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22, 2012

the pictures of Japanese enclave in Pusan by Sen Morni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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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박의 작품세계
[출처] 변박의 작품세계|작성자 ohyh45

변박의 1742-1800


부산진순절도 보물 391호 서울 노원구 공릉동 77-1 육군박물관 조선 영조 bomulskmhjseoul


부산진순절도(부분)


432 동래부순절도 보물 392호 서울 노원구 공릉동 산230-30 육군박물관 조선 영조 bomulskmhjseoul
조선 선조 25년(1592) 4월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부산진에서 벌어진 왜군과의 전투장면을 그린 것으로, 크기는 가로 96㎝, 세로 145㎝이다.

432東莱府スンジョルも宝物392号、ソウル市蘆原区孔陵洞山230-30陸軍博物館朝鮮英祖bomulskmhjseoul
朝鮮宣祖25年(1592)4月13日と14日の二日間ブサンジンで行われた倭軍との戦闘シーンを描いたもので、サイズは横96㎝、縦145㎝である。

동래순절도 (부분)

선조 25년(1592) 4월 15일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에서 왜군의 침략에 대응하다 순절한 부사 송상현과 군민들의 항전 내용을 묘사한 그림이다.

비단 바탕에 그린 이 그림은 숙종 35년(1709) 처음 그려진 것을 영조 36년(1760) 화가 변박(卞璞)이 보고 다시 그린 그림으로 크기는 가로 96㎝, 세로 145㎝이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듯한 기법을 사용하여 치열했던 교전의 장면을 화폭에 나타내었다.

중심에 동래성이 둥글게 자리잡고 있고 남쪽 성루를 중심으로 동래 병사들이 수비하고 있으며 이들을 공격하기 위해 왜병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성곽 아래쪽으로는 왜군과 죽음의 결전을 벌이는 장면이 있고, 성곽 안쪽 중심에는 붉은 조복을 입고 북쪽을 향해 앉아있는 송상현의 순절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북문 밖으로는 성을 버리고 달아나는 경상좌변사 이각(李珏)의 무리들이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화면 위쪽의 산은 윤곽선을 선으로 나타내고 점을 찍어 표현하였는데 다소 경직된 모습이다.

작품의 격은 그리 높지 못하고 구도나 형태, 필치 등에서 경직된 면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커다란 국난을 맞이하여 끝까지 항전한 민족성을 표현하여 민족적 교훈을 담고 있다.

. 높은 곳에서 전투장면을 내려다 보듯 묘사하였는데, 그림 오른쪽 중간에 부산진 성곽이 배치되어 있고 그 주변을 왜병 및 왜선이 빈틈없이 에워싼 모습은 아군과 적군의 심한 전력의 격차를 보여준다.

그림의 작품성은 전반적으로 높게 평가되지는 않으나, 나라를 수호하는 민족정기를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宣祖25年(1592)4月15日壬辰倭乱当時、ドンレソンで倭軍の侵略に対応し、スンジョルハン副宋相琦県と郡民の抗戦を描いた絵です。

シルクの背景に描いたこの絵は、粛宗35年(1709)初めて描かれたを英祖36年(1760)画家変拍子(卞璞)が見て、また描いた絵でサイズは横96㎝、縦145㎝である。上記見下ろすような手法を使用して熾烈な交戦のシーンを絵画に示した。

中心にドンレソンが丸く位置し、南櫓を中心に東莱の兵士たちが守備しており、これらを攻撃するために倭兵が幾重にも取り囲んでいる。城の下には、倭軍と死の決戦を繰り広げる場面があり、城の中の中心には赤いジョボクを着て北に向かって座っている宋相琦県のスンジョル場面が描かれており、北門の外には性捨てて逃げるギョンサンジョワ弁士イガク(李珏)の群れが対照的に描かれている。画面上部の山の輪郭を線で表して点を付けて表現したが、多少硬直した姿である。

作品の程度はそれほど高くない構図や形、筆致などから硬直した面がヨトボイギが、大きな国難を迎え、最後までハンジョンハン民族性を表現して民族的教訓を含んでいる。

。高いところから戦闘シーンを見下ろすように記述したが、図の右側中央にブサンジン城が配置されており、その周辺を倭兵と倭船がきっちり囲んだ姿は、敵味方の激しい電力のばらつきを示す。

図の作品性は全般的的に高く評価されないが、国を守護する民族の精気を示す歴史的資料としての価値がある作品だ。




국립중앙박물관 모사도 : 변박필왜관도
1783년(정조7)에 변박이 그린 초량왜관의 전경이다. 조선왕조는 1544년 다른 곳의 왜관은 모두 폐쇄하고 부산포에만 왜관을 설치하였는데, 이후 몇 차례 장소를 옮겨 1678년에 초량왜관이 신축되었다. 이곳에는 조선인 관리 뿐 아니라 일본에서 파견된 500~600명의 일본인이 교대로 근무하였고, 연간 50척의 무역선이 출입하였다. 왜관의 총책임자는 관수라 하였는데 지금의 총영사 역할을 수행하였다. 초량왜관은 조선후기 조선과 일본의 외교.무역의 중심지로서 기능하였다. 그림 상단의 오른쪽에 보이는 설문은 밀무역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며, 설문 아래에 객사가 있고, 객사를 지나 화면 좌측 중각 부분에 일본에서 온 사절을 접대하는 연향대청이 보인다. 그림 오른쪽에는 무역소 및 외교관 숙소가 있었다.




변박의 왜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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