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22, 2012

Chunhyangjeon 춘향전 春香伝 and modern Korea

http://www.saramilbo.com/sub_read.html?uid=5768

북측 ‘춘향전’ 한 번 들어볼까요
북 창극의 대표작...(주)신나라뮤직, 1964년 공연 실황녹음 발매

김영조 논설위원



625전쟁 전후에 여성국악단의 전성기가 있었다. 여성국악단(임춘앵), 햇님국극단(김경애), 여성국극협회(조금앵), 삼성여성국극단(박옥진), 여성국악동우회(김소희, 박초월), 국극사(박록주) 등의 많은 여성국극단체가 조직되어 여성국극의 붐을 일으켰었다. 당시엔 여성국극단이 오면 임춘앵, 조금앵을 보려 장사진을 쳤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1960년을 고비로 해서 여성국극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이 여성국극은 여성 소리꾼만이 출연한 창극(唱劇)을 말한다. 창극은 국극(國劇)이라고도 하는데 고수(鼓手)의 북 장단에 맞추어 한 사람의 소리꾼이 부르던 판소리를 배역에 따라 나누어 소리하고, 무대배경과 의상, 연기를 덧보탠 것이 창극이다.


▲1964년에 공연한 북한창극 춘향전의 한 장면. ©신나라
물론 이 창극은 해방 후 북한에서도 공연되었다. 북한에서 창극이 공연된 것은 조선고전음악연구소가 창설된 1947년 이후부터인데 이해 8월 20일에 상연한 ‘춘향전’이 창극의 시작이었다. 당시 ‘춘향전’은 남한의 창극 개념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두 번째 공연은 1955년 10월 16일에 상연한 ‘춘향전’, 세 번째 공연은 1964년의 ‘춘향전’인데 이때부터는 남한의 창극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 까닭은 북한에서 민족음악에 대해 재정립을 하는 과정에서 '판소리는 양반들이 갓 쓰고 당나귀를 타고 다니던 시절 술 마시고 흥얼거리며 부르던 것으로 현시대에 맞지 않는다.'라며, 판소리는 배척한 데 있다. 따라서 이후부터는 북한에서는 창극의 개념이 '민요극', '민족가극'으로 점차 바뀌었다. 판소리를 배제한 채 민요를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 쇳소리(탁성)는 우리 겨레의 소리가 아니라는 김일성 주석의 말에 따라 민요도 남도창이 아닌 서도창을 중심으로 불렸고, 보통 사람들이 알기 어렵다는 이유로 한자말도 창극에서 모두 없앴다.

이렇게 바뀐 창극의 시작인 1964년의 ‘춘향전’을 녹음한 음반이 (주)신나라뮤직(회장 김기순)에서 발매되었다. 이 음반은 일본 신세계레코드사에서 보유하고 있던 북한음악 중 창극을 대표하는 ‘춘향전’인데 1964년 북한의 국립민족예술극장의 공연 실황녹음을 정리해서 내놓은 것이다. 오픈 릴(open reel)상태여서 보존이 우려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 시디 작업은 영구 보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번 음반은 총 3장으로 나누어 발매되었는데 첫 장에는 오작교, 부용당, 사랑가, 부용당 이별이 들어 있으며, 두 번째 장에는 오리정 이별, 부용당 후원, 관청 동헌, 농부가가 수록되었고, 세 번째 장에는 어사 월매상봉, 옥중상봉, 관청 동헌의 녹음이다.

다만, 이 음반은 귀에 익은 남한식의 판소리나 창극을 듣던 사람에겐 약간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특히 남도소리와 맥을 같이하는 판소리에서 서도민요의 음색으로 바뀌어 걸쭉하고, 구수한 맛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또 언뜻 예전 창가의 느낌도 주는 것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녹음기술이 뒤떨어진 탓인지 녹음된 소리의 음량이 들쭉날쭉한 것은 흠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겨레의 소원인 통일은 문화의 통일이 앞서야 하기에 이에 이바지할 북한창극 ‘춘향전’ 음반의 발매는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현재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소리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북한창극 춘향전 중 사랑가 악보. ©신나라



