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ly 23, 2012

History of Korean Cost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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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服飾史

겉옷을 더 아름답게 한다. - 속옷에 대해 | 김동주 읽음:95
2010년01월23일(토요일) 11: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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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권씨 합당고, 경기도 박물관 소장


겉옷을 더 아름답게 한다.
속옷에 대해

취재/김현진 사진/월간한복

한복의 속옷은 겉옷의 실루엣을 아름답고 유연하게 나타내주는 역할을 하므로 겉옷을 맵시 있게 입으려면 속옷부터 바르게 갖추어 입어야 한다. 그래서 옛여 인들이 속속곳, 바지, 단속곳, 무지기, 대슘치마 등 여러개의 속옷을 겹겹이 입었 던 지혜를 헤아리게 된다.

옛 여인들은 속적삼, 속저고리, 겉저고리 순으로 3겹을 입었으나, 요즈음은 속저 고리를 안에 입지 않고 뻣뻣한 심을 넣어 입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옷차림은 겉저고리의 보드랍고 유연한 맛을 감소기키므로 반드시 겉저고리가 얇은 감이라 하여도 뻣뻣한 심을 넣지 말고 속적삼이나 속저고리를 만들어 입어야 한다. 다음 에 겉저고리를 입고 안고름을 맨 다음 겉고름을 매고 저고리 모양을 정리한다.

다리 속곳, 속속곳, 속 적삼, 속 버선 등이 있고, 중간 속옷으로 단속곳, 바지, 속치마, 속 저고리 등이 있으며, 그 외에 특수한 속옷으로는 너른 바지, 대슘 치마, 무지기, 가리개용 허리띠 등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이러한 속옷들을 여러겹 입어서 상체는 아담하게, 하체는 부풀려 풍성하게 보이게 했다. 요즈음에는 최소한으로 간단하게 입는데 짧은 속바지, 버선목이 가려지는 긴 바지, 속치마, 속적삼 정도만 갖추어 있다.

*속적삼
홑으로 된 직접 살에 닿는 옷으로 형태는 저고리와 같으며, 치수는 저고리보다 조금씩 작다. 이것은 동정과 고름이 없고 일반적으로 손으로 맺은 단추를 달아 입었다.

*단속곳
바지 위에 입는 속옷으로 일상복에서는 이 위에 치마를 입었으나, 치마보다는 다소 짧은 것으로 양가랑이가 넓으며 밑이 막혀 있는 것이다. 즉, 지금의 속치마를 대신한 것이다.

*고쟁이
치마 안에 입던 바지 모양의 속옷으로 단속곳 밑, 속속곳 위에 입었는데, 남자의 바지와는 형태가 다르며, 밑이 터져 있고 허리끈이 달려 있어 용변에 편리하였다.

*속속곳
바지 밑에 입는 것으로 단속곳과 형태가 같은데, 다만 치수가 단속곳보다 약간씩 작고 바대와 밑길이가 길다. 이것은 살에 닿는 속옷이기 때문에 단속곳과는 감을 달리하였다. 보통 옥양목, 무명, 광목 등이고, 조금 고급으로는 명주 정도의 부드러운 감을 사용하였으며, 여름철에는 특히 베, 굵은 모시, 광당포, 안동포 등을 사용하였다.
*다리속곳
가장 밑에 입는 속옷으로, 속속곳이 없어지면서부터 다리속곳을 흔히 입어 바지가 더러워지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형태는 홑겹으로 된 긴 감을 허리띠에 달아 찼다.

*너른바지
상류사회에서 정장을 할 때 밑받침 옷으로 단속곳 위에 입어 하체를 풍성하게 보이게 한 속옷으로, 특수층에서만 입었다.

*허리띠
살을 타인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당시의 습관에서 여자의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자 저고리와 치마 사이의 겨드랑이 밑 살을 가리기 위해 가슴을 두른 띠이다.

*무지기
부녀자들이 명절이나 잔치 때에 치마 속에 입던 짧은 통치마이다. 길이가 각각 다른 여러 층의 치마를 한 말기에 달아 겉치마 폭이 푸하게 퍼지도록 받쳐 입는데, 치마 끝에 갖가지 물감을 들여 마치 무지개가 선 것처럼 보인다.

*대슘치마
왕족이 사용한 속치마의 일종으로 정장을 할 때 허리는 무지기로써 버티고 아래는 대슘치마로 버티었다. 이 치마는 무지기 밑에 입는 것으로 모시 12폭으로 만들었는데 끌리지 않을 정도의 길이였고 단에는 창호지 배악비를 높이 4 cm 정도로 잘라 모시로 싸서 붙임으로써 겉치마 아래위를 버티게 하였다.

