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10, 2014
Isabella Bird Bishop, Korea and Her Neighbours, London, John Murray, 1898. korean reviews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l 한말외국인기록 21
이사벨라 버드 비숍 (지은이) |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l 한말외국인기록 21
이사벨라 버드 비숍 (지은이) | 신복룡 (옮긴이) | 집문당 | 200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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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양장본 | 456쪽 | 210*148mm (A5) | 593g | ISBN(13) : 9788930306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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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후기(영조~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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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버드비숍(1) 조선시대(1) 조선후기(영조~순종)(1) 한국사(1)
1894년 1월부터 1897년 3월까지 4차례에 걸쳐 조선을 방문한 저자가 쓴 여행기. 서울 및 조선의 첫인상, 왕의 거동, 북한산 여행, 조선의 결혼 풍습, 무속, 단발령 등 조선의 국내 사정과 풍습을 일본, 만주, 연해주 등의 기행문과 함께 실었다.
서장(緖章)
제1장 조선의 첫인상
제2장 서울의 첫인상
제3장 왕의 거동(擧動)
제4장 조선의 성지 서울
제5장 나룻배 여행
제6장 금모래 강변
제7장 떠돌며 본 풍경
제8장 자연이 아름다움 : 북한강 여행
제9장 결혼 풍습
제10장 조선의 조랑말 : 도로와 여관
제11장 금강산 기행
제12장 동해안을 따라서
제13장 청일전쟁의 전운(戰雲)과 제물포
제14장 만주(滿洲)로의 추방
제15장 만주의 대홍수
제16장 봉천과 그곳의 선교사들
제17장 청국 군대의 출동
제18장 나가사키(長崎)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제19장 시베리아에 사는 조선의 이주민들
http://www7.plala.or.jp/juraian/ibirdkor.htm
이사벨라 버드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리고 있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말 외국인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버드는 세계 곳곳을 여행해서 많은 여행기를 남겼지만 1894∼97년 사이에 4차례에 걸쳐 조선을 방문하고 1898년에 이 책을 출간했다.
Isabella Bird Bishop, Korea and Her Neighbours, London, John Murray, 1898.
원문은 아래의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American Libraries Internet Archive
http://www.archive.org/details/koreaherneighbor00bird
한국어역으로는 이인화역(1994)과 신복룡역(2000)의 두가지가 있다. 나라 이름은 이인화와 국어 교과서는 "한국", 신복룡은 "조선"을 사용하고 있다. 이 페이지는 신복룡을 따라 "조선"을 사용한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지음, 이인화 옮김,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살림출판사, 1994.
I.B.비숍 지음, 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집문당, 2000.
여기에서는 이 책이 한국에서 어떻게 옮겨져 읽혀지고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한국어를 교정해 주신 K씨에게 감사드린다.
번역의 문제
이인화역(1994)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아래 기사에 인용된 부분을 보면 문제가 많다. 신복룡역과 대조하면서 표지하겠다.
“멍한 상태로 세상에 걸어나온 한국”[참세상 2010/10/1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52&aid=0001944272
The usual expression is cheerful, with a dash of puzzlement. (p. 13)
이인화: 한국인들의 일상적 표현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활기차다.
신복룡: 일상적인 표정은 약간 당혹한 듯하면서도 활기에 차 있다.
I had known it for a year before I appreciated it, or fully realized that it is entitled to be regarded as one of the great capitals of the world, with its supposed population of a quarter of a million, and that few capitals are more beautifully situated. (p. 38)
이인화: 인구 25만명으로 추산되는 서울은 세계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수도 가운데 하나다. 이만큼 좋은 입지조건을 가진 수도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신복룡: 나는 25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의 거대한 수도 중의 어느 곳도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뜻을 음미하기까지에는 1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I have mentioned the women of the lower classes, who wash clothes and draw water in the daytime. (p. 47)
이인화: 한국에서는 여성들 모두가 최하층계급의 일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신복룡: 나는 하루 종일 옷을 세탁하고 물을 긷는 하층 계급의 여인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The fermented liquors of Korea are probably not unwholesome, (p. 91)
이인화: 한국의 발효된 술은 건강에 좋은 것은 아니었다.
신복룡: 한국의 발효된 술들은 아마도 건강에 해롭지는 않겠지만…
After the landlord had disturbed the dust, Wong put down either two heavy sheets of oiled paper or a large sheet of cotton dressed with boiled linseed oil on the floor, and on these arranged my camp-bed, chair, and baggage. (p. 125)
이인화: 주인이 대충 먼지를 치우고 나면 왕씨가 기름을 먹인 두 장의 두꺼운 종이와 함께 아마인유를 입힌 커다란 양털 요를 바닥에 깔아주는데 이것은 여행 동안 나의 야전 침대로, 의자로, 보자기로, 아주 유용했다.
신복룡: 여관 주인이 한바탕 먼지를 일으킨 후에 왕(王) 씨는 마루 바닥에 두 장의 두꺼운 기름종이나, 혹은 아마(亞麻)씨 기름칠한 한 장의 대형 기름종이를 깐다. 그리고 그 위에 나의 침대, 의자, 짐 따위를 설치한다.
The operation of making salt from sea water is absolutely primitive, and so rough and dirty that the whiteness of the coarse product which results is an astonishment. (p. 158)
이인화: 계획적으로 만든 염전도 있는데 소금 만드는 공정은 완전히 원시적이다. 이렇게 만든 소금은 울퉁불퉁하고 지저분해서 순도가 매우 떨어진다.
신복룡: 바닷물로 소금을 만드는 작업은 매우 원시적이다. 그토록 거칠고 지저분한 소금이 끝내 백색으로 바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Mr. Heidemann, a German from the Baltic provinces, (p. 223)
이인화: 하이드만은 발칸 출신의 독일인으로…
신복룡: 하이드만(Heidemann) 씨는 발틱령서 온 독일 사람으로…
Her Majesty, who was then past forty, was a very nicelooking slender woman, with glossy raven-black hair and a very pale skin, the pallor enhanced by the use of pearl powder. (p. 252)
이인화: 왕비는 마흔 살을 넘긴 듯했고 퍽 우아한 자태에 늘씬했다. 윤 나는 칠흑 같은 흑발에 피부는 너무도 투명해 꼭 진주빛 가루를 뿌린 듯했다.