김영조 논설위원은 민족문화운동가로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을 하고 있으며, 한글학회 부설 한글문화협회 신문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전통문화 관련 글쓰기, 강연, 방송출연 등을 한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 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이다.

http://www.gugak.go.kr/community/press/pres_viw.jsp?seq=24


http://blog.ohmynews.com/bigblue/tag/%EC%B6%98%ED%96%A5%EC%A0%84

"내가 우리공무원들에게 말한다. 청백리 따지지 마라. 대한민국 지금 공무원 얼마나 청백리냐. 역사를 보세요. 춘향전이 뭡니까. 변사또가 춘향이 따먹으려는 것 아닙니까?"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난 22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한국표준협회 초청 최고경영자조찬회에서 한 발언의 녹취록 내용이다.

김지사의 이 발언을 두고 "여성비하", "춘향전 왜곡", "남원시와 남원시민 모독" 등 모든 언론과 각계 각층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맞는 말이고 당연한 비판이다.

춘향전이 어떤 소설인가?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고전소설이다. 춘향전의 배경인 남원은 수학여행 단골코스이기도 하다.
인터넷서점에서 '춘향전'으로 검색해보니 어린이도서로도 26종이 출판되어 있다.


▲ 어린이 도서 '춘향전'

도지사나 되는 사람의 입에서 그것도 공식석상에서 여성에 대하여 "따먹는다"는 표현이라니 이 보다 더한 망발은 없을 것이다. '자연산' 발언 보온 안상수공도 울고 갈 일이다.

'춘향이 X먹는다'는 망언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비판의 소리가 쏟아지고 있으니,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문제를 풀어보는 것으로 숙제를 남겨두고 다른 면을 짚어보고자 한다.

다음 중 따먹는 것은?
1. 사과 2. 배 3. 감 4. 여자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청렴은?

춘향전의 시대적 배경을 보면 대략 조선시대 중기, 숙종때이다.
소설속 등장인물 변사또는 그 시대 탐관오리의 대표주자이다.
김문수 지사는 이런 변사또와 비교하면서 대한민국 지금 공무원 얼마나 청백리냐?고 말한다.
김문수 지사의 청렴의 기준은 300여년전 시대의 탐관오리 대마왕과 비교하여서 청렴하면 청렴한 것인가?

누가 보아도 이건 아니다. 문제가 있다. 그런데 김문수 지사는 이런 발언을 했다.
우리말 수준이 한참 떨어지거나 청렴의 기준에 문제가 있거나 둘 중 하나로 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의 학력을 보면 우리말 수준이 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발언, 공무원 격려인가? 모독인가?

'목금연찬회', '檢·警 밥그릇 싸움 한심', '공직사회 온통 비리투성이', '우리 사회가 좀 한계에 왔다'...
이명박 대통령과 조중동신문이 최근 연일 쏟아낸 공직사회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 발언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은 아마도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것이리라)
그런데 목금연찬회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검경 밥그릇 싸움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이명박 대통령 측근 은진수 전 감사위원이 깊이 개입되어 있음이 드러나고, 민주당은 은진수 전 감사위원, 김황식 총리,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을 '저축은행 사태 3인방'으로 규정하였다.
(관련기사 : '공직 비리' 터뜨려 '측근 비리' 덮은 청와대?)

한 순간에 비리투성이에 죽일 놈이 되어버린 공직사회,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힘없는 공무원들로서는 억울하고 기가 차고 일할 맛이 안 난다. 도무지 기가 살지를 않는다.
청와대와 조중동으로 부터 잔뜩 얻어맞아 기가 죽어 있는 공무원들,
대권을 따먹으려는 김문수 지사로서는 공무원을 내 편으로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

김 지사에게 지금은 가뜩이나 기가 죽은 공무원의 기도 살려주면서 환심도 살 수 있는 참으로 좋은 기회이다. 더군다나 지금 MB는 레임덕 대통령이 아닌가.
'세종대왕과 비교해도 MB가 최고'라며 추켜세우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공직사회 온통 비리투성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콩 까먹는 소리 하고 있어요. 청백리 따지지 마라. 대한민국 지금 공무원이 얼마나 청백리냐. 역사를 보세요'라고 정면으로 대들었다.