* 속치마
개화기의 신여성 여학도들이 처음 입기 시작한 옷으로 겉치마 속에 입는 치마를 말한다. 겉치마보다는 반 폭 정도 폭을 좁게 하고 길이도 7~8 cm 가량 짧게 하여 주름을 잡아 조끼허리에 달았으며, 주로 흰색 명주나 삼팔, 옥양목, 인조 등을 사용하였다. 끈허리로 하지 않고 조끼허리(어깨허리)를 쓰게 된 것은 이화학당의 미국인 여교장 J.월터의 지도에 의한 것이라 한다. 현재도 한복용으로 사용되며, 인조, 나일론, 면류가 사용된다.

옷 입기는 반 바느질이라고 한다. 아무리 디자인과 바느질을 잘하여도 입을 줄을 모르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좋은 의복 분위기를 조성할 수 없다. 그러나 잘 입 을 줄 알면 그 사람과 그 옷이 각각 있을때보다 더 아름답게 살아날 수 있다. 따 라서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만드는 일과 같이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 옷은 직선과 약간의 곡선이 기본이 되고 있으며 옷선 자체가 아름다 우며 동양적인 생활윤리가 내재되어 있으며 초연하고 한가로운 의복 분위기가 조성 되므로, 마음과 몸가짐을 정하게 하여야 한다.

한복을 예쁘고 개성있게 입으려면 때와 장소와 옷의 형태를 고려하여 입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복이 표현해내는 아름다움을 잃게 되고, 고상한 분위기가 사라진다.


출처:한국한복공업협동조합-<월간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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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 山根 읽음:156
2009년07월11일(토요일) 14:08:38






유물명칭 당의
국적/시대 한국(韓國) 조선(朝鮮)
재질 사직(絲織) 견(絹)
크기 길이 : 71.5 cm / 화장 : 69 cm / 품 : 36 cm
지정구분 중요민속(中要民俗)
용도기능 의(衣) 의류(衣類) 궁중복(宮中服) ()
문양장식 식물문(植物文) 도류불수문(桃榴佛手文) 문자문(文字文) 수복자문(壽福字文)
참고문헌 『의衣』석주선 단국대학교 출판부 1985. 『한국복식사韓國服飾史』석주선, 보진재 1982. 『담인복식 미술관 개관 도록』담인복식 미술관(編) 1999. 『복식류 명품도록服飾類 名品圖錄』고려대학교 박물관 1991. 『우리 옷 이천년』한국복식문화 2000년 조직위원회 편 2001.
소장기관 학교(學校) / 단대석주선(단대석주선) / 의복(衣服)
유물번호 단대석주선(단대석주선) 의복(衣服) 82

상세설명

당의唐衣는 의인왕후의 빈전도감에서 '唐衣'라는 말이 처음 나오듯이 조선조 전기朝鮮朝 前期의 당저고리唐赤古里·당한삼唐汗衫이라고 불리는 긴저고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당의는 궁중에서 소례복小禮服으로 착용하고 반가班家에서는 대례복大禮服으로 착용하였다.

겉은 녹색綠色 단緞 또는 사紗에 홍색紅色 안, 혹은 자주색紫朱色 겉에 분홍색粉紅色 안을 넣어 만든 겹옷인데 여름철에는 사紗·라羅로 홑 당의를 만든다.. 모양은 당코 깃에 소매 끝에는 거들치가 달려있다. 앞뒤자락이 허리선 아래까지 길며, 양옆이 겨드랑이 밑에서부터 트여있다.

도련의 양끝이 옆으로 퍼지면서 아름다운 곡선미를 나타낸다. 비빈妃嬪의 것은 금직金織하거나 금박金箔을 찍고, 양어깨 가슴 등에 보補를 달지만, 상궁이나 사대부 부인의 것에는 금박이나 보를 하지 않는다. 관冠은 화관花冠 혹은 족두리를 썼다.

이 唐衣는 순조의 3女인 덕온공주德溫公主가 16세 되던 해 남녕위南寧尉 윤의선尹宜善에게 하가下嫁하여 첫 동지 명절에 小禮服으로 입었던 唐衣이다. 겉은 紫赤色 도류불수사桃榴佛手紗에 직금수복자織金壽福字를 하고, 안은 紅 명주로 만든 겹 당의이다.

모양은 당코 깃에 소매가 좁고 소매부리에는 흰 거들지가 달려있다. 도련이 반달 모양으로 유연하고 아름다우며 고름은 자주색 명주로 겨우 매는 정도로 짧고 좁다. 1964년 중요민속문화재重要民俗文化財 제 1호로 지정指定되었다.

출처:http://museum.dankook.ac.kr/kor/sch/sch.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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