신복룡: 왕비 전하는 그 당시 40세가 넘었으며 매우 멋있어 보이는 마른 체형이었으며 머리는 윤기가 흐르고 칠혹같이 검었으며, 얼굴빛은 상당히 창백했는데 그 창백함은 진주빛 분을 발라 더욱 희게 보였다.
A turnip lay beside them, and some small children cut pieces from it and presented them mockingly to the blackened mouths. (p. 264)
이인화: 고장난 회중시계가 길에 떨어져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시계를 분해해 개에게 물어뜯긴 시체의 입 속에 장난으로 처넣었다.
신복룡: 그들의 곁에는 무를 깎은 부스러기가 버려져 있었는데, 몇몇 어린애들은 그것을 집어들고 손으로 조각조각 찢어서 그들에게 던지며 거무튀튀한 입으로 조롱하듯이 지껄이고 있었다.
So far I have followed the Hiroshima judgment in its statement of the facts of that morning, but when it has conducted the combined force to ''the inner chambers" it concludes abruptly with a "not proven" in the case of all the accused ! (p. 271)
이인화: 나는 이 내용을 히로시마 법정의 판결문에 따라 서술한다. 나는 그 재판을 시종일관 지켜보았다.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를 작은 내실로 안내하더니 잠시 뒤 나와 불시에 모든 피고인에게 ‘증거 불충분’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신복룡: 나는 그날 아침의 사건에 대한 진술을 담은 히로시마(廣島) 재판의 기록을 추적해 보았지만 연합 세력들은 안쪽 방에까지 들어갔다고만 되어 있을 뿐, 갑자기 모든 혐의자에 대해 증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It is estimated that from 2,000 to 4,000 men were slain, with thousands of horses and bulls, (p. 317)
이인화: 2~4천명의 중국군인과 사람들이 학살됐다.
신복룡: 2,000-4,000명에 이르는 병사가 수천 마리의 말과 소와 함께 죽은 것으로 추정되었고,
and recent policy contrasts unfavorably with that pursued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ascendency, which,on the whole, was in the direction of progress and righteousness. (p. 431)
이인화: 일본이 한국에서 행한 정치는 야만적이고 잔인했지만 거시적으로는 한국의 진보와 정의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신복룡: 이러한 현상은 최근 일본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동안 추구되었던 것과 역설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일본의 정책은 대체로 진보와 정의로움의 경향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and Seoul, from having been the foulest is now on its way to being the cleanest city of the Far East ! (p. 435)
이인화: 지저분한 도시였던 서울이 이제는 극동의 제일 깨끗한 도시로 변했다.
신복룡: 지저분했던 서울은 이제 극동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로 바뀌어 가는중이다.
위의 참세상 기사의 저자인 이정호 민주노총 미비실장은 "원산에서 본 천일염을 아주 지저분하고 순도가 떨어진다고 기록한 부분에선 우습기까지 하다"라고 열받아 했지만 우스운 것은 이인화의 번역이다. 신복룡도 이인화역에 너무나 문제가 많다고 보고 새롭게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신복룡역(2000)에도 문제라고 보이는 부분들이 많다. 글자 색깔을 바꾼 부분이 번역에 의문이 있는 부분이다. 오역인지 아닌지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겠다.
It is easy to walk in Seoul without molestation, but any one standing to look at anything attracts a great crowd, so that it is as well that there is nothing to look at. (p. 41)
서울에서 방해를 받지 않고 산책하는 것이 쉽지만 군중들의 관심을 끌며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쳐다보지 않고 지나치기란 쉽지 않다.(p. 51)
There, tired of crowds masculine solely, one may be refreshed by the sight of women of the poorest class, some ladling into pails the compound which passes for water, and others washing clothes in the fetid pools which pass for a stream. All wear one costume, which is peculiar to the capital, a green silk coat - a man's coat with the "neck" put over the head and clutched below the eyes, and long wide sleeves falling from the ears. It is as well that the Korean woman is concealed, for she is not a houri. (p. 45)
사람들에 시달려 지친 남자들은 물을 길어 통에 담거나 악취 나는 물에서 옷을 빨고 있는 하층 계급의 여인들을 바라보며 기분을 전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의 여인들은 이상한 장옷을 쓰고 다니는데 서울에서는 이 모습이 특이하다. 이 장옷은 「목」이 달린 낭자들의 비단 코트인데 이를 머리에 쓰고 눈만 보이도록 소매를 귀 옆으로 흘러내리도록 한다. 조선 여인들은 숨기를 잘 하는데 이는 그들이 매혹적인 미인이 아니기 때문이다.(p. 54)
I never met with anything more disagreeable than curiosity shown in a very ill-bred fashion, and that was chiefly on the part of women. (p. 80)
내가 가는 곳이 한적한 곳이든 마을이든, 특히 여자들이 희한하게 생긴 나의 옷에 호기심을 보이는 이외에는 불쾌한 일이 없었다.(p. 87)
I believe that the fishing industry, with every other, is paralyzed by the complete insecurity of the earnings of labor and by the exactions of officials, and that the Korean fisherman does not care to earn money of which he will surely be deprived on any or no pretence, and that, along with the members of the industrial classes generally, he seeks the protection of poverty. (p. 158)
다른 직업이 다 그렇듯이 어업은 벌이가 불안하고 관리들의 수탈로 마비되어 있으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수탈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하지도 않으며 여타의 노동 계급과 마찬가지로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pp. 155-156)
To those who have only seen the Koreans in Korea, such a statement will be hardly credible. (p. 225)
조선에서 살고 있는 조선 사람에게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p. 220)
Women do not receive any intellectual training, and in every class are regarded as beings of a very inferior order. (p. 340)
여자는 교육을 받아서는 안 되며 어떤 계급의 여성은 매우 낮은 등급으로 취급된다. (p. 332)
Daughters have been put to death by their fathers, wives by their husbands, and women have even committed suicide, according to Dallet, when strange men, whether by accident or design, have even touched their hands, and quite lately a servingwoman gave as her reason for remissness in attempting to save her mistress, who perished in a fire, that in the confusion a man had touched the lady, making her not worth saving ! (p. 341)
달레(C.Dallet)의 말에 의하면 여자는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낮선 남자가 손을 만지면 자살을 했다. 따라서 그런 일이 생기면 몸종은 재빨리 마님을 구출하기 위해, 마님이 불길에 빠지는 순간 그 혼란 통에 어떤 남자가 구해 줄 가치도 없는 자신의 몸에 손이 닿은 것이라고 변명한다. (p. 332)
Offices and justice were bought and sold like other commodities, and Government was fast decaying, the one principle which survived being its right to prey on the governed. (p. 372)
관직과 재판의 판결은 마치 상품처럼 사고 팔 수 있으며 정부는 빠른 속도로 쇠퇴해 있기 때문에 오직 뇌물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원리가 되고 있다. (p. 358)
This partly explains the rush for Government offices, and their position as marketable commodities. (p. 446)
이는 관직과 엄청난 수입이 생기는 지위에로 진출하려는 과열된 성향을 부분적으로 설명해 준다. (p. 424)
I saw the last of Seoul in snow in the blue and violet atmosphere of one of the loveliest of her winter mornings, and the following day left Chemulpo in a north wind of merciless severity in the little Government steamer Hyenik for Shanghai, where the quaint Korean flag excited much interest and questioning as she steamed slowly up the river. (p. 459)
나는 눈이 오는 날 조선의 가장 아름다운 겨울 아침의 푸른 대기 속에서 서울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그 다음 날, 조그만한 증기선인 하이에닉크(Hyenic)호를 타고 강한 북풍을 가르며 상해(上海)를 향해 떠났다. 배가 증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나아갈 때 나부끼는 조선 깃발이 내게 기묘한 흥미와 의문을 주었다. (p. 434)
조선에 대한 평가
버드의 조선인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이고 체력도 지성도 높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건만 이루어지면 일본만큼 부유한 나라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런 조선을 칭찬한 부분은 한국에서 자주 인용되어 왔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하겠다.
