切手収集家の間では相応の価格で取引されているわけで、その意味では、「捨てる神あれば拾う神あり」の典型といえるのかもしれません。なお、この切手に関する話は、その昔、『外国切手に描かれた日本』(光文社新書)という本の中で書いたことがあるので、よろしかったら、チェックしていただけると幸いです。

そういえば、ライブドアの株券も、厳密には、まだ“紙屑”になったわけではないのですが、ホリエモンの名前が印刷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株券としての価値とは別に、一種のコレクターズ・アイテムとして人気が出ているとか。もっとも、こちらのほうは、朝鮮最初の切手のように、いまから120年後も人々から見捨てられずに価値を維持できているかどうか、ちょっと疑問ですがね。

휴지가 된 우표 2006-04-13 Thu 23:53라이브 도어의 상장이 폐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것으로 즉시 동사의 주권이 무가치이어졌다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최고치로 구입한 사람들로 하면, 이미 휴지동연의 빌린 물건라고 말해도 지장이 없지요.

에서, 우표의 세계에서도, 실제로 발행되었지만, 어떠한 사정으로 우표로서의 효력을 잃고, 휴지동연의 존재가 되어버린 상품은 적지 않게 있습니다만, 오늘은 그중에서도, 이런 1장을 올려 보기로로 합시다.



이것은, 1884년에 발행된 이(李)씨 조선 최초의 우표의 1장입니다.

조선에서는, 개혁파 관료이었던 홍영식을 중심으로 근대우편창업의 준비가 진행되어, 1882년, 일본의 인쇄국에 우표의 제조가 발주됩니다. 우표의 디자인은, 태극기(현재의 한국 국기)을 모티프로 한 모형을 바탕으로, 일본측에서 디자인을 글을 쓰기 시작해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만, 일본측의 작성한 태극무늬는 상당히 변형되고 있어, 조선측의 준비하고 있었던 정규인 것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비슷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일본측이 만든 5종류의 우표 원판은 1884년8월9일에 완성되고, 계2만장이 「견본」라고 즉시 인쇄되어 (5종의 주문 총수는 278만장), 조선측에 납품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각종의 준비가 정돈되고, 사전의 주지·선전도 행하여진 바에서, 같은 해 11월18일(음력에서는 10월 1일), 서울=인천(仁川)간에서 조선의 근대우편이 창업. 준비되고 있었던 5종류의 우표 가운데, 5글 (서울 시내발착의 우편물의 기본요금에 상당)이라고 10글 (조선 국내발착의 우편물의 기본요금에 상당)의 2종류의 우표가 발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같은 해 12월4일(음력에서는 10월 17일)에 발생한 마사루(甲) 신(申) 정변에 의해, 우편사업 바로 그것이 정지에 몰린 것으로 모두 좌절해버립니다.

마사루(甲) 신(申) 정변과는, 조선의 근대화개혁을 둘러싼 대립 안(속)에서, 청호와의 종속관계로 독립해서 국정을 혁신하는 것을 주장하는 개화파 (독립당)이, 근대화에 저항하는 수구파 (것대당)을 타도해서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일으킨 【구데타】사건입니다. 당시의 일본은, 같은 해에 일어난 기요시(淸) 프랑스전쟁의 틈을 찔러서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싶다라는 의도로부터, 독립당에의 지원을 약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안스카이 거느리는 기요시(淸)군은 무력개입했기 때문, 【구데타】는 불과 사흘이어서 진압되어버립니다.

이 【구데타】는, 약반월앞 (11월 18일)의 우편창업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에 것대당의 정부고관이 열석하는 기회에 맞추어 실행되어, 郵세이(征) 총사투리 (우정(郵政)장관)의 홍영식도 그 주모자에게 이름을 늘어 놓고 있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구데타】가 실패하고, 홍(洪)이 기요시(淸)군에 의해 죽음을 당하면, 조선의 우편사업은, 역적이 간 개화 사업으로서, 개업으로부터 불과 19일후의 12월8일에는 폐업에 몰려버립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르고, 준비되고 있었던 일본제의 조선 우표는, 모두, 우편 요금 전납의 증지로서의 효력을 잃고, 단순한 휴지가 되었습니다.

그 후, 조선의 근대우편은, 1895년7월22일(음력에서는 6월 1일), 청일 전쟁의 전장이 되고 있는 중에서 행하여진 근대화개혁(을미개혁)에 의해, 마사루(甲) 신(申) 정변으로부터 10년이상이 경과한 후 드디어 재개되었습니다.
한편, 이 때, 재개된 조선 우정(郵政)의 우표제조를 담당한 것은, 일본의 인쇄국이 아니고, 미국의 민간회사 앤드류·B·그레이엄 지폐인쇄 회사(Andrew B. Graham Bank Notes Co.) 입니다.

그래도, 이번 소개하고 있는 우표의 경우, 우편 요금 전납의 증지로서는 무효인 “휴지”이 되어도, 우표 수집가의 사이에는 상응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 셈이어서, 그 의미에서는, 「버리는 신 있으면 줍는 신 개미」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이 우표에 관한 이야기는, 그 옛날, 『외국우표에 써진 일본』 (고분샤 신서(신간서적))이라고 하는 책 안(속)에서 쓴 것이 있어서, 좋으면, 체크해 주실 수 있으면 다행입니다.

그러고 보니, 라이브 도어 주권도, 엄밀하게는, 아직 “휴지”이 된 것은 아닙니다만, 【호리에몬】의 이름이 인쇄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은, 주권으로서의 가치와는 달리, 일종의 【고레쿠타즈】·아이템으로서 인기가 나오고 있든가. 가장, 이쪽의 쪽은, 조선 최초의 우표와 같이 , 지금부터 120년후도 사람들에게서 버릴 수 없고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 조금 의문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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