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ugust 28, 2012

Byeolgam,a party planner in Joseon royal co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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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공개를 원하셨지만 혼자보기 아까와서..^_^**

조선시대의 파티 플래너(Party Planner) – ‘별감(別監)’

화류계를 지배했던 별감(別監)과 기생(妓生)의 특수관계,
그들이 주도했던 ‘승전(承傳)놀음’이란 어떤 것인가?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풍속화 ‘주사거배(酒肆擧盃)’.
가운데 화려한 빨간 옷(紅衣)을 입은 사람이 별감이다.
홍의(紅衣)는 별감만이 입을 수 있는 별감 특유의 옷이다.





액정서(掖庭署)에 소속된 별감(別監)

사전을 찾아보면 별감(別監)이란 단어가 지시하는 대상은 여럿이다. 유향소(留鄕所)의 좌수(座首) 다음가는 자리를 별감이라 부르고, 또 하인들끼리 서로를 별감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궁중의 액정서(掖庭署) 소속의 별감(別監)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조선시대의 통치규범을 확립한 조선왕조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이전(吏典)’ ‘잡직(雜職)조’에 액정서(掖庭署)란 관청이 있는데, 액정서(掖庭署)에 소속된 별감(別監)의 임무는 이렇다.

‘왕명의 전달과 알현(謁見, 傳謁) 및 임금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의 공급, 궐문 자물쇠와 열쇠의 관리, 궁궐 내정(內庭)의 설비 등의 임무를 맡는다.’



액정서(掖庭署)에 소속되어 있는 별감(別監)들의 임무는 왕명(王命)의 전달과
왕의 알현(謁見)을 돕는 일, 임금의 업무에 필요한 도구를 공급하고
연회를 준비하는 일과 궁궐의 여러 시설물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첫째 임금의 명(命)을 전달하거나 임금을 알현하는 일을 중간에서 대신 전하는 일, 그리고 임금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를 간수하고 대령하는 일로 주로 임금과 관계된 일이다. 그 다음이 대궐의 관리에 관계된 일이다. 즉 대궐 안에 있는 온갖 문의 열쇠, 자물쇠를 관리하고, 궁궐 마당에 무언가 설치하는 일을 도맡는다. 이런 일들은 문필(文筆)에 관계되는 양반들의 관직과는 달리 몸을 부려서 하는 육체노동에 해당한다.

위의 ‘경국대전’에서 ‘왕명(王命)을 전달한다’ 해서 꼭 왕에게만 소속된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그렇지는 않다. 별감(別監)은 왕비와 동궁에게도 소속돼 있다.

‘경국대전’의 ‘형전(刑典)’ ‘궐내(闕內) 각차비(各差備)’에 별감의 수가 나와 있는데, 왕의 거처인 대전(大殿)의 별감은 46명, 왕비전 별감 16명, 세자궁 별감 18명, 문소전(文昭殿) 별감 6명으로 모두 86명이다. 연산군 때 120명이 된 적이 있고 인조 때 150명으로 증가한 적도 있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일로 생각된다.



정조(正祖)의 화성행궁(華城行宮) 당시 행차의 중심 인물인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탄 가마 ‘자궁가교(慈宮駕轎)’ 옆으로
별감(別監)들이 줄지어 따라가고 있다.


액정서(掖庭署)의 조직은 ‘정6품 사알 1명, 사약 1명/종6품 부사약 1명/정7품 사안 2명/종7품 부사안 3명/정8품 사포 2명/종8품 부사포 3명/정9품 사소 6명/종9품 부사소 9명’으로 되어있다.

