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ugust 10, 2014

Korean newspaper against the correction article of Asahi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56857&C_CC=AZ


아사히 신문 '自爆'(誤報인정) 배경
상대를 향한 과도한 증오와 집착은 결국 자신에게 손해가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펀드빌더(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스크랩하기기사목록이메일보내기프린트하기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악마의 변호인 朴正熙 전기(全13권) 趙甲濟의 現代史이야기(全14권)

아사히 신문 보도로 형성되어 있는 위안부 '강제연행' 件과 관련 하여 아사히는 이제 와서 그간의 보도(강제연행 증언)가 잘못됐다
고 했다. 아울러 아사히는, 전시 공장근로자인 여자정신대(20 여 만 명)와 위안부를 혼동한 것도 시인했으며, 한반도 지역에서 軍이
강제로 여성을 동원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도 언급했다. 이로써 '위안부=강제연행=20만명'이라는 기존공식은 극히 일부의
경우(戰時 敵國 일부여성 동원)를 빼면 사실상 無力化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韓國은 前위안부 증언을 내세워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최소한 日本內에는 이런 기존공식이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그간의 '韓國+日本內양심세력(+유엔) vs. 日本'이라는 대결 구도는 이제 '韓國(+유엔+힘빠진日本양심세력) vs. 日本'으로 바
뀌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아사히의 오보 인정은, 日本정부로 하여금 그나마 갖고있었던 정치적 차원의 도의적 사죄 및 배상
가능성마저 완전히 없애버리게 한 계기도 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분위기라면, 고노담화의 폐기도 시간상의 문제(아베 임기內 or 차기정권)일 가능성도 있다. 또, 오보인정에 힘입어 아베 수상은,
日本 교과서內 '강제연행' 기술도 삭제하겠다는 뜻을 시사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위안부 문제는 이제 韓日間 합의에 의한 해결은
거의 어려워지고 사실상 영구미제 사건으로 끝날 확률이 농후해 졌다.

아사히는 이같은 파장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인데, 왜 이제와서 '自 爆(자폭)'을 하게 된 것일까? 강제연행을 증언했던 '요시다'(吉田)라는
사람은 이미 사망한 상태라서 그가 살아 돌아와 회개(양심선언) 라도 하게 될 리스크도 없기 때문에 그냥 있었으면 됐는데 왜 아
사히는 굳이 나서서 바보같은 짓(自爆)을 했을까? 아사히가 오보 인정을 하게 된 표면적 계기는, '요시다'(吉田)의 30년도 더 지난
증언('제주도에서 강제연행')을 뒷받침하는 물증을 찾기 위해 바로 얼마 전에 제주도 현지를 방문하여 강제연행을 입증할 증거를 찾아
나섰는데 결국 실패했다는 것이다.

바보 아닌가? 아사히의 이 행동은, 잘해 봐야 본전인 취재를 '특정 한 의도' 下에 했다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만약, 반대로 '요시다'
(吉田)의 증언(강제연행)을 입증하는 증거가 이번에 진짜 나왔으면 아사히는, (30년이나 더 지난)'요시다 증언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주도에서 드디어 발견!' 이라고 대서특필이라도 할 마음이 진짜 있었던 것인가? '뭐하고 있다가 30년도 훨씬 지나서야 검증하나?
아사히는 원래 게으른가?' 라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사히는 모를 리 없다. 한 마디로, 이래도 손해, 저래도 손해인
아사히의 이번 '제주도 방문'은 그래서 사실상 '요식행위'의 하나 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自爆'을 위한 명분 만들기용 요식행위다. '自爆'도 그냥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분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요시다
증언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아 나섰으나 실패하여 오보를 인정 합니다'라는 것은 말이 되지만, '요시다 증언은 아무래도 거짓인
것 같아 오보를 인정합니다'는 유력지로서 말이 안되는 것이다.
결국, 아사히는, 요시다(吉田)의 증언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를 진지하게 찾으려 애쓰다 실패하여 어쩔 수 없이 오보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오로지 自爆(오보 인정)을 목표로 두었을 개연성이 큰 것이다.

그러면, 아사히는 왜 그냥 넘어가도 아무 상관도 없는 '오보 인정' 을 굳이 하고자 했을까? 아사히가 오보인정을 한 특집(5, 6일) 기
사의 요지는,

① 제주도(韓國 땅)에서 강제연행했다는 요시다(吉田) 증언은 허위 ② 여성근로정신대(20여만 명)와 위안부를 착각한 것 인정
③ 軍이 한반도에서 강제연행을 했다는 입증자료는 발견 안됨 ④ 그래도, 보편적 여성인권이 침해됐다는 본질은 여전함
이라는 정도로 요약된다.

그런데, 아사히는 솔직히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즉

① "한국 땅에서 강제연행 없었다" =제주도(한국 땅)에서 강제연행했 다는 요시다(吉田) 증언은 허위
② "위안부는 20만 명이 안된다" =여성근로정신대(20여만 명)와 위안 부를 착각한 것 인정
③ "한반도에서 軍이 강제연행한 일 없다" =軍이 한반도에서 강제연행 을 했다는 입증자료는 발견 안됨
④ "그러니까 제발 韓國은, '강제연행'이나 '20만 명' 주장 그만하고 보편적 여성인권 차원에서만 따졌으면 한다" =그래도, 보편적
여성인권이 침해됐다는 본질은 여전함


하사히의 이번 自爆은 한국 때문에 나왔다. 구체적으로는, 美國 등에 세워지는 위안부像이나 碑(비)가 결정적 이유가 됐다. 아사히의 오보인정
은 주로 韓國人이 추진하는 위안부像이나 碑에 단골로 들어가는 文句 (한반도내 軍에 의한 강제 연행, 20만 명)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아사
히는, 자신의 보도내용를, 韓國이 가져다가 근거 삼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을 의식한 것이다.

