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12, 2012

some questions for so-called the issue of comfort women part2 by jack4afric

http://jack4afric.exblog.jp/14099808/

いわゆる従軍慰安婦問題について、私が抱いているいくつかの疑問(2)

疑問2:朝鮮人女性を強制的に慰安婦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ほど、朝鮮半島では売春婦が不足していたのか?

従軍慰安婦問題を取り上げている反日サヨクは、戦時中、日本軍が朝鮮半島の村々を襲い、若い娘を捕まえてトラックに乗せて連行し、強制的に慰安婦に仕立てて外地に送ったと主張しています。

本当でしょうか?

韓国は売春婦が多い国であるというイメージを多くの日本人が抱いています。

70年代の終わり、当時、格安だった大韓航空のチケットを使ってヨーロッパに行ったことがあるのですが、途中、乗り継ぎで立ち寄った金浦空港は、

キーセン(妓生)観光の日本人の中年男の団体客と米軍関係者らしいアロハシャツを着た柄の悪そうな白人とそれらしい韓国女性のカップルが目立つ異様な雰囲気のところでした。

当時の韓国は、朴大統領の時代でしたが、国策でキーセン観光を奨励し、主として日本人の中年男性相手に韓国人女性を売春させて外貨を稼いでいたのです。

この時期はまだ、従軍慰安婦の問題は起こっていませんでしたが、現在、従軍慰安婦について日本を非難している韓国人は、

70年代に多くの韓国人女性が日本人男性に身体を売って韓国の経済を支えたことをどう思っているのでしょうか。

「漢江の奇跡」と呼ばれる70年代の韓国の高度経済成長は、日本による韓国に対する経済・技術援助と日本人男性による韓国人女性に対する性を引き換えにした個人援助の両方があってはじめて達成できたのです。


その後、日本の女性団体の抗議によりキーセン観光は下火になりますが、韓国人女性による日本人男性に対する売春は形を変えて生き続けます。

日本の男性が韓国に行くのを止めると、今度は韓国女性が日本にやってきて、韓国バーでホステスとして働きながら、日本の男性相手に売春す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このへんの経緯は、呉善花著「スカートの風」に詳しく書かれていますが、この事実は、需要と供給がある限り、売春を根絶することは難しいことをよく示しています。

呉善花女史は、売春する韓国女性が中々、なくならない理由のひとつとして、韓国におけるキーセンの伝統を挙げています。

キーセンは日本の芸者に相当する存在で、酒席に侍って歌や踊りで客を楽しませるのが仕事ですが、厳しい身分制度に縛られていた李氏朝鮮では、

貧しい平民の家に美しい娘が生まれるとキーセンにして、貴族階級であるヤンパン(両班)に妾として献上する習慣があったといいます。

つまり、貧しくとも美しく生まれた女性は美貌を武器に階級を上ることができたわけで、キーセンは男に身体を売る卑しい職業であると軽蔑される一方で、若くて美しい女性にしかなれない職業として憧れの対象でもあり、

裕福なヤンパンを捕まえて、首尾よく愛人の座を勝ち取ったキーセンは、周囲の羨望の的になったといいます。

このような「伝統」のせいか、現在でも多くの韓国女性が美容整形に金をかけて美人に変身し、売春婦として働いているというのです。

現在の韓国にいかに売春婦が多いかは、2003年に韓国政府が行った調査結果によく表れています。

それによると韓国の売春産業の規模は年間26兆ウォン(約2兆6000億円)の規模に達し、専業売春婦はおよそ26万人にのぼるそうです。

26兆ウォンにのぼる売春産業の規模は、2001年の国内総生産(GDP)545 兆ウォン(約55兆円)の5%に相当し、26 万人の専業売春婦数は、満20歳から34歳までの女性人口の4%に相当するといいます。 

ところが韓国の女性団体はこの政府発表を受けて、26 万人というのは少なすぎる、少なくとも80万人はいると主張しているそうです。

そこで素朴な疑問が生じます。

経済発展を遂げて世界13位の経済大国になったと自慢する現在の韓国で、それほど多くの売春婦が存在するのであれば、

現在よりはずっと貧しかったであろう40年代前半の朝鮮半島ではもっと多くの売春婦のなり手があったのではないか?

そんな国で慰安婦を強制連行する必要などなかったのではないか?