아무리 레임덕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이 한 말에 이런 막말로 대든다는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김 지사의 이런 용감한 소신(?) 격려발언에도 기 죽은 공무원들의 기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런데 내가 공무원이라도 기분 참 더러울 것 같다.
오늘날 대한민국 공무원을 춘향이 따먹을려고 환장한 변학도에 비교해주시는 센스는 또 뭔가?
그러면 공무원들이... 청렴하다고 칭찬받았다며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안 그래도 살 맛 안나는 공무원들에게 모독도 이런 모독이 없다.

한나라당 여성비하, 성추행 실적(?)
한나라당은 성나라당인가?
- MB의 마사지 걸 발언 '못 생긴 여자가 서비스가 좋다'
- 주성영 의원의 ‘대구 밤 문화 화끈하다’ 발언
- 강용석 의원의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되는데..'
- 허태열 한나라당 의원의 ‘섹스프리 특구’ 발언
- 경만호 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의 ‘오바마’ 건배사 '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
- 안상수 '자연산' 발언 '룸살롱에서도 자연산 찾아'
- 최연희 여기자 성추행, '음식점 여주인 착각' 해명이 더 기가 막혀
- 정몽준 여기자 볼 톡!톡! - '며칠 동안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 그랬다' 해명
- 강재섭 '조철봉 요즘 왜 안 하냐? 너무 안하면 흐물흐물 해진다'
- 박계동 '강남 술집 여종업원 성추행 동영상'
- 이경재 '남의 집 여자가 느닷없이 우리 집 안방에 와서 드러누워 있으면 주물러 달라는 얘기'
- 이재웅 전 의원 '성매매금지법으로 거기도 못가고'
- 안상수 전 인천시장 '여기자와 친해지려 어깨에 팔'
- 지방선거 여성비하 동영상 '여자들은 바퀴벌레 다음으로 뉴스를 싫어한다' /이태봉(쭈니)

http://ask.nate.com/qna/view.html?n=7779381

북한의 춘향전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jooung34 | 08.03.06 13:35
답변 1
조회 4,052

네티즌공감
왜 북한의 춘향전은 미성년자 관람 불가 인가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어떻게 정해진건지 소개해주세요
일촌 및 팬들에게 공감한 내용이 전달됩니다. 싸이월드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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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님의 답변
08.03.0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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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에 대해서 김일성은 "춘향전은 두 계급 간의 남녀의 사랑을 취급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교시를 내렸다. 이 교시로 인해서 북한에서는 하루 아침에 ‘춘향전’ 제작이 금기사항이 되어버렸다. 우리 민족 최대의 고전에 족쇄가 채워진 것이다.


그러나, 그 후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1980년에 천연색으로 ‘춘향전’이 제작되었다. 실로 20여 년만에 만들어진 사극이라서 그런지 미술이나 의상의 고증이 도무지 말이 아니었다. 어쩐 일인지 모든 남자 배우들의 상투가 볼품없이 작아서 아주 어색해 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나라 상투가 봉건적이고 야만적으로 보이니 일체 사진에 내지 말라"는 교시를 내렸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분장사는 물론이고 감독이나 촬영기사도 상투를 어떻게든 안 보이게 찍느라고 애를 먹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문화어'(평안도 말과 함경도 말을 합친 북한의 표준어)를 써야 하고, 삼각관계나 키스 장면도 찍을 수 없고, 강간 장면도 안 된다. 이런 금기들이 모두 김일성 교시에서 나온 것들이다. 우리 겨레의 귀중한 문화 유산 중의 하나인 판소리를 '쌕소리'라 하여 없애버린 것도 김일성의 말씀 한 마디였다.
김일성이 어부들에게 내린 교시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물고기를 가까운 바다에서도 잡고 먼 바다에서도 잡고 깊은 데서도 잡고 얕은데서도 잡고 큰 것도 잡고 작은 것도 잡아서 인민들에게 많이 공급하라."
하나마나 한 말을 뭐하러 하는지….
권력자의 한마디가 곧 법이 되는 사회에서는 좋은 예술이 나오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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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을 뛰어넘는 영원한 한민족 예술의 白美, '춘향전'