아사히는 그 속성(좌파)상, 정부를 비판하고 인권을 추구하기 위해, 위안부 같은 이슈를 크게 다루는 일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다만, 아
사히는 자신의 위안부 이슈화에 따른 한일 양국간 역사갈등의 무대 는 애초 日本과 韓國, 때로 유엔 정도의 제한된 범위로만 상정했는
데, 아는 바 같이 최근 한국이 이 위안부 이슈를 들고 美國 등 세계 무대로 적극 나갔으며, 이로 인해 현재 나타나는 日本에 대한 이미
지 훼손 등의 부작용은 日本 입장에서는 심각하게 고민해 볼 수 있 는 부분이다.(이 점, 한국이 노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사히는 좌파 여부를 떠나, 애초 자신이 의도한 양상을 훨씬 벗어 난 최근의 전개(전세계 위안부像, 碑 확산)에 따른 부작용(日本 불
명예 및 후세교육에 부정적 등)을 고민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 리고 지금 추세(잇따른 像, 碑 설치)라면 부작용이 심각하겠다고
아사히는 내부적으로 고민했을 가능성이 크다. 韓國 대통령이 이 른바 '고자질 외교'를 통해 위안부 문제(日本의 부도덕)를 전세계에
적극 발신하고, 美國 등에 '像과 碑'가 잇따라 들어서기 시작한 최 근 1, 2년 사이에 좌파 속성상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아사히의 내부
고민은 상당히 고조였으리라 짐작된다.

결국, 지난 30년 이상을 가만히 있다가(잘 견디다) 지금 같은 '自爆' 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이유는, 위인부 이슈가 지난 30년간은 韓日 양국간의 무대에서만 다루어지는 가운데 사죄와 용납 등이 오 가며 무난하게 콘트롤되어 아사히의 '작품(역작)'으로 존재할 수 있었지만, 최근 2년 사이 韓日관계 악화에 따라 韓國側이 이 이슈 를 설정된 무대를 벗어나 美國 등 세계로까지 갖고 나가는 과열
양상을 빚게 되자 아사히는 '뿌린 자'로서 결단의 기로에 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 '고양이' 정도로 생각했던 위안부 이슈가 1~2년 사이에 '호랑 이'를 능가할 정도로 커진 상황을 아사히로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셈이다. 바꿔 말하면, 日本內 보수지(요미우리, 산케이 등)나 정치권 의 맹공격을 무릅쓰고라도 아사히가 自爆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정
도로 최근 韓國의 위안부 이슈에 대한 접근방식이 과도하고도 비이 성적(미국에 像, 碑)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과거 30년 이상 주로 韓國편을 들던 아사히조차 두 손 들게 만들 정도로 위안부 이슈를 대하는 韓國의 태도에는 과도함이 있었고
이것이 결국 아사히의 自爆을 가져왔다는 것이 최종 결론이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비교적 親韓논조의 아사히 신문이 과연 어떤 스탠스로 나오느냐가 된다. 만약, 아사히의 이번 '自爆'에도 불구
하고, 아사히가 의도한 보람도 없이 韓國의 과도한 反日(위안부像, 碑 등)이 여전히 계속된다면, 아사히의 韓國에 대한 논조에는 근본
적인 변화가 초래될 가능성도 있다. 日本內 유력한 親韓 매체 하나 가 사라지는 것이 현실화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결국, 아사히의 自爆으로 가장 곤란한 입장에 빠진 것은 실질적으로 는 韓國이다. 위안부 이슈를 지탱하던 '증거적 동력'이 위안부 이슈
의 산실(메카)인 아사히에 의해 사실상 와해됐기 때문이다. 日本 정 부는 향후 아사히의 이번 오보인정 件을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적극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으로 韓國의 입지는 좁아지는 것 이다. 韓國은 오직, '前위안부의 증언이다'라는 주장밖에는 효과적
인 수단이 없게 됐다.

과거의 완벽한 외교 및 도덕적 승리(고노담화 성립 등) 상태가, 최근 의 과도한 反日로 인해 거의 무승부(고노담화 검증, 아사히 自爆)
상태가 됐고, 향후 최악의 경우, (우리는 끝까지 인정 안하겠지만) '아사히 신문의 오보에 국가차원으로 선동된(놀아난) 韓國'이라는
대외 이미지도 완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反日도 적당히 했으면 완승 상태를 영원히 누릴 수 있었는데, 너무 욕심부리다 무승부쯤에 왔고, 이제 은근히 역전까지 걱정해야 하
는 희한한 상황에 와 있다. 日本內 유력한 親韓 매체의 소실 가능 성은 추가로 안게 될 부담이다. 이같이 상대를 향한 과도한 증오와
집착은 결국 자신에게 손해가 되어 돌아 올 가능성이 크다.



http://www.worldkorean.net/news/articleView.html?idxno=15010

아사히신문, '위안부 강제연행 인정'한 과거기사 취소해 논란
강제연행 없었나?...일본정부나 구 일본군 기록에서 찾아낼 수 있을까?
2014년 08월 08일 (금) 08:22:37 이종환 기자 stonevalley@naver.com
아사히신문이 “위안부를 강제연행했다”는 과거 기사를 취소해 논란을 빚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8월5일 “ ‘제주도에서 연행’, 증언 뒷받침 못해 허위로 판단”이라는 타이틀로 기존보도기사를 취소한다고 알렸다.