정6품과 종6품의 사알(司謁), 사약(司쿫), 부사약(副司쿫)은 오로지 대전(大殿, 임금) 소속이다. 정7품 사안 2명부터는 왕비전과 세자궁 소속이다. 그리고 정7품 사안까지는 완전히 독립된 위계지만, 종7품 부사안(副司案) 부터는 별감들이 돌아가면서 보직을 맡는다. 즉 종7품 봉무랑(奉務郞)이 별감으로서 승진할 수 있는 최고의 계급이다. 요컨대 액정서(掖庭署)를 채우는 주 세력은 별감(別監)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조(正祖)의 화성행궁(華城行宮)을 그린 의궤 ‘원행을묘반차도(園行乙卯整理儀軌)’인데,
그림의 중앙 ‘좌마’라고 쓰인 곳이 정조대왕의 자리이고, 전후좌우를 홍의(紅衣)를 입은
대전별감(大殿別監)을 비롯하여 장용영(壯勇營) 군사들이 둘러싸고 있다.
을묘년 능행은 13차례 화성(華城) 능행(陵行) 행차 중 규모가 가장 성대했다.


흥미로운 것은 관직 이름을 보면 이들이 하는 일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알(司謁)의 ‘사(司)’는 관장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알(司謁)은 ‘알현’을 관장한다, ‘사약(司쿫)’은 자물쇠를 관장한다, ‘사안(司案)’은 ‘서안(書案)을 관장한다, ‘사포(司圃)’는 채소밭, 혹은 꽃밭을 관장한다, ‘사소(司掃)’는 청소를 관장한다는 뜻이 된다. 이름만 들어도 이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맡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별감(別監)은 그들의 직무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별감을 독특한 존재로 만들었던 것은 별감이 ‘노는 존재’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별감(別監)은 ‘놀이’를 주관하는 일을 맡아 하면서 연회 행사장을 꾸미고, 기생(妓生)을 불러 가무(歌舞)를 제공하고, 행사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이 유흥을 즐길 수 있도록 챙기는 일을 했다. 지금으로 본다면 ‘파티 플래너(Party Planner)’ 혹은 이벤트 기획자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들은 기방(妓房)의 기녀(妓女)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존재여서, 화류계를 드나드는 양반들도 별감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의 가장 화려한 사교문화의 주역을 맡았던 별감(別監). 그들 만이 입을 수 있었던 홍의(紅衣) 만큼 독특한 존재였던 별감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조선시대의 오렌지족, 별감(別監)의 패션

별감(別監)의 생활은 사치스럽고 소비적이었던 바, 그런 생활의 특징적 국면이 잘 드러난 분야가 바로 복색이었다. 예컨대 한문 단편 ‘재회’는 그 첫머리를 “한 부잣집 아들이 외도에 빠져 가산이 많이 기울었지만, 별감이 된 까닭에 의복이 매우 화려했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한양가’가 묘사하고 있는 별감의 패션을 보자.



별감(別監)은 붉은 색의 홍의(紅衣)를 입는 유일한 관직이다.


홍의(紅衣)는 별감만이 입을 수 있는 별감 특유의 옷이다. 이것은 다홍색의 생초로 만든다.

다홍생초 고운 홍의 숙초창의 받쳐 입고 / 보라누비 저고리에 외올뜨기 누비바지 /
양색단 누비배자 전배자 받쳐 입고 / 금향수주 누비토수 전토수 받쳐 끼고

생초는 생사, 곧 삶지 않은 명주실로 짠 비단이다. 홍의 안에는 ‘숙초창의(熟綃氅衣)’를 받쳐 입는다 했는데, 창의는 공태와 무가 없는 통소매에 양옆을 튼 보통 사람의 간단한 나들이옷이다. 이때 창의는 숙초, 곧 삶은 명주실로 짠 비단으로 만든다.

창의(氅衣) 속에 입는 저고리는 보라색의 누비저고리이고, 바지도 외올뜨기 누비바지다. 누비는 손이 많이 가는 것이라 사치품이다. 저고리 위에는 배자를 덧입는다. 양색단(兩色緞)은 씨와 날의 빛이 다른 실로 짠 비단이다. 이것을 감으로 삼아 만든 배자에 솜을 넣어 누빈 것이니, 아주 호사스런 옷이다. ‘전배자’는 짐승의 털가죽(氈)을 안에 댄 배자를 말한다. 이 역시 호사치레다.