‘춘향전’은 한국근대예술사에서 가장 많은 논의와 재창조가 이뤄진 작품이다.
1962년 이후 현재까지 105회에 걸쳐 대본이 수정되며 공연됐고, 협률사 창립공연(1902), 국립창극단 창립공연(1962), 창극 1백주년 기념공연(2002)에서 줄곧 춘향전을 선택한 것은 작품이 가진 의미를 짐작케 한다. 이는 북녘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해방 직후 창극으로 시작된 북의 ‘춘향전’은 1964년 민족가극적 성격을 가진 공연형태를 이루다 1970년대 혁명가극 ‘춘향전’을 탄생시켰고 이 성과를 바탕으로 1989년 민족가극 ‘춘향전’에 이르게 된다.
수년에 걸쳐 대본을 쓰고, 완성된 작품은 십수년간 지속적으로 공연되는 북의 무대예술 특징에 비춰 ‘춘향전’이 북에서 지속적으로 공연돼왔다는 사실은 남과 북이 진정 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 예다.
지난 2일과 3일 한국고전희곡학회와 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의 공동주최로 전주전통문화센터에서 열린 영호남학술교류를 위한 심포지엄 ‘춘향예술의 양식적 분화와 세계성’.

첫 날 ‘북한 민족가극 춘향전의 공연사적 위치와 특징’을 발표한 이영미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는 “북한 연극사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작품은 민족가극 ‘춘향전’”이라며 “이 작품은 ‘피바다’의 가극 형식과 기법적 측면, ‘성황당’의 희극성을 도입해 혁명연극의 성과를 고스란히 계승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우리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 작품의 장단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고 밝혔다.
李교수는 유절(有節)형식의 대중적인 노래와 개량 국악기·서양악기가 섞인 선율, 방창의 적극적 활용, 흐름식 입체무대를 통한 잦은 장면 전환, 독자적 영역으로 발전된 삽입무용 등을 북의 춘향전이 가진 특징으로 꼽았다.
그리고 남과 북이 인물해석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고 덧붙였다.
민족가극에서 춘향은 행주치마를 두른 채 향단과 함께 물을 긷는 등 노동을 하며 사는 천민·상민의 모습으로 보여진다.
또한 방자의 어릿광대 같은 성격과 월매의 퇴기다운 드센 성격은 ‘봉건사회를 저주하는 진실한 인간’과 ‘수수한 어머니’로 새롭게 창조됐다.
李교수는 긍정적 인물의 희극성을 대폭 축소한 것은 진보적 사고에서 나온 것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극을 단조롭고 밋밋하게 만들었고 주제 역시 약화시켜 단점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백현미(이화여대), 박진태(대구대), 최동현(군산대), 양회석(전남대), 정원지 교수(전북대) 등이 발제를, 전신재(전주대), 조만호(상명대), 손태도(서울대), 김도영(고려대), 전홍철(우석대), 류수열 교수(전주대) 등이 지정토론자로 함께 한 심포지엄에서는 창극, 영화, 마당놀이, 설화, 판소리, 고전소설 등 다양한 ‘춘향전’의 공연사와 양식적 특징, 서사적 배경, 중국고전극과의 비교를 통해 한 단계 성숙한 ‘춘향전’의 미래를 예감케 했다.



http://web.hallym.ac.kr/~korean/09dapsa/chunhyangjeon/chjeon.htm
<춘향전>의 모델과 작가탐색


20081146 홍초록
춘향전의 모델

1. 남원성 전투의 열사

정유재란 중인 1597년 8월 15일에서 16일 사이에 벌어진 남원성 전투에서 명나라 군대와 조선의 연합군은 왜군에 크게 패하였다. 이런 남원성 전투의 와중 속에서 명나라 군대와 조선군 및 백성들은 만 명에 가까운 인명의 손실을 가져왔다. 이 날 전투에서는 당시 남원부사인 임현, 전임 남원부사인 이복남, 구례현감 등도 순직하였다. 이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날 장렬한 죽음을 스스로 맞아 순국한 전직 현직의 두 남원부사의 행동을 비롯한 순국 장졸들의 정신은 조경남에게는 강렬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뒷날 조경남이 춘행전을 창작할 때에 이들의 정신을 춘향의 굽힐 줄 모르는 절개로, 강렬한 수절녀로 형상화시키는 데 기여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춘향의 정절은 남편을 따라 수절하는 열녀만도, 정조를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열녀만도 아니고, 탐학을 일삼는 수령의 형장에도 굽히지 않는 순국형 충신이나 열사에 준하는 열녀이기 때문이다.