조선이 잠재력을 현재화시키고 부유한 나라가 될 조건은 공평성과 사회적 정의가 존중받도록 만들고 지배층에 의한 착취를 금지하고 친구나 친척에 의존해 살아가는 “빈곤의 문화”를 일소하고 무엇보다도 사유재산이 보호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인들에게는 그런 개혁의 능력은 없기때문에 러시아나 일본의 보호국이나 식민지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 버드는 그런 생각을 반복적으로 나타냈고 신복룡도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고는 비교적으로 정확하게 번역하고 있다.
and that there is no hope for her population of twelve or fourteen millions, unless it is taken in hand by Russia, (p. 330)
그들이 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가 낮은 세금과 생업의 보장을 받지 않는 한 1,200~1,400만의 조선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p. 322)
To sum up, I venture to express the opinion that the circumstances of the large population of Korea are destined to gradual improvement with the aid of either Japan or Russia, that foreign trade must increase more or less steadily with increased buying powers and improved means of transport, and that the amount which falls to the share of Great Britain will depend largely upon whether British manufacturers are willing or not to adapt their goods to Korean tastes and convenience. (p. 395)
요컨대 조선은 일본이나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점차로 진보할 것이며 해외 무역은 구매력과 개선된 수송 수단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영국에 할당되는 몫은 영국의 제조업자들이 조선 사람들의 취향이나 편리함에 그들의 상품을 얼마나 적응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나는 감히 지적하고자 한다. (p. 376)
That reforms are not hopeless, if carried out under firm and capable foreign supervision, is shown by what has been accomplished in the Treasury Department in one year. (p. 448)
탁지부(度支部)가 설립되었던 것에서 보여지듯이 개혁이 확고하고 유능한 외국의 감독 하에 수행된다면 전혀 가망 없는 것도 아니다. (p. 425)
Korea, however, is incapable of standing alone, and unless so difficult a matter as a joint protectorate could be arranged, she must be under the tutelage of either Japan or Russia. (p. 457)
그러나 조선은 혼자 힘으로 지탱될 수 없으며, 그러한 어려운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조선은 일본이나 러시아의 보호 하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pp. 432-433)
and her integrity and independence are at the mercy of the most patient and the most ambitious of Empires, whose interests in the Far East are conflicting, if not hostile. (p. 459)
조선의 영토 보전과 독립은 가장 끈기 있고 야심찬 제국의 손에 달려 있다. 극동에서의 그러한 이익은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p. 434)
I. As Korea is incapable of reforming herself from within, that she must be reformed from without. (p. 452)
첫째로 조선 내부로부터의 개혁이 불가능할 때, 외부로부터라도 개혁되어야 한다. (p. 429)
마지막 글은 "조선 내부로부터의 개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이어야 되지만 신복룡은 너무나 자존심이 상해 의도적으로 오역을 한것 같다.
본서에는 좋은 평가도 있는 반면 조선의 가난함과 불결함, 조선인의 게으름과 과음, 예의 없는 여자들, 부정 부패한 관리들, 비열한 착취를 일삼은 양반들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많다. 시인인 김수영은 그런 부분에 충격을 받아 "거대한 뿌리"(1974)에서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라고 했다. 그런 부정적 평가는 긍정적 평가와 비교하면 알려지지 않은것 같기 때문에 원문과 신복룡역을 인용하겠다.
