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26, 2012

Yu Gwan-sun in Korean textbook for fourth grader

http://www3.csf.ne.jp/~mrkajp8c/shukudai/text/hangeurirggiutf8.html#yangban

유관순
【Top】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28549







柳寛順 〜小学校4年生〜


유관순은 1902년 3월 15일, 지금의 충청 남도 천안시 병천면 지령 마을에서 태어났다. 유관순의 아버지는 대를 이어 그마을에서 살아온 선비 집안의 후손이었다.

유관손의 집은 그리 넉넉하지는 못하였지만, 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하목한 가정이었다.

柳寛順は1902年3月15日、今の忠清南道の天安市並川面チリョン村で生まれた。柳寛順のお父さんは代々続くその村に住んできたソンビの家柄の末裔だった。

柳寛順の家はさほど裕福だとは言えなかったが、いつも笑い声が絶えない仲睦まじい家庭だった。

어느 날, 아버지는 우관순에게 평소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우리 나라가 일본의 침략을 받고 시달리는 것은 나라의 힘이 약한 까닭이다. 나라의 힘을 기르려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신학문을 배워야 한다."

ある日、父は柳寛順に平素心に留めていた話を聞かせてやった。

「我が国が日本の侵略を受けて苦しめられるのは国の力が弱いからだ。国の力をつけるならば、西洋の文物を吸収して新学問を学ばなくてはいけない。」と。

아버지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여자들도 집안일만 할 것이 아니라, 더 배워서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父は真剣な表情で言葉を続けた。

女性たちも家の中の仕事だけするのではなくて、もっと勉強してくにの働き手にならなくてはいけない。

이처럼 그는 청소년을 잘 가르쳐야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유관순을 서울로 보내어 신학문을 배우게 하였다.

このように彼は青少年たちをきちんと教育してこそ奪われた国を取り戻すことができると考えて、柳寛順をソウルに送って新学問を学ばせた。

1916년, 유관순은 서울 정동에 있는 이화 학당에 입학하였다.

.유관순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방학 동안에는 고향에 내려가 우리글을 모르는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얼심히 글을 가르쳤다.

1916年、柳寛順はソウルにある梨花学堂(梨花女子大学)に入学した。

柳寛順は父の教えに従って、休みの間には故郷に帰り、ハングルを知らない子どもと大人たちに熱心に文字を教えた。

그러나 일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글을 배우는 것을 싫어하였다.

우리글에는 우리 민족의 얼이 담겨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였다.

しかし、日本は我が国の人々が自国の文字を学ぶことを嫌った。

ハングルには我が民族の魂がつまっていると思ったからだった。

일본 헌병이 몇 번이고 훼방을 놓았지만, 유관순은 굽히지 않고 마을 사람들에게 정껏 글을 가르쳤다.

이 무렵, 우리 겨레는 내 나라, 내 땅에서 마음놓고 사는 것조차 힘들었다.그래서 모두가 독립을 애타게 바라며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고 있었다.

日本憲兵が何回も妨害したけれども、柳寛順は意思を曲げることなく人々に心を込めて文字を教えた。

この頃、わが民族は自分の国、自分の土地で安心して住むことさえ難しかった。だから独立を胸を焦がして願いながらいちにちいちにちを苦痛の中で生きていた。

그리하여 온 겨레가 마음을 합하여 일제히 독립을 외치게 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 공원에서 시작된 독립 만세 운동이 바로 그것이었다.

そうして全ての同胞が心を合わせて一斉に独立を叫ぶようになった。

1919年3月1日、ソウルタプコル公園ではじまった独立万歳運動がまさにそれだった。

그날, 유관순도 친구들과 함께 거리로 나갔다. 태극기를 든 남녀노소가 한 목소리로 독립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듀관순의 마음도 뜨거워졌다. 유관순은 친구들과 함께 목이 터져라 독립 만세를 불렀다.

その日柳寛順も友達と一緒に街に出た。太極旗を掲げた老若男女が声をひとつにして独立万歳を叫んでいた。

柳寛順の心も熱くなった。柳寛順は友達と一緒に喉が裂けよと独立万歳を叫んだ。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거리에는 태극기를 든 사람들의 행렬이 거대한 물걸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태극기의 물결은 온 장안을 뒤덮었다.

「大韓独立万歳」「大韓独立万歳」

街には太極旗を掲げた人々の行列が大きな波のように押し寄せていた。

太極旗の波は一帯を覆い尽くした。

일본 헌병들은 닥치는 대로 몽둥이와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아 대었다.많은 사람들이 쓰러졌으나 만세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유관순과 친구들이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여러 선생님과 친구들이 집혀간 뒤였다.

日本の憲兵たちは手当り次第にこん棒と刀を振り回して銃を撃ち続けた。沢山の人々が倒れたけれども、万歳の声は止むことを知らなかった。

柳寛順と友達が寄宿舎に戻ってきたときにはすでに全ての先生と友達が連れて行かれた後だった。

이튼날,일본은 학교 문을 강제로 닫게 하였다. 그래서 기숙사의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유관순도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온 유관순은 독립 만세를 부를 준비를 하였다.유관순은 사촌 언니와 함께 동지들을 모으고, 독립 만세를 부를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다.