2. 남원의 정절녀

춘향전에 대한 초기 연구에는 지리산 도미처 설화를 춘향전의 모델로 들기도 했다. 구비 전승되던 자료나 문헌 기록으로 춘향의 정절녀 모델로 설정될 내용들이 있지만 관기설녀이야기의 소재가 된 사건은 남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더러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와 유사한 비극적인 사랑의 실제 상황이 있어났을 경우, 그 일부는 그 대상을 이부사의 자제 이도령과 결부시키거나 아니면 춘향전 전체와 결부시킨 이야기들에서 파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또 자제와 기생의 비련의 사랑 때문에 생긴 원통한 사랑 사건이 실제로 있었고, 이를 미화하여 춘향전이 생겼다는 논의 또한 수긍하기 어렵다.

또, 춘향전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어 온 신원설화들을 비판적 관점에서 보면 현실로 존재하는 작품 춘향전은 이런 춘향을 위로하려는 신원적 입장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하나의 인위적 춘향전 생성설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즉 실존 인물 춘향의 원사를 작가가 허구화시키면서 탐학한 권력자 변부사에게 저항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내용으로 만들었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이는 작가가 춘향의 삶을 비운에서 향운으로 전환시켜 위로시키는 것이 주된 의도를 삼고, 관장의 횡포에 대한 징계라는 윤리적 의미도 개입시킨 결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이런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춘향 관련 기록이나 전승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문학적 사실인 춘향전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춘향전의 작가문제

- 조경남 작가설

이어사 모델을 근거루 춘향전 원작가를 산서 조경남으로 추정하였다.조경남은 춘향전을 창작할 수 있는 적절한 여건을 갖춘 인물이다. 그는 남원에 살았고, 흔히 춘향전 근원설화의 하나로 지목하던 성이성 암행어사의 스승이었으며, 게다가 57년 간 전란 중심의 일기인 [난중잡록]과 [속잡록], 그리고 200년의 역사를 요약한 [역대요람]을 편찬할 정도로 상당한 문장력을 갖춘 인물이다. 조경남이 원작가라는 근거는 8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산서 조경남은 남원에서 70평생을 살았기에, 춘향전 핵심공간인 남원과 광한루에 얽힌 사건과 상징적 의미에 정통하였다. 둘째, 산서는 임병 양란 때의 국내외 역사를 [난중잡록],[속잡록]이란 57년간의 잡록체 일기로 남길 정도의 엄청난 정보력을 갖추고 있었다. 셋째, 산서는 이도령 모델인 계서 성이성의 스승이며, 암행어사가 된 그를 광한루에서 만나 함께 보냈고, 이부사의 모델인 부용당 성안의 부사와도 교류하였다. 넷째, 산서는 남원 기생 춘향의 비극적 사건과 그 사건으로 인하여 생긴 신원설화의 내력을 알고 있었다. 다섯째, 산서는 춘향전의 꽃인 ‘금준미주시’를 자신의 일기인 [속잡록] 속에 소개하였고, 그 내용은 [연려실기술]에 인용되었다. 여섯째, 춘향전의 구성이나 주제로 볼 때, ‘금준미주시’는 원작가의 창의력과 강력한 비판의식이 아니고는 표현하기 어렵다.

또 이 시는 춘향전의 역사적 전개엣거 변하지 않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일곱째, 산서는 성리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상당한 문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학제에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았고, 진사에 급제했다. 그는 다수의 한시문을 창작하였다. 여덟째, 산서는 순국한 의병장 조헌의 수제자이며, 그 자신도 임병 양란 때 적과 맞서 싸우며 왜병을 직접 격퇴한 무패의 의병장이었다. 이러한 근거들로 인해 춘향전 원작가로 산서 조경남으로 추정할 수 있다.

i read some korean explanations of Chunhyangjeon story,but almost of them ignore of the korean serious curst system and neglected women's right hidden in the sad story. they often be blindness and admire their mother country, great korea. wryness, nate Q&A is rather that well studied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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