신문은 “일본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전쟁중 위안부로 삼기 위해 폭력을 사용해 강제로 여성을 끌고 갔다는 내용의 저서를 내고, 집회에서 증언한 남성이 있었다. 아사히신문은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에 기사들에서 이 남성을 다뤘지만, 증언이 허위라는 지적이 있었다”고 밝히며, 이를 재취재한 결과 허위라고 판단해 취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신문에 따르면 문제의 남성은 요시다(吉田淸治)씨다. 그는 자신의 저서 등에서 야마구치현 노무보국회 시모노세키지부 동원부장으로 일용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요시다씨의 증언만으로 모두 16회의 기사를 내보냈다고 한다. 1982년 9월2이 오사카본부판 사회면에 첫 기사를 내보내면서 그가 오사카에서 강연하며 “제주도에서 200명의 젊은 조선인여성을 잡아들였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를 작성안 오사카본부 사회부기자(66세)는 “강연에서의 얘기 내용이 구체적이고 상세해서 전희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90년대 초에는 다른 신문사도 집회 등에서 증언하는 요시다씨를 기사로 다뤘다.

92년 4월30일 산케이신문은 조간에서 제주도에서 사실을 조사한 결과 요시다씨의 증언에 의문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으며, 다른 주간지도 ‘창작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신문 보도 후 아사히신문 동경본부 사회부 기자(53)가 데스크의 지시를 받아 요시다씨와 만나 증언을 뒷받침할 관계자나 자료를 제공할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했다.

97년 3월31일 특집기사 취재때 동경본부의 사회부기자(57)가 요시다씨를 만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허위가 아니냐는 보도가 있다는 점을 전화로 묻자 “체험한 그대로를 적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도 취재를 했으나 요시다씨의 증언이 허위라는 확증이 없었기 때문에 ‘진위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그후부터 아사히신문은 요시다씨를 더 이상 기사로 다루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자민당의 아베신조 총재(현 총리)가 2011년 11월 일본기자클럽 주최 당대표 토론회에서 “아사히신문의 오보로 인해서 요시다 같은 사기꾼이 쓴 책이 마치 사실처럼 일본내에 나돌아 문제가 크다”고 발언했다. 이를 바탕으로 일부 신문과 잡지가 아사히신문 비판을 반복했다.

이에 따라 아사히신문은 올해 4-5월 제주도에서 70대 후반에서 90대 나이에 이르는 인사 40명의 얘기를 들었으나 강제연행했다는 요시다씨의 기술을 뒷받침할 증언은 얻을 수 없었다고 했다. 건어물 제조공장에서 수십명의 여성을 끌고갔다고 하는 북서면 마을에서도 어물을 다루는 공장은 촌에서 하나밖에 없고 경영을 맡아온 사람(작고)의 아들은 “캔을 만들고 있다. 여종업원이 끌려갔다는 얘기를 아버지로부터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요시다씨의 저서를 근거로 해서 제주도를 조사한 한국정신대연구소 전 연구원인 강정숙씨는 “여러곳에서 여러 노인들의 얘기를 들었으나 요시다씨의 증언 내용과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요시다씨는 저서에서 “1943년 5월 군의 동원명령으로 제주도에 갔고, 명령서에 적힌 내용이 부인(작고)의 일기에 남아 있다”고 썼다. 하지만 이번에 요시다씨의 장남(64)한테 취재한 바, 부인은 일기를 적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요시다씨는 2000년 7월 사망했다고 한다.

요시다씨는 1993년 5월 요시미(吉見義明) 주오대 교수와 면담할 때 “(강제연행했다)는 일시와 장소를 바뀐 경우도 있었다”면서 동원명령서 내용이 적힌 일기를 제시하는 것도 거절했다고 한다. 전시중 조선반도의 동원 문제를 연구한 소토무라(外村大) 동경대 교수는 요시다씨가 소속했다는 노무보국회는 후생성과 내무성의 지시로 만들어진 조직이라면서 “지휘계통으로 봐서 군이 동원명령의 내는 것도, 직원이 직접 조선으로 파견되는 것도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요시다씨는 강제연행했다는 1943년 5월당시 제주도는 육군부대 본부가 군정을 펴고 있었다고 설명했으나 이 점에 대해서도 나가이(永井和) 교토대교수(일본근현대사)는 일본군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에 육군이 대부대를 집결한 것은 1945년 4월 이후부터라고 지적, “기술 내용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을 소개한 뒤 아사히신문은 ‘독자여러분께’라는 글을 덧붙여“요시다씨가 제주도에서 위안부를 강제연행했다는 증언은 거짓이라고 판단해 (과거 관련) 기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신문은 당시 거짓 증언을 꿰뚫어보지 못했다. 제주도를 재취재했으나 증언을 뒷받침할 얘기를 듣지 못했다. 학자들을 상대로 한 취재에서도 증언의 핵심부분에 대해 모순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기사 취소를 공식화했다.

아사히신문의 돌연한 기사 취소로 인해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논란이 다시 점화될 전망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아닌 강제연행자의 증언이나, 이를 뒷받침할 일본정부나 구일본군의 공식 자료가 절실한 시점이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 이를 증명할 내용의 자료가 나올 수 있을까?









http://www.47news.jp/korean/korean_peninsula/2014/08/0952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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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신문 “위안부 강제연행” 증언, 1992년부터 ‘허위’ 의혹 제기
14/08/06 20:10

아사히(朝日) 신문은 5일 자 조간신문 기사에 이어 6일 자 기사에서도 자사의 구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보도를 검증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아사히 신문이 검증을 통해 ‘허위’라고 판단하고 기사를 취소한 “한국 제주도에서 강제연행했다”는 일본인 남성의 증언은 1992년경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서 신빙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교도통신은 남성의 증언을 1991년 12월 이후 7차례 보도했지만, 1992년 8월 기사를 마지막으로 이후로는 기사화하지 않았다.

남성은 전 야마구치현(山口県) 노무보국회(労務報国会) 시모노세키(下関)지부 동원부장인 고(故) 요시다 세이지(吉田清治) 씨로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인’, ‘나의 전쟁범죄―조선인 강제연행’ 등의 저서를 남겼다. 저서 등에서 위안부에 동원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해 강제로 여성들을 연행했다는 등의 증언을 한 바 있다.