A miserable place I thought it, and later experience showed that it was neither more nor less miserable than the general run of Korean towns. Its narrow dirty streets consist of low hovels built of mud-smeared wattle without windows, straw roofs, and deep eaves, a black smoke hole in every wall 2 feet from the ground, and outside most are irregular ditches containing solid and liquid refuse. Mangy dogs and blear-eyed children, half or wholly naked, and scaly with dirt, roll in the deep dust or slime, or pant and blink in the sun, apparently unaffected by the stenches which abound. (p. 27)
나는 부산이 처참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나는 그것이 조선 마을의 일반적인 모습이다는 점을 알았다. 좁고 더러운 거리에는 진흙을 발라 창문도 없이 울타리를 세운 오두막집, 밀짚지붕, 그리고 깊은 처마, 마당으로부터 2피트 높이의 굴뚝이 솟아 있었고 가장 바깥에는 고체와 액체의 폐기물이 담겨 있는 불규칙한 개천이 있다. 더러운 개와, 반나(半裸)이거나 전나(全裸)인 채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때 많은 어린애들이 두껍게 쌓인 먼지와 진흙 속에 뒹굴거나, 햇볕을 바라보며 헐떡거리거나 눈을 끔벅거리기도 하며, 심한 악취에도 아무렇지도 않는 것 같았다. (p. 37)
In one sense Seoul is Korea. Take a mean alley in it with its mud-walled hovels, deep-eaved brown roofs, and malodorous ditches with their foulness and green slime, and it may serve as an example of the street of every village and provincial town. (p. 59)
물론 그런 연유로 더운 날씨에 내륙을 여행하게 되었지만 어떤 의미에서 서울은 곧 조선이다. 허름한 뒷골목과 진흙 벽으로 된 오두막집, 깊은 처마가 달린 갈색 지붕, 불결하고 지렁이가 기어다니며 악취가 나는 도랑 등은 모두 마을과 시골의 전형 (典型)이라 할 수 있다. (p. 68)
Yet it has no objects of art, very few antiquities, no public gardens, no displays except the rare one of the Kur-dong, and no theatres. It lacks every charm possessed by other cities. Antique, it has no ruins, no libraries, no literature, and lastly an indifference to religion without a parallel has left it without temples, while certain superstitions which still retain their hold have left it without a tomb ! (p. 60)
그러나 서울에는 예술품이 없으며 골동품이 드물고 공원도 없다. 왕의 거둥 이외에는 볼 만한 것이 없으며 극장도 없다. 다른 도시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서울에는 없다. 서울은 유서 깊은 도시이지만 유적도, 도서관도, 문학도 없으며 최근에는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심하여 사원을 남겨 놓지 않았다. 반면에 아직도 조선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미신 때문에 묘비 하나 남은 것이 없다. (p. 70)
The religion the Korean would accept is one which would show himhow to get money without working for it. The indifference is extreme, the religious faculty is absent, there are no religious ideas to appeal to, and the moral teachings of Confucius have little influence with any class. (p. 64)
조선 사람들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종교는 그 종교를 위해 일하지 않고서도 돈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해 있고 전문적 종교인도 없으며 공자(孔子)의 가르침 역시 어떤 계급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p. 73)
There are no native schools for girls, and though women of the upper classes learn to read the native script, the number of Korean women who can read is estimated at two in a thousand. (p. 342)
소녀들을 위한 토착적인 학교는 없다. 비록 상류 계급의 여성들이 한글을 배운다고 해도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1,000명 중에 2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p. 333)
Narrowness, grooviness, conceit, superciliousness, a false pride which despises manual labor, a selfish individualism, destructive of generous public spirit and social trustfulness, a slavery in act and thought to customs and traditions 2,000 years old, a narrow intellectual view, a shallow moral sense, and an estimate of women essentially degrading, appear to be the products of the Korean educational system. (pp. 387-388)
편협, 관례, 자부심, 거드름, 노동을 경멸하는 잘못된 위선, 이기적 개인주의, 너그러운 공공 정신과 사회적 신뢰의 파괴, 2,000년의 관습과 전통에 대한 정신적-육체적 노예 근성, 편협한 지식, 얕은 도덕심, 그리고 조선 교육 체제의 산물로 나타난 여성을 비하하는 풍조는 조선의 교육제도가 낳은 산물인 것으로 보인다. (p. 370)
한국에서는 자본주의 맹아론과 같은 민족주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김수영과 달리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도 많다고 짐작된다.
일본에 대한 평가
버드는 상당한 친일가이고 일본에 의한 조선 지배를 지지했다. 이 책 곳곳에서 일본군의 규율있고 질서정연한 모습과 일본인들의 청결함과 유능함에 대한 기술들이 있다. 일청전쟁 와중에도 중국과 조선의 군인들은 민폐를 끼쳤지만 일본군은 민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기술도 있다. 반일 감정을 가지는 한국인으로서는 이런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거슬리는 대목이지 아닌가 싶다.
On the slope of Nam San the white wooden buildings, simple and unpretentious, of the Japanese Legation are situated, and below them a Japanese colony of nearly 5,000 persons, equipped with tea-houses, a theatre, and the various arrangements essential to Japanese well-being. There, in acute contrast to everything Korean, are to be seen streets of shops and houses where cleanliness, daintiness, and thrift reign supreme, and unveiled women, and men in girdled dressing-gowns and clogs, move about as freely as in Japan. (pp. 43-44)
남산 비탈에는 단순하고 검소한 흰 목조 건물인 일본 공사관이 위치해 있으며 그 아래로 찻집-극장과 일본인 복지에 대한 기본적이 시설을 갖춘 거류지에 약 5,000명 가량의 일본인이 살고 있다. 조선의 모든 것과 대조적으로, 청결하고 고상하고 검소한 최고의 지배자와 장옷을 쓰지 않은 여인과, 깃이 달린 옷을 입고 게다(けた : 일본의 나막신)를 신은 남자가 일본에서처럼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상점과 집의 거리가 보인다. (p. 53)
During the land journey from Chang-an Sa to Won-san I had better opportunities of seeing the agricultural methods of the Koreans than in the valleys of the Han. As compared with the exquisite neatness of the Japanese and the diligent thriftiness of the Chinese, Korean agriculture is to some extent wasteful and untidy. (p. 160)
장안사로부터 원산까지의 여행기간 동안 나는 한강 계곡에서 보다도 더 조선의 농업 기술을 잘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일본이나 근면하고 알뜰한 중국과 비교할 때 조선의 농업은 다소 낭비적이고 정리되지 못했다. (p. 157)
The people hated them with a hatred which is the legacy of three centuries, but could not allege anything against them, admitting that they paid for all they got, molested no one, and were seldom seen outside the yamen gates. (p. 285)
지난 3세기 동안의 유산이 되어 버린 증오심으로 그곳 주민들은 일본군들을 몹시 싫어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누구도 일본군들에게 반항하는 언사를 보이는 사람은 없었으며 오히려 그들이 갖는 아픔을 받아들이고 관청 문 밖 어느 곳에서도 그들을 방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p. 281)
There, as elsewhere, though the people hated the Japanese with an intense hatred, they were obliged to admit that they were very quiet and paid for everything they got. (p. 304)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백성들은 일본인들을 몹시 미워했으나 조선 사람들은 일본 군인이 매우 얌전하고 그들이 가져간 것에 대해서는 값을 지불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p. 296)