という疑問です。

事実、太平洋戦争の終戦からまもなくして勃発した朝鮮戦争でも韓国軍を含む国連軍の兵士を相手にする慰安婦が存在したそうですが、彼女たちが強制的に慰安婦にさせられたという話は聞きません。

なぜか、日本軍だけが朝鮮人女性を強制的に慰安婦にしたことにされているのです。

韓国では、2004年に売春を厳しく取り締まる性売買特別法という法律が施行されたそうですが、

その結果、多くの韓国人売春婦が失業し、日本やアメリカに売春婦として出稼ぎに行くケースが増えていると聞きます。

彼女たちは、現代版の慰安婦とでもいうべき存在ですが、結局、昔も今も韓国の最大の輸出品は売春婦な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あと日本で売春をしている韓国人は女性だけではありません。

男性もやっています。

前述の呉善花女史は、昨今の日本の中高年女性の間に流行っている韓流は、かっての日本の中年男性のキーセン観光の女性バージョンだといいます。

かって日本の若い女に相手にされなくなった中年男が韓国に行ってキーセンと遊び、「韓国女性には、近頃の日本の女が失った女らしい優しさがある」などといっていたのと同様に、

日本では婆さん扱いされてセックスの対象にされない中高年女性が韓国ドラマを見て韓流スターに憧れ、

「韓国の男性には、近頃の日本の男にはない男らしい優しさがある」などといっているのが日本の韓流ブームなんだそうです。

そういえば、韓流スターってホストっぽいのが多いですね。

鳩山前首相夫人がなんとかいう韓流スターと抱き合っている写真が世間の顰蹙を買ったのは、あの写真に「ババアの性欲」がはっきりと現れていたからでしょう。

現在、多くの韓国人ホストが韓国バーのホステスとして働く韓国人女性向けのホストバーで働いているそうですが、先日、上野では韓国人経営の垢すり・マッサージ店が摘発され、

日本人のホモの客相手に性的サービスを提供していた韓国人の男性マッサージ師が逮捕されたそうです。

こういう連中もあと何十年か経ったら、「われわれは強制連行されたニダ!」などと言い出すのでしょうか。


性売買特別法に抗議して座り込みを行う売春婦たち、ソウル

いわゆる従軍慰安婦問題について、私が抱いているいくつかの疑問(3)へ

本日のつぶやき:
W杯の日本の試合前に日本の選手とサポーターが一緒になって君が代を歌い、日の丸が振られる光景を、日の丸・君が代反対の日教組の教師たちがどう思って見てるのか知りたいです。


소위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내가 안고 있는 몇 가지의 의문(2)

의문 2:조선인 여성을 강제적으로 위안부에게 해야 할 만큼, 한반도(朝鮮半島)에서는 매춘부가 부족한 것인가?

종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반일【사요쿠】는, 전시중, 일본군이 한반도(朝鮮半島)의 마을들을 습격하고, 젊은 딸을 붙잡아서 트럭에 태워서 연행하고, 강제적으로 위안부에게 만들어서 외지에 보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한국은 매춘부가 많은 나라다라고 하는 이미지를 많은 일본인이 품고 있습니다.

70년대의 끝, 당시, 저렴했던 대한항공의 티켓을 사용해서 유럽에 가 본 일이 있는 것입니다만, 도중, 환승에서 들른 김포 공항(金浦空港)은,

기생(기생)관광의 일본인의 중년남의 단체객과 미군관계자인 듯한 알로하셔츠(aloha shirt)를 입은 깡패같을 것 같은 백인과 그것인 듯한 한국 여성의 커플이 눈에 띄는 이상한 분위기의 곳이었습니다.

당시의 한국은, 박(朴) 대통령의 시대이었습니다만, 국책으로 기생 관광을 장려하고, 주로 일본인의 중년남성 상대에게 한국인여성을 밭팔게 해서 외화를 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기 해변인, 종군 위안부의 문제는 일어나고 있지 않았습니다만, 현재, 종군 위안부에 대해서 일본을 비난하고 있는 한국인은,

70년대에 많은 한국인여성이 일본인남성에게 신체를 팔아서 한국의 경제를 유지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한강(漢江)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70년대의 한국의 고도 경제 성장은, 일본에 의한 한국에 대한 경제·기술원조와 일본인남성에 의한 한국인여성에게 대한 성을 바꿔 한 개인원조의 양쪽이 있어서 처음으로 달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일본의 여성단체의 항의에 의해 기생 관광은 수그러집니다만, 한국인여성에 의한 일본인남성에게 대한 매춘은 형을 바꾸어서 계속 삽니다.

일본의 남성이 한국에 가는 것을 멈추면, 이 다음에는 한국 여성이 일본에 오고, 한국 바에서 호스티스(hostess)로서 일하면서, 일본의 남성상대에게 밭팔게 된 것입니다.

이 근처의 경위는, 오(吳) 젠(善) 하나(花) 저 「스커트의 바람」에 자세하게 씌어져 있습니다만, 이 사실은, 수요와 공급이 있는 한, 매춘을 근절하는 것은 어려운 것을 자주(잘) 가리키고 있습니다.

오(吳) 젠(善) 하나(花) 여사는, 밭파는 한국 여성이 (꽤)아무리 해도, 없어지지 않을 이유의 하나로서, 한국에 있어서의 기생의 전통을 들어 있습니다.