교도통신은 요시다 씨가 집회에서 한 발언과 취재를 바탕으로 “젖먹이 아이를 안고 있는 아기 엄마까지 겨드랑이 밑으로 양팔을 넣어 목 뒤를 죄어 트럭에 태웠다”, “조선반도에서 약 천 명의 여성을 위안부로 전선에 내보냈다”는 등의 증언과 경력을 기사로 소개했다.

요시다 씨의 증언과 관련해서는 제주도 현지에 증언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는 점과 위안부 측과의 증언과 부합되지 않는다는 등의 지적이 1992년 경부터 제기된 바 있다.【교도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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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joongang.joins.com/article/895/15453895.html?ctg=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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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익 "위안부 날조" 주장했다 망신
[중앙일보] 입력 2014.08.05 18:41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5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각종 의문과 보수우익 세력이 제기하는 '아사히 날조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스기우라 노부유키(杉浦信之) 편집담당 임원이 1면에 '위안부 문제의 본질, 직시를'이란 제목의 칼럼을, 위안부문제 취재반이 16·17면에 '위안부 문제 어떻게 전해왔는가, 독자의 의문에 답합니다'란 제목의 심층 분석 기사를 실었다.

아사히는 "위안부 문제 보도를 되돌아보고 독자에 설명하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 미래를 향한 새로운 논의를 시작하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며 5, 6일자 이틀 동안 위안부 특집을 게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위안부 관련 보도의 선구자 역할을 해 온 아사히는 이날 과거 일부 기사의 오류에 대해선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위안부로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여성으로서의 존엄을 짓밟힌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며 일본 내 보수세력의 '책임 부정론'에 대해 경고했다.

신문은 ^'제주도 (강제)연행' 증언의 허구 여부 ^강제연행 유무 ^일본군의 관여를 증명하는 자료 유무 ^'정신대'와의 혼동 ^전 위안부의 최초증언 사실 왜곡 여부 등으로 구분해 그 동안 취재, 검증해 온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위안부 문제 보도 초기인 1982년 9월 아사히의 기사를 취소한 부분. 아사히는 당시 "2차 대전 당시 제주도에서 200명의 젊은 조선인 여성을 사냥하다시피 해 강제로 끌고 갔다"고 증언한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사망)의 주장에 기반해 기사를 작성했다. 이후 요시다 증언의 신빙성에 문제가 제기됐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1월 당수 토론에서 "아사히신문의 오보에 의해 요시다라고 하는 사기꾼과 같은 자가 만든 책이 마치 사실처럼 일본 내에 퍼져 (위안부) 문제가 커져 버렸다"고 아사히를 맹비난했다. 아사히는 이날 지면에서 "올 4~5월에 취재팀이 제주도를 찾아 70대 후반에서 90대의 주민 40명을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 '강제연행'했다는 요시다의 말을 뒷받침할만한 증언을 얻지 못했다. 증언을 거짓으로 판단해 기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사히는 떳떳한 반성과 더불어 90년대 초 보수성향의 산케이(産經)와 요미우리(讀賣) 신문 또한 요시다의 증언을 비중 있게 보도했던 사실도 지적했다. 일방적으로 아사히만을 비난할 상황이 아니란 주장이다.

아사히는 '강제연행'에 대해선 "일본군 등이 위안부를 직접 연행했다는 일 정부의 공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걸 근거로 '강제연행은 없었다'며 국가의 책임이 전혀 없다는 식의 주장을 일부 정치인이나 식자들이 반복해 왔다"며 "(식민지 혹은 점령지였던 한국·대만·인도네시아 등의 사례에서) 공통되는 건 여성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가 되는 강제성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문은 90년대 초 주로 군수공장에 동원된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해 쓴 사실도 인정했다.

스기우라 편집담당 임원은 "과거의 일부 부정확했던 보도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해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걸 이유로 '위안부 문제는 날조' '전 위안부에 사과할 이유가 없다' 등의 주장을 하는 데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피해자를 '매춘부'등으로 폄하해 자국의 명예를 지키려고 하는 일부의 논조가 일·한 양국의 내셔널리즘을 자극해 문제를 꼬이게 하는 원인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http://www.ytn.co.kr/_ln/0104_201408091805205162

아베 "위안부 강제연행, 미확인 견해 입증"
기사나도한마디
2014-08-09 17:42페이스북 보내기트위터 보내기네이트온 보내기마이피플 보내기뉴스스탠드 설정하기목록 보기인쇄하기폰트크게폰트작게

아사히신문이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과거 보도에 일부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한 것과 관련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위안부 강제연행 기록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견해가 옳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1차 아베 정권에서 정부 발견 자료 가운데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보여주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각의 결정을 한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아사히신문은 지난 5일 일본군 위안부 특집기사에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여성으로서의 존엄을 짓밟힌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며, 요시다 세이지 씨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판단해 1980년대에서 90년대에 보도한 관련 기사를 취소했습니다.

요시다 씨는 일본이 제주도에서 다수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가 위안부로 삼았다는 증언을 했습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발언은 아사히신문의 기사 취소를 계기로 고노담화 취소나 일본정부 면책론을 주장하는 우익 세력의 움직임에 힘을 실어 주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20470



아사히신문, 침묵깨고 군위안부 특집..."본질 직시하자"
"자유 뺏긴채 여성존엄 유린당한 것이 문제 본질"
14.08.05 12:25l최종 업데이트 14.08.05 12:25l연합뉴스(yonh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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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본 사회에 알려지는 데 큰 역할을 한 아사히신문이 5일 2개면 이상을 할애한 특집기사를 통해 여성에 대한 자유의 박탈과 존엄 유린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자고 제언했다.

아사히는 일본 우익인사들이 부정하는 군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해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에서는 군의 의향을 받은 업체가 '좋은 일이 있다'고 속여 많은 여성을 모집하는 것이 가능했다"며 "군(軍) 등이 조직적으로 납치와 같은 연행을 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적었다.