During the subsequent occupation the Japanese troops behaved well, and all stores obtained in the town and neighborhood were scrupulously paid for. Intensely as the people hated them, they admitted that quiet and good order had been preserved, and they were very apprehensive that on their withdrawal they would suffer much from the Kun-ren-tai, a regiment of Koreans drilled and armed by the Japanese, and these had already began to rob and beat the people, and to defy the civil authorities. (pp. 313-314)
그 이후의 점령 기간에 일본 군대는 처신을 잘 했고, 이웃과 상점에서 가져온 물건들에 대해 정확하게 그 값을 지불했다. 주민들은 그들을 매우 미워함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조용하고 그들이 명령을 잘 지킨다는 점을 인정했으나 그들이 후퇴하자 그들에 의해 무장되고 훈련된 훈련대로부터 고통 받을 것을 매우 우려했다. 주민들이 걱정한 대로 훈련대는 사람들을 때리고 강탈하고 군관이 아닌 문관들을 얕보기 시작했다. (p. 304)
Such ameliorations as have been made are owed to Japan, but she had not a free hand, and she was too inexperienced in the role which she undertook (and I believe honestly) to play, to produce a harmonious working scheme of reform. Besides, the men through whom any such scheme must be carried out are nearly universally corrupt both by tradition and habit. (p. 336)
지금 시행되고 있는 계획은 일본에 의한 것이며 조선은 그러한 개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계획의 조화로운 일을 만들거나 역할을 담당하는데 너무 경험이 없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밖에도 그러한 계획을 수행해야 하는 남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전통과 인습으로 타락했다. (p. 328)
At Cha san, as elsewhere, the people expressed intense hatred of the Japanese, going so far as to say that they would not leave one of them alive ; but, as in all other places, they bore unwilling testimony to the good conduct of the soldiers, and the regularity with which the commissariat paid for supplies. (p. 344)
자산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은 단 한 명의 일본인도 살려 보내지 않으리라고 말할 정도로 일본인들을 증오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일본 군인들의 규율이 훌륭했고 그들이 식량을 보급했다는 사실을 마음내키지 않게 증언했다. (p. 335)
The new order of things, called by the Japanese the "Reformation," dates from the forcible occupation of the Kyengpok Palace by Japanese troops on the 23rd of July, 1894. The constitutional changes which have subsequently been promulgated (though not always carried out) were initiated by the Japanese Minister in Seoul, and reduced to detail by the Japanese "advisers" who shortly arrived; and Japan is entitled to the credit of having attempted to cope with and remedy the manifold abuses of the Korean system, and of having bequeathed to the country the lines on which reforms are now being carried out. (p. 372)
일본인들이 추진한 소위 일련의 새로운 개혁(Reformation : 甲午更張)은 1894년 6월 23일 일본 군대가 경복궁(景福宮)을 강제 점령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그 후에 공포된 제도적 변화는 서을에 주재한 일본 공사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잠시 머물렀던 일본인 고문에 의해 세부 항목까지 구상되었다. 당초에 일본은 정부 안의 여러 가지 권력 남용을 개선하고 현재 실행되고 있는 개혁에 관한 노선을 마련해 주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조선의 정치 제도를 일본의 정치 체제와 유사하게 만들려고 했던 견해는 당연하며 비난받을 만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p. 358)
I believe that Japan was thoroughly honest in her efforts; and though she lacked experience, and was ofttimes rough and tactless, and aroused hostile feeling needlessly, that she had no intention to subjugate, but rather to play the role of the protector of Korea and the guarantor of her independence. (p. 453)
나는 일본이 자신의 노력에 충분히 정직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경험이 부족했고, 때로는 거칠고 분별없었으며, 불필요하게 적대 감정을 자극했지만, 일본은 조선을 병합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조선의 보호자, 혹은 조선 주권의 보증인 역할을 하려는 의도였다. (p. 430)
버드는 민비 암살을 기록하면서도 일본을 비난하지 않고 "(일본) 정부는 여전히 동정의 여지가 있다(the Government continues to deserve our sympathy)"고 했다. 이 부분에서도 신복룡의 번역은 의문스럽다. 글 전반은 가정법으로 "일본으로서 그 이상의 위심 실추는 없을것이다"라는 의미이고 "실추되지 않았으며"는 오역이라고 생각된다.
A heavier blow to Japanese prestige and position as the leader of civilization in the East could not have been struck, and the Government continues to deserve our sympathy on the occasion. (p. 278)
동방 문명의 선두 주자로서의 일본의 위신은 실추되지 않았으며 일본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외국 공사들의 동정을 구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p. 274)
버드는 친일가이기는 하지만 러시아보다 일본을 더 지지한 것은 아니다. 그의 입장은 조선의 지배자가 러시아이든 일본이든 괜찮지만 계속 조선인들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어교과서에 나타난 이사벨라 버드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 사용된 부분은 물론 민족주의적 반일교육에 거스르지 않는 부분들이다. 만약 "불결하고 냄새가 지독한 서울에서 일본인 거주지만은 청결하고 고상했다"나 "일본군은 치안을 잘 유지했지만 떠나가자 마자 조선인부대가 민폐를 끼치기 시작했다"와 같은 부분이 실리면 학생들은 화가 나고 역사 선생님들은 곤란할 것이다. 사용된 네 부분은 각각 "한국인의 모습", "한국의 수도 서울", "한국식 빨래", "한국의 여관"이라는 제목이 붙혀져 있다. 모두 번역에는 문제가 없다.
먼저 "한국인의 모습"은 원서 12-13페이지에 대응하고 조선인의 외모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 부분에는 "한국 사람들은 분명히 잘생긴 인종이다"나 "사람들의 체격도 좋다"와 같은 외모에 대한 칭찬이 있다. 그러나 교과서의 인용은 "한국 사람들은 매우 잘 걷는다"라는 부분에서 끝나고 있다. 이 직후에는 가족제도나 지성에 대한 찬양이 계속되는데도 불구하고 수록되지 않았다. 마치 교과서 편찬자가 외모지상주의자이고 외모가 아닌 찬양은 알려줄 필요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The families are large and healthy. (p. 13)
가정은 대가족 제도이며 건전하다. (p. 25)
Mentally the Koreans are liberally endowed, specially with that gift known in Scotland as "gleg at the uptak." The foreign teachers bear willing testimony to their mental adroitness and quickness of perception, and their talent for the rapid acquisition of languages, which they speak more fluently and with a far better accent than either the Chinese or Japanese. (p. 13)
정신적으로 조선 사람들은 많은 재능을 타고났는데 특히 스코틀랜드의 말로 「영리하고 눈치빠른」(gleg at the uptak) 재능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 교사들은 그들이 정신적인 치밀성과 빠른 인식 능력, 빠른 외국어 습득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증언한다. 그들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은 억양으로 더 유창하게 말한다. (p. 25)
서울에 대한 버드의 평가는 성문 바깥은 아름답지만 내부는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교과서에서 사용된 부분은 성문 외부에 대한 칭찬(원서 38-40페이지)뿐이고 신복룡역으로 "나는 서울의 내부에 관해 서술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의 직전에서 끝나고 있다. 편찬자는 학생이 "버드는 서울에 대해 좋은 말만 했다"고 오해해도 개의치 않는 것 같다.