토시는 저고리 소매처럼 생긴 방한구로 팔에 끼는 것이다. ‘전토시’는 전배자처럼 짐승의 털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금향수주 누비토수’의 금향(錦香)은 붉은빛을 띤 검누른 빛깔이고, 수주(水紬)는 아주 품질이 좋은 비단이다. 즉 검붉은빛의 고급 비단으로 만든 토시다.



신윤복의 풍속화 ‘야금모행(夜禁冒行)’.
화려한 붉은 옷을 입은 대전별감(大殿 別監)의 모습.


옷 뿐 아니라 별감의 장신구 치레도 화려하고 사치스럽다. 홍의(紅衣)에 걸맞는 정교한 장식품으로 치장을 하였는데..

중동치레 불작시면 우단 대단 도리불수 / 각색 줌치 묘히 접어 나비매듭 벌매듭에/파리매듭 도래매듭 색색이로 꿰어차고 / 오색비단 괴불줌치 약낭 향낭 섞어차고 / 이궁전 대방전과 금사향 자개향을 / 고름마다 걸어 차고 대모장도 서장도며 / 밀화장도 백옥장도 안팎으로 빗기 차고 / 삼승보선 순혹파서 맵시있게 하여 신고 / 제제창창 앉은 모양 절차도 거룩하다

중동치레는 허리 부분의 치장이다. 대체로 허리띠, 쌈지, 주머니, 면경집 따위를 허리춤에 차는데, 이것들을 호사스럽게 하여 사치를 하는 것이다. ‘우단 대단 도리불수’에서 ‘대단’은 중국제 비단이고 ‘우단’은 거죽에 고운 털이 돋게 짠 비단이다.

괴불은 괴불주머니는 네모난 헝겊을 마름 모양으로 접고 안에 솜을 통통하게 넣어 수를 놓고 색실을 달아 주머니 끝에 다는 장식용 노리개다. 이 외에도 약냥(藥囊)·향낭(香囊), 곧 약주머니와 향주머니를 다는데, 이궁전 대방전 금사향 자개향이 바로 약낭 향낭에 들어가는 것이다.

주머니, 괴불줌치, 약낭, 향낭을 단 뒤에 장도를 달았는데, 대모장도, 서장도, 밀화장도, 백옥장도는 모두 장도의 집을 꾸미는 재료에 따라 붙인 이름이다. 서장도는 귀한 물소뿔로 만든 장도다.

비단과 전(氈)과 누비와 각종 장신구로 몸을 휘감았던 조선 후기 별감의 복식은 가히 사치의 극을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별감(別監)이 주도했던 ‘승전(承傳)놀음’

조선 후기 서울의 풍속과 왕의 능행(陵行), 양반들의 놀음, 선비들의 과거시험 등 당시의 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한양가(漢陽歌)’란 가사(歌辭)가 있다. 1848년경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이 가사(歌辭)는 국문학 연구자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19세기 중반 서울 시정의 활기찬 동태를 정확하고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한양가(漢陽歌)’는 당시 신분과 사회적 처지에 따른 한양의 각계각층이 즐기던 온갖 놀이도 상세히 소개하고 있는 데, 다른 어떤 문헌에서도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희귀한 자료다.

화려가 이러할 제 놀인들 없을소냐 / 장안소년 유협객과 공자왕손 제상자제 / 부상대고 전시정과 다방골 제갈동지 / 별감 무감 포도군관 정원사령 나장이라 / 남북촌 한량들이 각색 놀음 장할시고 / 공물방 선유놀음 포교의 세찬놀음 / 각사 서리 수유놀음 각집 겸종 화류놀음 / 장안의 편사놀음 장안의 호걸놀음 / 재상의 분부놀음 백성의 중포놀음 / 각색 놀음 벌어지니 방방곡곡 놀이철다

공자 왕손으로부터 돈 많은 시전(市廛)상인을 거쳐 의금부(義禁府) 나장(羅長) 까지 온갖 계층이 모두 유흥을 벌인다. 놀이의 종류도 가지가지다. 수많은 놀이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기 힘들다.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작품, ‘상춘야흥(賞春野興)’.
진달래꽃이 피어나기 시작한 어느 봄날, 양반가 후원에서 조촐한 연회를 열어
음악을 연주하며 봄놀이를 즐기는 모습이다.