기생은 일본의 기생에게 상당하는 존재로, 술 자리에 계셔서 노래나 춤으로 손님을 즐겁게 하는 것이 일입니다만, 엄격한 신분제도에 붙들어 매여 있었던 이(李)씨 조선에서는,

가난한 평민의 집에 아름다운 딸이 태어나면 기생으로 해서, 귀족계급인 양 빵(양반)에 첩으로서 헌상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즉, 가난하더라도 아름답게 태어난 여성은 아름다움을 무기에 계급을 오를 수 있었던 셈이어서, 기생은 남자에게 신체를 파는 천한 직업이다라고 경멸될 뿐에서, 젊어서 아름다운 여성밖에 친숙해지지 않는 직업으로서 동경의 대상이며,

유복한 양 빵을 붙잡고, 순조롭게 애인의 좌를 쟁취한 기생은, 주위의 선망의 대상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통」의 원인인가, 현재라도 많은 한국 여성이 미용정형에 돈을 들여서 미인으로 변신하고, 매춘부로서 일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한국에 아무리(어떻게) 매춘부가 많을지는, 2003년에 한국 정부가 간 조사 결과에 자주(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에 의하면 한국의 매춘 산업의 규모는 년간 26조원 (약2조6000억엔)의 규모에 달하고, 전업매춘부는 약 26만명에 오른다고 합니다.

26조원에 오르는 매춘 산업의 규모는, 2001년의 국내총생산(GDP) 545조원 (약55조엔)의 5%에 상당하고, 26만명의 전업매춘부수는, 만 20세로부터 34세까지의 여성인구의 4%에 상당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여성단체는 이 정부발표를 받고, 26만명 있어 우노는 지나치게 적은, 적어도 80만명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소박한 의문이 생깁니다.

경제발전을 이룩해서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고 자랑하는 현재의 한국에서, 그다지 많은 매춘부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현재보다는 쭉 가난했을 것인 40년대 전반의 한반도(朝鮮半島)에서는 더욱 많은 매춘부의 될 사람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나라에서 위안부를 강제 연행할 필요등 없었던 것이 아닐까?

이라고 하는 의문입니다.

사실, 태평양 전쟁의 종전으로부터 얼마 안되게 해서 발발한 조선 전쟁이라도 한국군을 포함하는 국련군의 병사를 상대로 하는 위안부가 존재했다고 합니다만, 그녀들이 강제적으로 위안부에게 하게 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듣지 않습니다.

왠지 모르게, 일본군만이 조선인 여성을 강제적으로 위안부로 했기로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2004년에 매춘을 엄격하게 단속하는 성매매 특별법이라고 하는 법률이 시행되었다고 합니다만,

그 결과, 많은 한국인매춘부가 실업하고, 일본이나 미국에 매춘부로서 객지벌이에 가는 케이스가 늘어나고 있다고 듣습니다.

그녀들은, 현대판의 위안부라고에서도 말해야 할 존재입니다만, 결국, 옛날도 지금도 한국의 최대의 수출품은 매춘부인 것이 아닙니까?

나중 일본에서 매춘을 하고 있는 한국인은 여성것만으로는 없습니다.

남성도 하고 있습니다.

전술의 오(吳) 젠(善) 하나(花) 여사는, 요즘의 일본의 중고년여성의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한류는, 길러서의 일본의 중년남성의 기생 관광의 여성 버전이라고 합니다.

길러서 일본이 젊은 여자에게 상대로 되지 않게 된 중년남이 한국에 가서 기생으로 놀고, 「한국 여성에게는, 최근의 일본의 여자가 잃은 여자다운 다정함이 있다」등이라고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동일하게,

일본에서는 할머니 취급 당하다 섹스의 대상으로 되지 않는 중고년여성이 한국 드라마를 보아서 한류 스타에게 동경해,

「한국의 남성에게는, 최근의 일본의 남자에게는 없는 남자 다운 다정함이 있다」등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 일본의 한류 붐이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한류 스타 말야 호스트처럼 보이는 것이 많네요.

하토야마(鳩山) 전수상부인이 어떻게든 말하는 한류 스타와 서로 껴안고 있는 사진이 세상의 빈축을 산 것은, 저 사진에 「할머니의 성욕」이 확실하게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지요.

현재, 많은 한국인 호스트가 한국 바의 호스티스(hostess)로서 일하는 한국인여성에 적합한 호스트 바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요전에, 우에노(上野)에서는 한국인경영의 때 소매치기·마사지점이 적발되어,

일본인의 호모의 손님상대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던 한국인의 남성 마사지사가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패거리도 나중 몇십년인가 지나면, 「우리들은 강제 연행된 【니다】! 」등라고 말하기 시작합니까?



성매매 특별법에 항의해서 정좌를 하는 매춘부들, 서울

소위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내가 안고 있는 몇 가지의 의문(3)에

오늘의 군소리:월드컵의 일본의 시합전에 일본의 선수와 서포터가 하나가 되어서 기미가요를 부르고, 일장기가 쳐지는 광경을, 일장기·기미가요반대의 일본 교원 노동조합의 교사들이 어떻게 생각해서 보고 있는 것일지 알고 싶습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