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2, 2012

remnants of soshikaimei ep30 Takeshi Tsujimoto

http://www.asahi-net.or.jp/~fv2t-tjmt/daisanjuudai

第30題創氏改名の残滓
定着している俗説
かつて日本が朝鮮を植民地化していた時代におこなった創氏改名政策について、「日本風の氏名を朝鮮人に強制するもの」と誤解し、戦後の在日朝鮮人たちが日本名を通称として名乗ってきたのは「創氏改名の残滓」であるという俗説が広く定着している。これが根拠のないものであることは、拙論「第12題 創氏改名とは何か」にある通りである。しかしこの俗説が朝鮮関係の専門書でも今なお堂々と書かれているのを読むと、一旦定着してしまった間違いの歴史を訂正することは、なかなか難しいと痛感する。しかし間違いをいつまでも放置するわけにもいかないのである。
創氏改名について簡単におさらいすると、それは日本名を強制するものではなく、それまでの朝鮮の伝統になかった家族名を新たに創ることを強制するものであった。従って例えば戸主が「金」さんという家の場合、「金本」と創氏を届け出ればその家族全員が「金本氏」となり、もし届け出なければその家族全員を「金氏」とする、という制度が創氏改名である。前者の場合を「設定創氏」と言い、後者の場合を「法定創氏」と言う。そして後者のように「金」「朴」といった民族名のままで創氏した割合は、朝鮮人全体の2割であった。
戦後の在日朝鮮人は、100%近くが通称としての日本名を持っていた。1970年代以降に本名を呼び名乗る運動が展開されて、日本名を持たない在日も多くなったが、それでも90%以上が日本名を持つ(任栄哲氏の1990年調査『朝鮮学報』141)。かつての創氏改名では2割が先祖伝来の朝鮮名をそのまま創氏したのであるから、戦後の在日のほとんどが朝鮮名ではなく日本名を名乗ったというのは、その数字からして「創氏改名の残滓」ではあり得ないものである。

創氏改名の残滓の例
在日朝鮮人の法律相談事例に次のようなものがあった。子供のころに帰化した在日が、その後民族問題に悩み、民族名を取り戻そうと家庭裁判所に「金」姓に変更するよう申し立てた。裁判所は「同通称名(金)が申立て人の家族の氏として社会的に定着している」という理由でこの申し立てを認める審判を行なった(京都家審昭和62年6月16日)。このなかで「家族の氏」というものが朝鮮民族の伝統にないもので、かつ現在の韓国・北朝鮮の家族法制にもないものである。「家族の氏」という考え自体が創氏改名の一番の狙いであり、従ってこれこそが「創氏改名の残滓」なのである。
今はお亡くなりになったが、昔お世話になった在日大韓キリスト教会の牧師さんのお名前は「洪」さんであった。その奥さんが自分の名前を「洪(こう)」と称したのでお聞きしたところ、「本当は裵(はい)なんですけど、日本では女性は結婚すると男性の名前に変えるでしょう。だから私もそうしているの。」と大らかにおっしゃった。つまり一家の主人の名前である「洪」をファミリーネームとして家族も名乗るのであるから、これは創氏改名の狙いどおりの行為であり、従って「創氏改名の残滓」と言うべきものである。

朝鮮民族はなぜ家族名がないか
朝鮮民族は男系の血縁共同体が非常に強固に維持されてきたところである。これを一般には「宗族」と呼ぶが、朝鮮人自身は「門中」と呼ぶ。男系中心であるから、当然男尊女卑は非常に厳しい。女性は結婚しても男性の一族に入るわけではなく、実家である男系の血縁を示す「姓」をいつまでも引きずることになる。そして男子を産んで初めてその母として、夫の一族のなかでその存在が認められるのである。つまり厳しい女性差別のゆえに夫婦別姓となり、従って家族で共通する名前を持たない。それが朝鮮民族の伝統的な家族制度である。
このごろ日本で議論される夫婦別姓議論とはかけ離れたレベルであることに注意が必要である。

(追記)
繰り返すが、創氏改名は日本名を強制するものではない。従って在日が日本名を使用しているのを「創氏改名の残滓」と考えることは、歴史事実を直視しない誤った歴史観である。
家族が一つの名前(家族名=ファミリーネーム)を持つ、ということが創氏改名の趣旨である。