하지만, 신문은 "인도네시아 등 일본군의 점령하에 있던 지역에서는 군이 현지 여성을 강제연행한 것을 나타내는 자료가 확인되고 있다"며 "(한국·대만과 인도네시아 등의 사례에서) 공통되는 것은 여성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가 된 강제성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아사히의 스기우라 노부유키(杉浦信之) 편집담당자는 이날 자 1면에 실은 칼럼을 통해 "전쟁 중 일본군 병사들의 성(性) 상대가 되길 강요당한 여성이 있었던 사실은 지울 수 없다"며 "위안부로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여성으로서의 존엄을 짓밟힌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웃과 미래지향의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위안부 문제는 피할 수 없는 과제 중 하나"라며 "우리는 앞으로도 변함없는 자세로 이 문제를 보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아사히는 2차대전 때 제주도에서 다수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갔다고 증언한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사망) 씨의 주장에 기반해 작성한 1980∼90년대의 자사 기사들에 대해 "요시다가 제주도에서 군위안부를 강제연행했다고 증언한 것은 거짓이라고 판단하고 기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산케이 신문을 포함, 군위안부와 관련한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쪽으로부터 집요하게 공격받았던 요시다 관련 기사에 대해 오류를 공식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아사히는 "일부 부정확한 보도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해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것을 이유로 '위안부 문제는 날조'라고 하는 주장과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하는 논의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아사히는 군위안부 문제를 알리는데 선구자 역할을 했지만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군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河野)담화의 검증결과를 공개하고, 산케이 등 보수 매체들이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여론몰이'를 하는 동안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피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태그:군 위안부, 아사히 신문 태그입력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650148.html


일 자민당, ‘위안부 반성’ 아사히 보도도 검증 시사
등록 : 2014.08.06 20:12수정 : 2014.08.06 22:21툴바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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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집회에서 초등학생 이화윤양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게 드리는 편지를 낭독한 뒤 이용수 할머니와 포옹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아사히, 이틀째 ‘위안부 특집’
과거 ‘강제동원 증언’ 기사 취소에
이시바 간사장 “의회서 검증 필요”
‘강제성 부정’ 우익세력들도 공세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인간 존엄성을 박탈한 것”이라며 일본 사회의 반성을 촉구한 <아사히신문>의 특집 기사에 대해, 일본 우익세력이 공격에 나섰다. 특히 신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자사의 과거 기사에 일부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한 점을 빌미 삼아, 우익 언론들은 위안부 문제로 일본이 부당한 공격을 받고 있다는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집권 자민당 간사장은 <아사히신문>의 위안부 관련 기사에 대해 의회에서 검증할 뜻을 내비쳤다고 일본 언론들이 6일 보도했다. 이시바 간사장은 5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과거 기사들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 이웃나라와의 우호, 국민 감정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의회에서 검증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사히신문>은) 일본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갖게 된 나라, 특히 한국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도 말했다. 관련자를 의회에 소환할 생각이냐는 질문에는 “우리 당의 담당자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의회 소환 가능성도 열어뒀다.
<아사히신문>은 5일치에서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자’는 특집 기사들을 내보내면서, 제주도에서 위안부 강제연행을 했다고 증언한 요시다 세이지의 주장을 1980~1990년대에 보도했으나 이 증언의 신빙성이 의심돼 해당 기사는 취소한다고 밝혔다.
일본 우익세력은 이를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 자체를 부정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극우인 <산케이신문>은 6일 “고노 담화는 근거 없이 작문됐다. 위안부가 강제연행됐다는 주장의 근거는 이미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고노 담화는 1993년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한 일본 정부의 담화다. <산케이신문>은 이날 “<아사히신문>이 잘못을 인정하고 기사를 취소하는 데 30년 이상이나 걸린 탓에 국제사회에서 일본에 대한 나쁜 인상을 심었고 일본의 명예가 손상당했다”는 니시오카 쓰토무 도쿄기독교대 교수의 주장도 보도했다.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정하는 데 앞장서 온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도 이날 “(요시다 기사가 처음 나온 1982년부터) 32년간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사히신문>의 큰 죄”라며 “(요시다) 증언이 근거가 돼 (위안부) 강제연행이 있었다고 (일본이) 국제사회의 부당한 비판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5일에 이어 6일치에도 위안부 관련 특집 기사를 2개면에 걸쳐 보도했다. 6일 기사들 중에는 전문가 3인이 이 신문의 위안부 보도 기사를 평가한 글도 있었다. 아베 신조 정부의 고노 담화 검증 작업에 참여한 하타 이쿠히코는 기고문에서 “미군이 버마에서 조선인 위안부를 심문한 보고서를 보면 위안부가 한달에 300~1500엔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성범죄에 대해서도 추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며 일본 우익의 시각을 드러냈다. 반면,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는 자사 보도에 대한 검증 작업을 벌인 <아사히신문>의 보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피해자에게 다가가려는 자세가 지면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사히신문> 기사는 한일 양국 정부의 공방 끝에 위안부 문제가 악화됐다는 식으로 읽히는데, (위안부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확실히 직시하지 않으려는 일본 정부의 자세에 있다”고 썼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http://daily.hankooki.com/lpage/world/201408/dh20140806100204138450.htm

아사히 '군위안부 보도'에 日보수·우익지 '파상공세'

(도쿄=연합뉴스) 이세원기자
입력시간 : 2014/08/06 10:02:04수정시간 : 2014.08.10 00: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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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朝日)신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특집기사를 내고 "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라"고 제언하면서 과거 기사의 일부에 오류가 있었다며 취소하자 일본 보수·우익 신문이 파상적인 공세를 폈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河野)담화의 검증·철회를 주장해 온 극우 성향의 산케이(産經)신문은 6일 사설에서 "근거없이 작문된 1993년 고노담화 등에서의 위안부가 강제연행됐다는 주장의 근거는 이미 붕괴됐다"고 규정했다.