I shrink from describing intra-mural Seoul. I thought it the foulest city on earth till I saw Peking, and its smells the most odious, till I encountered those of Shao-shing ! For a great city and a capital its meanness is indescribable. Etiquette forbids the erection of two-storied houses, consequently an estimated quarter of a million people are living on "the ground," chiefly in labyrinthine alleys, many of them not wide enough for two loaded bulls to pass, indeed barely wide enough for one man to pass a loaded bull, and further narrowed by a series of vile holes or green, slimy ditches, which receive the solid and liquid refuse of the houses, their foul and fetid margins being the favorite resort of half-naked children, begrimed with dirt, and of big, mangy, blear-eyed dogs, which wallow in the slime or blink in the sun. (p. 41)
나는 서울의 내부에 관해 서술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가 북경을 보기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불결한 도시라고 생각했고 소흥(紹興)을 가 보기 전까지는 서울의 냄새가 가장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대도시인 수도가 이토록 불결하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 2층집을 짓는 것이 관례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25만명으로 추정되는 주민은 주로 「바닥」에서 생활하고 있다. 비틀어진 소로(小路)의 대부분은 짐실은 두 마리 소가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좁으며 한 사람이 짐을 실은 황소를 겨우 끌고 갈 수 있을 정도의 너비이다. 그 길은 그나마 물구덩이와 초록색의 오수가 흐르는 하수도로 인해서 더욱 좁아진다. 하수도에는 각 가정에서 버린 고체와 액체의 오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의 불결함과 악취 나는 하수도는 반나체 어린애들과 피부병이 오른 채 눈이 반쯤은 감긴 큰 개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그들은 햇살에 눈을 껌벅거리며 이 하수도에서 뒹굴고 있다. (p. 50)
"한국식 빨래" 부분은 원서 339-340페이지이고 하루 종일 묵묵히 일만 하고 아무 즐거움도 없이 몸단장도 아주 젊은 나이에 잊어버리는 농촌 여성들의 슬픈 삶을 그리고 있다. 아마도 편찬자는 페미니스트여서 한풀이를 위해 게재한 것 같다. 예의가 없고 일본이나 중국 여성보다 열등한다는 것도 조선여성의 한 측면이었지만 학생들은 그런 것을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The women of the lower classes in Korea are ill-bred and unmannerly, far removed from the gracefulness of the same class in Japan or the reticence and kindliness of the Chinese peasant women. Their clothing is extremely dirty, as if the men had a monopoly of their ceaseless laundry work, which everywhere goes on far into the night. (p. 339)
조선의 낮은 신분의 여성들은 버릇이 없고 예의가 없으며 같은 계급에 속하는 일본 여성의 우아함이나 중국 시골 여성의 과묵하고 친절함이 전혀없다. 밤새도록 들려 오는 다듬이질 소리는 오직 남자들의 옷만을 다루는지 여자들의 옷은 매우 더럽다. (p. 331)
"한국의 여관" 부분은 원서 124-125페이지이고 아마도 온돌에 대한 기술 때문에 선택된 것 같다. 온돌을 찬양한 것은 아니지만 이 부분에는 비하한 말도 없다. 인용된 부분의 한 페이지 뒤에는 이런 글도 있지만 물론 학생들은 알 필요가 없다.
To me the curse of the Korean inn is the ill-bred and unmanageable curiosity of the people, specially of the women. A European woman had not been seen on any part of the journey, and I suffered accordingly. (p. 126)
내가 조선의 여관에서 겪은 악몽은 조선 사람, 특히 여인네의 지나친 호기심과 우악스러움에 있었다. 여행중 유럽 여인을 만난 적이 없어 고통은 그만큼 더했다. (p. 126)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91954
비숍여사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초간본 입수
데스크승인 [152호] 2008.11.19 10:02:00
불교관련 고문헌을 수집하는 고양 원각사 주지 정각스님(동국대 겸임교수)은 최근 19세기말 조선 여행기를 남긴 비숍여사의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초간본을 입수했다. 이 책에는 조선 후기 금강산 묘길상, 용미리 미륵, 탑골공원 비석 등을 세밀하게 그린 삽화가 초간본 발행 당시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다. 비숍여사의 삽화를 통해 100여 년 전 조선불교를 만나보자.
금강산 묘길상ㆍ용미리 미륵·탑골공원 비석 등
100여년전 불교 모습 삽화로
◀1880년대 말 금강산 묘길상 마애불. 삽화 오른쪽에 있는 선비의 키와 비교하면 묘길상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오른쪽 아래는 1880년대 말의 파주 용미리 마애불. ‘미륵스’라고 표현했다.
○…금강산 묘길상 마애불은 높이 15m, 폭9.4m로 고려시대 나옹선사가 모셨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웅장한 규모의 마애불은 기품과 위엄이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있으며, 묘길상 앞에 있는 석등 크기도 3.6m에 이른다. 비숍 여사의 책에 나와 있는 삽화에는 두루마기에 갓을 쓴 선비가 얼굴을 들고 손으로 가리키며 마애불을 바라보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용암사에 있는 ‘용미리 마애불상’은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높이가 17.4m에 이른다. 현재 보물 제 93호로 지정돼 있으며, 거대한 자연암벽을 그대로 마애불로 모셨다. 특히 부처님 머리 부분을 따로 조각해 얹어 놓은 특이한 형식으로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오른쪽은 석가모니불, 왼쪽은 다보 여래상이라고 여겨진다. 비숍의 책에 등장하는 용미리 마애불상은 ‘MIRIOKS’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미륵’이라는 단수(單數)가 아닌 ‘미륵스’라는 복수(複數)로 표현해 놓았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있는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는 조선 성종 2년(1471)에 건립된 것으로, 지금도 남아있다. 삽화에는 남루한 차림의 어린이 여섯 명이 비에 올라가 있는 장면이다. 원각사는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창건한 절이다. 이후 관아로 사용되다 세조가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원각경 (圓覺經)>을 번역할 때 양주 회암사에서 사리를 모셔와 다시 원각사를 지었다고 한다. 현재 사찰은 사라지고, 대원각사비와 13층 사리탑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각스님은 “조선후기 성보문화재의 관리 상태를 짐작할 수 있는 삽화”라면서 “당시 상황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지금의 성보문화재’를 잘 관리하여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진> 1880년대 말 대원각사비. 남루한 차림의 어린이들과 방치되어 있는 비가 시대상황을 대변한다.