제30제 창씨개명의 잔재정착하고 있는 속설 예전에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있었던 시대에 한 창씨개명 정책에 대해서, 「일본풍의 성명을 조선인에게 강제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전후의 재일 조선인들이 일본명을 통칭으로서 자칭해 온 것은 「창씨개명의 잔재」다라고 하는 속설이 널리 정착하고 있다. 이것이 근거가 없는 것은, 졸륜 「제12제 창씨개명은 무엇인가」에 있는 대로다. 그러나 이 속설이 조선 관계의 전문서라도 지금도 당당하게 씌어져 있는 것을 읽으면, 일단 정착해버린 틀림의 역사를 정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우면 통감한다. 그러나 틀림을 언제까지라도 방치하는 셈이게도 가지 않은 것이다.
창씨개명에 대해서 간단히 복습하면, 그것은 일본명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까지의 조선의 전통에 없었던 가족명을 새롭게 만드는 것을 강제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예를 들면 호주가 「돈」씨라고 하는 집의 경우, 「가네모토(金本)」라고 소(創)씨를 신고하면 그 가족 전원이 「가네모토(金本)씨」가 되고, 만약 신고하지 않으면 그 가족 전원을 「돈씨」로 하는,이라고 하는 제도가 창씨개명이다. 전자의 경우를 「설정 소(創)씨」라고 말하고, 후자의 경우를 「법정 소(創)씨」라고 말한다. 그리고 후자와 같이 「돈」 「박(朴)」이라고 한 민족명인채로 소(創)씨 밑 비율은, 조선인 전체의 2할이었다.
전후의 재일 조선인은, 100% 가까이가 통칭으로서의 일본명을 가지고 있었다. 1970년대이후에 본명을 불러 자칭하는 운동이 전개되어서, 일본명을 가지지 않는 재일도 많아졌지만, 그래도 90%이상이 일본명을 가진다 (임무 사카에(榮) 사토시(哲)씨의 1990년 조사 『조선 학보』141). 그전의 창씨개명에서는 2할이 선조전래의 조선명을 그대로 소(創)씨 한 것이기 때문에, 전후의 재일의 대부분이 조선명이 아니고 일본명을 자칭했다고 하는 것은, 그 숫자 로 보아 「창씨개명의 잔재」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창씨개명의 잔재의 예재일 조선인의 법률상담 사례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어렸을 때에 귀화한 재일이, 그 후 민족 문제에 고민하고, 민족명을 되찾자고 가정 재판소에 「돈」성으로 변경하도록 주장했다. 재판소는 「동(同)통칭명 (금)이 주장인의 가족의 씨로서 사회적으로 정착하고 있다」라고 할 이유로 이 주장을 인정하는 심판을 했다 (교토(京都)가심(審) 쇼와(昭和)62년6월 16일). 이 가운데에서 「가족의 씨」라고 하는 것이 조선 민족의 전통에 없는 것에서,동시에 현재의 한국·북한의 가족법제에도 없는 것이다. 「가족의 씨」라고 할 생각 자체가 창씨개명이 제일인 목적이고, 따라서 이것이야말로가 「창씨개명의 잔재」이다.
지금은 돌아가시러 되었지만, 옛날 신세를 진 재일 대한 그리스도교회의 목사의 성함은 「홍(洪)」이었다. 그 부인이 자신의 이름을 「홍(洪) (이렇게)」이라고 칭했으므로 들은 바, 「정말은 裵 (은 있어)이지만, 일본에서는 여성은 결혼하면 남성의 이름에 바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도 그렇게 하고 있어. 」이라고 너글너글하게 말씀하셨다. 즉 한집안의 가장인의 이름인 「홍(洪)」을 패밀리 네임으로서 가족도 자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창씨개명의 목적대로의 행위이며, 따라서 「창씨개명의 잔재」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조선 민족은 왜 가족명이 없을지 조선 민족은 남계의 혈연공동체가 대단히 강고하게 유지되어 온 바다. 이것을 일반적으로는 「종족」이라고 부르지만, 조선인 자신은 「문중」이라고 부른다. 남계중심이기 때문에, 당연 남존여비는 대단히 엄격하다. 여성은 결혼해도 남성의 일족에게 들어오는 것은 아니고, 본가인 남계의 혈연을 내보이는 「성」을 언제까지라도 질질 끌게 된다. 그리고 남자를 낳아서 처음으로 그 어머니로서, 남편의 일족의 안에서 그 존재가 인정을 받는 것이다. 즉 엄격한 여성차별의 때문에 부부별성이 되고, 따라서 가족으로 공통되는 이름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이 조선 민족이 전통적인 가족제도다.
요즈음 일본에서 논의되는 부부별성논의와는 멀리 떨어진 수준인 것에 주의가 필요하다.

(추기) 되풀이하지만, 창씨개명은 일본명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재일이 일본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창씨개명의 잔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사실을 직시하지 않는 잘 못된 역사관이다.
가족이 하나의 이름(가족명=패밀리 네임)을 가지는,이라고 하는 것이 창씨개명의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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