이 신문은 기사를 취소한다는 표현이 특집 기사에 들어 있지만 1면 기사나 제목에는 없다며 삭제대상 기사 정도는 명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아사히신문의 보도가 한일 관계 악화의 발단이 됐음에도 전문가의 연구 부족 등으로 책임을 떠넘겼다고 비난했다.

산케이신문은 그동안 자사가 "고노담화가 허구적"이라고 주장하고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사망) 씨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밝힌 것은 사실이 쌓여 역사 인식이 바르게 전해질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라며 자사의 취재·보도를 부각했다.

앞서 아사히신문은 5일 특집기사를 내면서 '요시다가 제주도에서 군 위안부를 강제연행했다고 증언한 것이 거짓이라고 판단해 1980∼90년대에 게재한 관련 기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산케이신문은 '아사히신문이 잘못을 인정하고 기사를 취소하는 데 30년이나 걸린 탓에 국제사회에서 일본에 대한 나쁜 인상을 심었고 일본의 명예가 손상당했다'는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도쿄기독교대 교수의 견해를 함께 실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문제가 된 아사히신문의 보도가 한국의 반일 여론은 물론 일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세계에 심는 근거 중 하나였으며 좀 더 일찍 정정했어야 했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일본 정부의 고노담화 검증에 참여한 역사학자 하타 이쿠히코(秦郁彦) 씨가 1992년 요시다 씨의 증언에 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기사가 수정되지 않았다고 문제 삼았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이나 문제점을 물리적인 강제연행의 문제로 좁게 해석하고서 '정부 자료에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이 없다'는 식으로 물타기를 해온 일본 우익세력은 아사히신문의 기사 취소를 계기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부정하는 언동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자민당 간사장이 아사히신문 관계자를 국회에 소환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을 신호탄으로 이런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본 내 군 위안부 문제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주오(中央)대 교수는 "자유를 박탈당하고, 여성으로서의 존엄을 짓밟힌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5일자 아사히신문 보도에 관해 "여성들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로 삼았다는 강제성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고 평가했다.

군 위안부 동원에 관해 일본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해 온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학자 등은 인도네시아 바타비아(현 자카르타)에서 열린 BC급 전범 군사재판 기록에서 강제 연행 사실이 확인된다는 점을 누차 밝혀왔다.

또 여성에 대한 전시 성폭력·성노에 문제인 군 위안부 제도를 강제 연행 여부에 국한해 접근하는 것은 사안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저해할 수 있다며 경계해 왔다.





http://www3.nhk.or.jp/nhkworld/korean/top/news06.html
일미 외상, 납치 문제와 대 북조선 문제 공조 확인해
미얀마를 방문 중인 기시다 일본 외상은 케리 미 국무장관과 회담하고, 납치 문제를 둘러싼 북조선과의 협의와 관련해 "납치, 핵, 미사일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이해를 구하고, 대 북조선 정책과 관련해 앞으로도 긴밀히 공조해 가기로 합의했습니다.

기시다 외상은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에서 일본 시간으로 9일 오후, 케리 미 국무장관과 약 50분에 걸쳐 회담했습니다.

회담에서 기시다 외상은 납치 문제를 둘러싼 북조선과의 협의와 관련해, 북조선 측이 납치 피해자 등의 조사를 실시하고 있어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걸쳐 첫 조사결과가 일본 측으로 전달될 예정인 것 등을 설명하고, 대 북조선 정책과 관련해 앞으로도 긴밀히 공조해 가기로 합의했습니다.

기시다 외상은 또, 케리 장관이 이라크 북부에서 이슬람 과격파 조직에 대한 선별 공습을 실시했다고 설명한 데 대해,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이라크와 미국에 의한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해왔고, 이번 선별 공습 또한 그 일환으로 이라크 정부의 동의 하에 실시된 공격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뉴스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09/2014080990127.html



[주말뉴스 토] 아베 "위안부 강제연행 미확인 입증"
정원석 기자
등록 2014.08.09 19:18 / 수정 2014.08.09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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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먼저 일본 아사히 신문 보도와 일본 정부의 적반하장 태도 관련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은 최근 특집 보도를 통해 제주 위안부 강제연행을 증언한 한 일본 인사의 발언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그 보도를 취소한다고 밝혔습니다. 정론직필로 일본의 지식인 사회의 비판적 담론을 형성해 왔던 이 신문이 사실 확인이 안된 부분을 바로 잡은 것이지 위안부 문제에 비판적인 논조에는 변함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보수 언론들이 위안부 강제 동원과 관련해 아시히 마저도 오류를 인정했다는 식으로 공세를 펴고 있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아베 총리가 여기에 끼어들어 "위안부를 강제연행한 사료를 못 찾았다"는 자신들의 입장이 확인된 것이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악화된 한일관계도 아사히신문 탓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정원석 기자입니다.

[리포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문제의 산케이 신문을 통해 위안부 강제성을 부인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단독 인터뷰 형식에서 아베는 "아사히신문이 강제연행 증언을 취소하면서 군이나 관헌 등이 강제연행을 했다는 기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기존 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님이 증명됐다"고 말했습니다.

또 "아사히신문의 당시 보도가 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한일 관계에 큰 영향을 주고 교과서에까지 강제연행이 기술됐다"고 밝혔습니다. 꼬인 양국 관계마저 슬그머니 아사히 신문 탓으로 돌린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잘못임을 인정하는 아사히신문과 대비해 전쟁 면책론이나 고노담화 취소 등 총공세로 맞서는 우익세력에 힘을 실어준 것이나 마찬가지.