次の日、日本は学校の門を強制的に閉めさせた。それで寄宿舎の学生たちは散り散りになった。柳寛順も故郷に戻った。

故郷に戻ってきた柳寛順は独立万歳を叫ぶ準備をした。柳寛順は従姉と一緒に同志を集め、独立万歳を叫ぶ計画を緻密に立てた。

날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찾아다니며 독립 만세를 부르는 일에 함께 참여할 것을 부탁하엿다.

하루 종일 돌아 다니다 집에 돌아오면 몸은 말할 수 없이 피곤하였다. 그렇지만 잠시 찬물에 발을 담그고, 곧바로 가족과 함께 밤새워 태극기를 만들었다.

毎日この村、あの村をたずね歩きながら、独立万歳を叫ぶことに一緒に加わることを頼んだ。

一日中歩き回って家に帰ってくれば、からだは言いがたいほどに疲れた。しかししばし冷たい水に足を浸けて、すぐに家族と一緒に夜明かしをして太極旗を作った。

나이 어린 소녀로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지헤와 용기로 일을 추진하였다.

만세를 부르기로 약속한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밤이 되자, 유관순은 홰를 가지고 매봉에 올랐다.홰에 불을 봍여 높이 쳐들자 여기저기 다른 산봉우리에서도 횃불이 올랐다.

年端のいかない幼い少女とは思えないほど驚くべき知恵と勇気でことを推進した。

万歳を叫ぶことで約束した日が一日前に近づいた。夜になるや否や、柳寛順はたいまつをもってメボン山に上った。たいまつに火をつけて高く掲げると、あちこち他の山の頂きでもたいまつが上がった。

그 횃불들은 다음 날 있을 일을 다짐하는 약속이었다.

아우내 장터에 아침이 밝았다. 새벽부터 장터에 모여든 사람들은 보통 때의 몇 곱절이나 되었다.독립 만세를 부르려고 모인 사림들이 대부분이었다.

そのたいまつは次の日にあることを固く誓う約束だった。

アウネ市場に朝がきた。明け方から市場に集まってきた人々は普通のときの何倍にもなった。独立万歳を叫ぼうと集まった人々が大部分だった。

정오가 되자, 유관순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외쳤다.

"여러분, 반만 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 겨레가 불행하게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습니다.이제 나라를 되찾아야 합니다.

正午になると、柳寛順は沢山の人々の前で叫んだ。

「皆さん、半万年(5000年)の歴史を持つ我が国同胞が不幸にも日本に国を奪われました。今、国を取り返さなくてはなりません。」

지금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두 일어나 독립을 외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만세를 부릅시다. 대한 독립 만세 를!"

순식간에 만세 소리가 온 천지를 뒤흔들었다. 깜짝 놀라 달려온 일본 헌병들은 총과 칼을 휘두르면서, 평화롭게 만세를 부르며 나아가는 사람들을 막았다.

今、全国防防曲曲(津々浦々)で皆立ち上がって独立を叫んでいます。皆さん、万歳を叫びましょう!大韓独立万歳!

瞬く間に、万歳の声が全天地を揺るがした。驚いて駆けつけた日本の憲兵が銃と刀を振り回して、平和に万歳を叫びながら出て行く人々をとめた。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유관순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일본 헌병의 손에 쓰러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흩어지고, 일본 헌병들은 듀관순을 찾느라고 온 마을을 샅샅이 뒤졌다. 유관순은 부모님의 시신을 두고 눈물을 흘리며 피할 수 밖에 없었다.

沢山の人々が死んだり、傷ついた。柳寛順はお父さんとお母さんも日本の憲兵の手に倒れてしまった。

人々は散り散りになり、日本の憲兵は柳寛順を見つけるために全ての村をくまなく探した。柳寛順は父母の遺体をそのままにして涙を流しながら逃げるしかできなかった。

그러나 결국 유관순은 일본 헌병들에게 불잡혀 끌려갔다.일본 헌병대에서 온갖 고문을 당한 뒤에 재판을 받았다.

유관순은 재판을 받을 때에 조금도 굽힘없이 당당하였다. 7년의 징역형이 내려지고, 유관순은 갑옥에 갇혔다.

しかし、結局柳寛順は日本の憲兵どもに捕まって連れて行かれた。日本の憲兵隊であらゆる拷問にあった後に裁判を受けた。

柳寛順は裁判を受けるときに少しも屈することなく堂々としていた。7年の懲役刑が言い渡されて、柳寛順は監獄に入れられた。

그렇지만 우리 나라가 독립을 해야 한다는 유관순의 신념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1920년 어느 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만세를 부르던 유관순은 열아홉의 꽃다운 나이에 감옥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しかし、我が国が独立をしなくてはならないという新年は誰も挫くことはできなかった。

1920年のある日、国を救うために死をおかして万歳を叫んだ柳寛順は19歳のような歳に監獄で息を引き取った。

그러나 유관순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지금도 우리 겨레의 가슴 속에 남아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しかし、柳寛順の国を愛する心は今も我々同胞の胸の中に残って国の大切さを言い聞かせ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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