비숍은 1883년부터 1887년 사이에 조선을 네 차례 방문했으며, 1898년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 을 펴냈고, 1904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양=이성수 기자
[불교신문 2478호/ 11월22일자]
http://www.booknreader.com/bbs/board.php?bo_table=ebookend&wr_id=9468
영국 여류 지리학자가 왕실로부터 빈민들에 이르기까 지 1백년 전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풍속을 체 험으로 기록한 저술.
작가 소개
지은이
이사벨라 버드 비숍 (Bishop, Isabella Bird ; 1831-1904)- 영국 출신의 작가이자 지리학자. '외국인의 눈에 비친 19세기 말의 한국'이 실려 있는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은 체험과 관찰을 통하여 19세기 말 한국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비숍 여사는 1894년부터 1897년에 이르기까지 네 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11개월에 걸쳐 현지 답사를 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1832년 영국 요크샤州 보로브릿지 홀에서 출생 했다. 23세 때부터 작가이자 지리학자로 활동했다. 1904년에 사망할 때까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조사하고 연구했다. 빅토리아 여왕시대 영국 여성들의 우상적 존재였다. 그녀는 청일전쟁이 일어난 1894년부터 1897년 사이 네 차례 조선을 방문했다. 11개월간은 한국과 한국인들이 이주한 시베리아 지 방까지 찾아가는 답사여행을 했다.
버드 여사가 돌아가서 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 ours)은 1898년에 나왔고 미국에서도 출판되었다. 11판까지 찍었다고 한다 . 머리글에서 버드 여사는 「나는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내가 여행 한 나라들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곧 청일 전쟁 동안 한국의 운명들을 깨달으면서 이 나라에 대해 참으로 강렬한 흥미 를 갖게 되었다. 또 시베리아의 러시아 정부 아래 있는 한국인 이주자들의 현황을 보았을 때 나는 미래에 있을 이 나라의 더욱 큰 가능성에 대해 눈 을 크게 뜨게 되었다. 한국에 머무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이 나라가 처음에 안겨주는 찝찝한 인상들을 잊어 버리게 할 만큼 강렬한 매력을 지 니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썼다.
목차
서장
제1장 조선의 첫인상
제2장 서울의 첫인상
제3장 왕의거동
제4장 조선의 성지 서울
제5장 나룻배 여행
제6장 금모래 강변
서제7장 떠돌며 본 풍경
제8장 자연의 아름다움 : 북한강 여행
제9장 결혼 풍습
제10장 조선의 조랑말 : 도로와 여관
제11장 금강산 기행
제12장 동해안을 따라서
제13장 청일전쟁의 전운과 제물포
제21장 자주 독립 서고문과 홍범 14조의 발표, 그리고 국왕 부부의 알현
제22장 갑오경장
제23장 을미사변
제24장 장례풍습
제25장 고도 송도의 모습
제26장 격전지 평양의 모습
제27장 관서 지방의 여행
제28장 안길령을 넘어서
제29장 여성의사회적 지위
제30장 무당과 기생
제31장 단발령과 아관파천
제32장 정부 조직의 개편
제33장 교육과 대외 무역
제34장 무속 신앙(1)
제35장 무속신앙(2)
제36장 1896년의 서울
제37장 조선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
책을 읽고 나서
참고문헌
본문내용
조선 사람들을 구별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몽골계 민족의 치켜 올라간 눈꼬리에 까무잡잡한 황색에서 아주 밝은 갈색까지 다양한 피부, 반듯한 코와 매부리코가 있는가 하면 콧구멍이 크고 넓적한 들창코도 있다. 머리칼에는 검댕이와 기름을 자주 발랐으며 그 종류는 가는 철사줄처럼 뻣뻣한 것으로부터 비단결같이 부드러운 것까지 다양하다. 사람들은 콧수염과 염소수염, 무성하고 질긴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 하층민의 입은 넓고 통통한 반면 문벌가들에게는 작지만 모자람이 없는 얇고 잘생긴 입을 가졌다.
조선인들의 눈은 검은 암갈색으로부터 담갈색까지 아주 다양하며 광대뼈는 높이 솟아 있다. 귀는 작고 예쁘게 생겼으며 그들의 일상적인 표정은 활기에 차 있어 보인다. 남자의 평균 키는 5피트 4.5인치이며 여성의 키는 작다. 남녀 모든 계층 사람들의 손은 매우 작으며 희고, 손톱은 아몬드 모양으로 주의 깊게 다듬어져 있다.
가정은 대가족 제도이며 건전하다. 인구는 1,200만 ~ 1,300만 명 정도 될 것이며 여자들의 수는 더 적다. 그들은 많은 재능을 타고 태어나서 빠른 외국어 습득 능력을 갖추었지만 이에 반해 의심, 교활함, 비진실성 등의 악덕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 간에 신뢰가 없고 여성들은 격리되어 있으며 매우 열등한 위치에 있다.
조용한 아침 또는 상쾌한 아침의 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조선의 지리는 북․동쪽으로 중국과 접경하여 있는 반도이다. 해안선의 길이는 대략 1,740마일이며 북위 34°17′~ 43°, 동경 124°38′~ 130°33′에 위치해 있고 면적은 8만 평방 마일이 넘는다.
태그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이사벨라 비숍, 한국과 그 이웃 나라, 비숍,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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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벨라 비숍의 마부외 다른 사진들
1894년 이래 네 차례나 우리나라를 다녀간 후 유명 저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을 남긴 영국의 이자벨라 버드 비숍(1831-1904) 여사는 수시로 직접 조선 풍경을 찍었다.