아사히신문은 최근 위안부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지난 80-90년대 제주 위안부 강제연행을 증언한 요시다 세이지의 발언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그와 관련한 보도를 취소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문제의 본질은 여성 인권 탄압에 있다며 위안부 문제에 미온적인 아베 정부에 대해선 비판적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산케이를 필두로 요미우리 등 일본 우익 언론과 아베 정부는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강제연행은 확인되지 않는다며 적반하장격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TV조선 정원석입니다.









http://korean.cri.cn/1620/2014/08/08/1s216531.htm


일본 아사히신붕 위안부문제 관련한 일부 보도 철회
2014-08-08 15:55:21 cri 글씨크기: A A A



일본 아사히신붕의 위안부문제와 관련한 보도가 최근 일본 각 계층에서 비교적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또한 일본 우익여론의 맹렬한 비평을 받았습니다. 압력때문에 아사히신붕은 5일과 6일 연속 이틀동안 위안부와 관련한 특집을 게재했으며 일부 보도를 철회했습니다.

5일부터 일본 아사히신붕은 연속 이틀동안 그 조간지에 위안부와 관련한 과거보도에 대한 조사의 글을 게재했습니다. 이 신문은 한국 제주도에서 여성을 강제적으로 끌어갔다고 한 일본국적 남성의 증언은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에 앞선 관련 보도를 철회한다고 표했습니다.

이 남성은 야마구치현 노무보국회 전 지부동원부장 요시다 세이지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조선위안부와 일본인", "나의 전쟁범죄, 조선인 강제연행" 등 저서를 썼습니다. 요시다는 저서에서 자기는 일찍 폭력으로 여성을 위안부로 강제연행했다고 서술했습니다. 일본의 일부 매체는 요시다의 집회발언과 본인에 대한 특별취재에 근거하여 "약 1천명의 여성이 조선반도에서 전쟁터에 보내져 위안부로 되었다" 등 증언과 경력을 보도했습니다. 아사히신붕이 이에 앞서 요시다의 증언에 대해 게제한 보도는 일본 우익세력의 강력한 불만을 자아냈습니다. 일본 우익세력이 통제하고 있는 여론은 요시다가 현재 이미 사망했으며 이밖에 제주도 현지에 증거가 없고 위안부측도 관련 증언이 없기 때문에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이에 앞선 아사히신붕의 위안부문제 조사의 글에는 사실이 아닌 내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보수경향의 산케이신붕은 앞장서서 아사히신붕을 비판했습니다. 산케이신붕은 6일 제1면에 "아사히신붕의 위안부문제와 관련한 보도는 잘못된 것이다"라는 보도를 게재했으며 또 제2면과 제3면, 제8면에 비판글을 집중 게재했습니다. 요미우리신붕은 "위안부가 자유를 박탈당하고 여성의 존엄이 여지없이 짓밟혔으며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다"라고 한 아사히신붕의 내용을 비난했습니다. 요미우리신붕은 아사히신붕이 위안부문제는 광범한 의미에서 강제성을 갖고 있으며 때문에 이 일과 관련하여 일본정부에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고 한것은 개념을 몰래 바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부 매체는 자민당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이 최근 아시히신붕을 비평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은 아사히신붕의 보도는 지역의 평화와 안정, 이웃 나라와의 친선 그리고 국민의 감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면서 의회에서 검증을 진행할 필요가 있으며 그때 가서 아사히신붕의 관련 인원을 불러 국회에서 증언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측의 압력에 못이겨 아사히신붕은 결국 관련 보도를 철회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나비 필레이는 6일 성명을 발표하고 일본정부의 위안부문제 대응조치를 엄격히 비평했습니다. 그는 일본정부가 위안부문제에서 전면적이고 공정하며 영구한 해결을 모색하는데서 실패했다고 하면서 자기는 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필레이 판무관은 또한 위안부 피해자 등은 전쟁이 종식된 수십년동안 인권에서 여전히 침범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 문제는 역사문제가 아니라 현시점에서의 문제이며 하루라도 빨리 정의를 실현하지 않고 배상 하지 않는다면 인권침범이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필레이 판무관은 일본 관변측인사의 부인과 비하성적인 발언은 위안부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7월 일본의 인권상황과 관련해 최종문건을 발표하고 일본정부가 위안부문제와 관련하여 사과하며 국가적 책임을 승인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필레이의 발언은 일본정부에 큰 불쾌감을 주었습니다. 일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위안부문제가 일본과 한국의 청구권 협정에 따라 전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반박하고 이는 일본의 일관한 입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일본정부는 또한 이 문제에 대한 자체입장을 국제사회에 끊임없이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http://stock.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80510195603367

"위안부는 女인권유린…강제성 인정" 日아사히 특집보도
최종수정 2014.08.05 11:10기사입력 2014.08.05 11:10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일본의 유력 일간 아사히(朝日)신문이 5일 위안부 특집 기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성의 인권 유린이었다'는 본질을 직시하자고 주장했다.

아사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여성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가 된 강제성이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아사히는 "군(軍) 등이 조직적으로 납치 같은 연행을 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인도네시아 등 일본군 점령 아래 있던 지역에서는 군이 현지 여성을 강제 연행한 듯한 자료가 확인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사히는 이어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에서는 군으로부터 위탁 받은 업체가 '좋은 일이 있다'고 속여 많은 여성을 모집하는 게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우익 인사들이 부정하는 군 위안부 강제 연행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아사히의 스기우라 노부유키(杉浦信之) 편집 담당자는 이날 1면 칼럼을 통해 "전쟁 중 일본군의 성(性) 상대가 되길 강요당한 여성이 있었다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이라며 "위안부로 자유를 박탈당하고 여성으로서 존엄을 짓밟힌 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웃과 미래지향의 안정적 관계를 구축하는 데 해결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가 위안부 문제"라며 "우리는 앞으로도 변함없는 자세로 위안부 문제를 보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아사히는 논란이 됐던 1980~1990년대 자사 기사들에 일부 오류가 있었다는 점도 인정했다. 해당 기사들은 2차대전 당시 제주도에서 다수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갔다고 증언한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사망)씨의 주장에 기반해 작성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아사히는 "요시다씨가 제주도에서 군 위안부 강제 연행에 나섰다고 증언한 것은 거짓이라고 판단해 기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사히는 "일부 부정확한 보도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해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면서 "그렇다고 이를 이유로 '위안부 문제는 날조'라는 주장과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과할 이유가 없다'는 논의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732776



위안부 문제 놓고 … 일본 신문들의 전쟁
아사히 '본질 직시' 특집 기사서 과거 일부 기사 오류 인정하자
요미우리 등 "책임 져야" 공격
댓글 1 [조인스] 기사입력 2014/08/0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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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이 5, 6일 2회에 걸쳐 게재한 위안부 관련 특집기사에 대해 일본 우파 언론들이 파상공세를 펼쳤다. “위안부 문제 본질을 직시해야 미래가 있다”는 기사 취지는 아랑곳없이 일부 기사의 오류를 인정한 것에 대해 기다렸다는 듯 “위안부 강제동원은 허구였다”는 식의 주장들이 이어졌다. 이들 우익 언론들은 한·일 관계가 악화된 모든 책임은 아사히 신문 위안부 기사에 있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보수 정치권도 관련 기사를 국회에서 검증할 필요가 있다며 군불을 때고 있다.

보수성향의 산케이(産經)와 요미우리(讀賣)신문이 맨 앞에서 ‘아사히 때리기’에 나섰다. 산케이는 6일 1면에 ‘아사히 위안부 보도 잘못’이란 기사를 비롯, 2·3·8면에 집중적으로 비판 기사를 실었다. 특히 사설에선 “위안부 강제 연행의 근간이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제주도에서 205명의 젊은 조선인 여성을 사냥하다시피 해 강제로 끌고 갔다”는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사망)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언을 새로 찾지 못한 아사히가 기사를 취소한 데 대한 것이다. 산케이는 이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고노(河野)담화를 “근거 없이 작문됐다”고 못박았다. 산케이는 또 “자국(일본)의 명예를 지키려는 일부 논조가 한·일 양국의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아사히 지적엔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몰아 부쳤다.

요미우리 신문도 ‘아사히 32년후의 철회, 강제연행 증언은 허위’란 1면 기사 등 4개면에 걸쳐 아사히를 성토했다. 91년 8월 보도된 위안부 출신 여성에 대해서는 “기생 학교에 다닌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지만 언급되지 않았다”며 전체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폄하했다. 요미우리는 또 최근 고노담화 검증에 참여한 역사학자 하타 이쿠히코(秦郁彦)가 92년 요시다 증언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수정되지 않았다며 “20년 넘게 방치한 아사히 책임이 매우 무겁다”고 평가했다. “위안부로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여성으로서 존엄을 짓밟힌 것이 문제의 본질”이란 아사히 주장에 대해선 “넓은 의미의 강제성이 있었다고 일본 정부 책임을 묻는 것은 ‘논의 바꿔치기’”라며 보수세력의 ‘책임 부정론’을 거들었다.

자민당도 우익 언론 편들기에 동참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따르면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간사장은 5일 “지역의 평화·안정, 이웃나라와의 우호, 국민감정에 영향을 끼친 보도”라며 “의회에서 검증할 필요가 있으며 아사히 관계자를 국회에 불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도쿄신문은 “보도 내용 관련, 기자를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국회에 부르는 건 극히 이례적”이라며, “정부·여당에 불리한 보도를 하는 미디어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면 보도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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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 위안부보도 검증 ‘강제연행’ 증언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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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05
伊藤一郎 / 毎日新聞

아사히신문은 5일자 조간에서 종군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동지의 보도내용을 검증하는 특집 기사를 게재했다. “ ‘위안부 문제는 아사히신문의 날조’라는 지적은 이유 없는 비판”이라면서 특히 1990년대 초에 증언이나 부족한 자료를 근거로 기사를 지속적으로 썼다며, 되돌아보면 ‘일부 사실관계의 과오(過誤)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한국‧제주도에서 강제 연행했다’라는 증언은 ‘허위라고 판단해 기사를 취소한다’고 했다.

동지는 1면에서, 원위안부 기사를 쓴 동지의 전 기자가 이름에 상처를 받고 있는 사태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5~6 일자 지면에서 특집을 준비한다고 했다.

잘못을 인정한 일부 기사에 대해서는 「증거 취재가 불충분했던 점은 반성한다」라고 기술. 한편으로 「전시중에 일본군병사들의 성 상대를 강요당한 여성이 있었던 사실을 지울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특집 면에서 다섯 개의 논점으로 독자의 의문에 대한 답변을 게재. 한국 미디어보다 먼저 전위안부의 증언을 보도했다는 전 기자의 기사에 「위안부와 정신대의 혼동」이 있었다고 인정했지만, ‘한국에서도 당시 혼동이 있어서 전 기자도 오용(誤用) 했다」라고 해명했다.

또, 「제주도에서 위안부 사냥을 했다」라고 증언한 吉田清治(요시다 세이지씨‧고인)를 16회에 걸쳐서 기사로 다룬 점도 검증. 동지가 제주도에서 재취재한 결과, 증언을 증명하는 이야기를 얻을 수 없었던 것등에서 증언은 허위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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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아사히 ‘위안부 보도’ 취소에 “강제연행 미확인 입증”
입력2014.08.09 (14:19) 단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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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신문이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보도에 일부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한 것과 관련해 아베 일본 총리는 강제연행 기록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견해가 옳다는 것이 판명된 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제1차 아베 정권에서는 '정부 발견 자료 가운데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보여주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각의 결정을 했는데 다시 한번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아사히신문은 지난 5일 일본군 위안부 특집기사에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여성으로서의 존엄을 짓밟힌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지적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려는 일본 우익 세력들에게 경종을 울렸습니다.

다만 2차대전 당시 제주도에서 다수 여성을 강제 연행했다고 증언한 일본인 요시다 씨의 주장에 기반해 작성한 1980∼90년대의 자사 기사들은 취소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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