1905년 영국 출판 시장의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은 영국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다. 그 이유는 조선에서 활동하던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영국인 독자들에게 조선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미지의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서문에서 유럽인들이 조선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하였다. 대한민국에서는 살림출판사에서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이름으로 번역/출판되었다. 당시 번역자는 소설 《영원한 제국》의 작가인 이인화이다. 이 책의 내용 중 일부가 현재 대한민국 고등학교 1학년 국어(하) 교과서에 “외국인의 눈에 비친 19세기 말의 한국”이라는 지문으로 쓰이고 있다.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story/view.do?contentsSeq=2447&categoryTyp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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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의 조선여행 책 표지
여행은 정주지를 떠나 낯선 곳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것을 보고 체험하는 경험을 말한다. 그런데 오늘날 관광사회학에서는 전근대 시기와 근대 시기의 여행을 구별하고 있다. 전근대시기의 여행인 'travel'은 종교적 순례나 전쟁, 상업 교역 등을 위한 항해처럼 고생을 무릅쓰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낯선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근대 시기의 여행인 관광, 즉 'tourism'은 많은 사람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다닐 수 있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소비되는 상품을 뜻한다고 한다.
여행과 관광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여행과 관광이라는 말이 별다른 구분 없이 사용되었던 것 같다. 『주역(周易)』에 '관국지광 이용빈우왕(觀國之光 利用賓于王)', 즉 한 나라의 사절이 다른 나라를 방문해 왕을 알현하고 그 나라의 우수한 문물을 관찰하는 것이 왕의 빈객으로 대접받기에 적합하다는 용례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앞선 문물이나 새로운 풍경을 살핀다는 점에서 여행과 관광은 연속적인 의미를 갖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이방인이 주목한 만남의 이야기
『세상 사람의 조선여행』은 조선 땅에 들어와 조선을 만난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조선초기부터 근대까지 조선을 다녀간 외국인들이 주목한 만남의 이야기, 이동의 이야기를 여행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조선 시대에는 이웃 나라 일본과 중국인조차 함부로 들어와 사는 것이 금지되었고, 합법적으로 이 땅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도 제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에 왔다 간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김충선의 모하당집,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외교와 문화 전파의 통로역할을 했던 중국의 칙사와 일본통신사가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교류의 반대편에는 임진왜란처럼 적대적인 전쟁 상황을 통해 조선을 찾은 이방인도 있었다. 명나라 군대로 티베트, 미얀마 군까지 조선에 들어왔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적군 신분으로 조선 땅을 밟아 귀화한 김충선을 비롯한 일본인들의 단편적인 이야기가 확인되기도 한다.
하멜 일행의 표류기
또한 풍랑으로 인한 표류로 조선 땅을 밟게 된 하멜 일행, 천주학이 금지된 조선에 죽을 각오로 몰래 들어온 프랑스 선교사 등 저마다의 이유를 품고 서로 다른 깊이로 조선 사람과 문화를 만났던 외국인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도 만나볼 수 있다. 1884년 조선이 세계 각국에 문호를 개방해 서양인의 입국과 거주가 허가된 뒤로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방인들이 조선을 방문했다. 외교관은 물론이고 성직자, 기자, 기업인, 의사, 군인, 학자, 여행가, 사진가, 상인 등등.
각종 조사와 연구 목적
일본에 강제 병합된 후에는 조선으로 이주한 일본인들이 생겨났고 학생이나 문인, 지식인들이 조선을 다녀갔다. 식민 통치를 위한 각종 조사와 연구를 수행하고자 방문하기도 했다. 따라서 개항 이후부터 식민지 시기까지 다녀간 외국인들이 남긴 기록물은 매우 방대하다. 백과사전류, 동양학서지, 여행안내서, 지도첩, 한국방문자들의 전기, 선교활동, 선교 문학 등 종류 또한 다양하다.
하멜 표류기, 국립제주박물관
이 책은 이사벨라 비숍처럼 알려진 인물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과 여행 목적을 지닌 사람들의 기록을 선별해 소개하고 있다. 조선 정부의 채용에 의해 거주가 허용된 독일인 묄렌도르프, 1902년 불과 8개월간 이탈리아 총영사로 근무했지만 수백 쪽에 달하는 한국 종합안내서 『꼬레아 꼬레아니』를 발간한 카를로 로제티의 시선을 통해 근대화를 시도하려했던 대한제국 정부가 남긴 여러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조선에서 참판이 된 묄렌도르프
한편 스웨덴 동물학자 스텐 베리만은 『한국의 야생동물지』를 통해 제국주의적 박물학 연구의 사례를 보여준다. 일본 건축사학자 세케노 다다시의 활동은 더욱 체계적이었다. 『조선고적도보』는 열다섯 권으로 이뤄진 문화유산 조사보고서로 1902년부터 1934년까지 조선 여행과 답사를 성실하게 조사해 기록했으며 6300여 장의 사진을 함께 실어 귀중한 자료의 보고라 할 것이다.
베버 신부의 조선여행 기록
나라를 잃어버린 조선의 '전통문화'에 주목하거나 그것을 근대화와 대조시키는 작업도 눈에 띈다. 독일인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는 일제의 동화정책으로 말살되어가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존할 의도에서 글을 쓰고 다시 방문하여 무성영화까지 촬영했다. 이방인의 눈으로 조선을 관찰하는 행위는 글보다 그림과 지도, 사진 같은 시각 자료에 더 잘 구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923년에 재판된 베버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줄기에 매달린 오이 형상에서 근대의 정교한 지도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일본이 그린 조선의 변천을 쫓아가다 보면 당시 조선이 동아시아와 세계 전체에서 부여받은 위치와 의미가 드러나기도 한다. 또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조선의 풍속과 산하, 도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엽서에서는 조선을 미개한 사회로 보거나 단순히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지배와 통치의 성과를 선전하는 의도 또한 다분했던 것 같다.
조선과 세계의 교류
규장각 교양총서 여섯 번째 권으로 발간된 『세상 사람의 조선여행』은 지난번에 소개한 『조선 사람의 세계여행』에 이어 조선과 세계의 교류를 다룬 여행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여행에 관련된 연구가 전근대와 근대를 막론하고 적지 않게 이뤄졌지만, 조선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하나의 시야 속에서 조선 사람과 세상사람, 그리고 조선과 세계의 측면에서 시리즈로 나눈 접근법은 새로운 시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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