이처럼 다양한 놀이를 소개한 뒤에 각별히 관심을 끄는 별감(別監)의 ‘승전(承傳)놀음’에 대한 서술이 이어진다. 다른 놀음은 모두 이름만 소개되어 있으나, 승전놀음은 ‘한양가(漢陽歌)’ 전체 서술량의 약 17%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그 구체적인 놀이 과정을 길게 묘사하고 있다.

별감(別監)들이 기생(妓生)과 가객(歌客), 금객(琴客)을 불러 기악(器樂)과 노래, 춤으로 벌이는 거창한 놀이판인 승전놀음이 조선후기 서울의 놀음판 중에서 으뜸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전별감(大殿別監)은 조선후기 유흥계의 주역이었다.

‘한양가(漢陽歌)’에 묘사된 승전놀음은 기본적으로 연예를 관람하는 놀이다. 여기서 연예를 제공하는 부류는 가객(歌客), 금객(琴客)과 기생이다. 별감들은 기생을 대거 동원하여 거창한 놀이판을 벌였던 것이다. 대개 돈만 있으면 누구라도 기생을 불러 놀음판을 벌일 수 있으나, 별감(別監)의 경우는 좀 유별났던 것 같다.

‘승전(承傳)’이란 왕명을 전달한다는 뜻이고, 이것은 별감(別監)의 고유한 업무다. 그러나 ‘승전’이 ‘놀음’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승전이란 게 별감이 하는 일이니, 별감을 대신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승전놀음을 ‘별감놀음’이라고도 부르니 말이다.

‘사처소(四處所) 오입쟁이’란 말이 있다. 네 곳의 오입쟁이란 뜻인데, 조선후기 서울의 기생이 소속되어 있는 관청 넷을 말하는 바, 내의원(內醫院) 혜민서(惠民署) 상의원(尙衣院) 공조(工曹)가 그것이다.



기방을 관리하는 별감은 동침을 원하는 양반에게 기생을 딸려 보내기도 했다.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작품, 월하정인(月下情人).


내의원의 기생이란 원래 의녀(醫女)다. 의녀의 소임을 맡으면서 동시에 기생 노릇을 했던 것이다. 혜민서 역시 마찬가지다. 상의원은 원래 임금의 의복과 대궐 안의 보물을 관리하는 곳이다. 상의원의 침선비(針線婢)는 원래 임금의 의복을 짓는 구실을 맡아 하는데, 동시에 기생을 겸업했다.

공조에도 군사들의 의복을 짓는 침선비가 있어 이들 역시 기생의 역할을 하였다. 이 중 내의원의 기생을 특별히 약방기생(藥房妓生), 상의원의 기생을 상방기생(尙房妓生)이라 한다. 원래 이들은 기생이 아니었다. 조선전기에는 따로 기생이 있었으며, 기생은 모두 장악원(掌樂院)에 소속되어 있었다. 물론 이들을 기생처럼 부리는 경우가 있기는 하였으나 이들이 기생을 대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 장악원(掌樂院)이 붕괴되자, 이들이 기생을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궁중연회에서 가무(歌舞)는 주로 의녀(醫女)들이 맡았다.
의녀들은 의술 이외에도 악기와 노래, 춤을 배워야 했다.

덕수궁에서 연회를 마친 뒤 양복 입은 귀빈을 모시고
여악(女樂)을 맡았던 기녀들이 앞에,
장악원(掌樂院) 악사들이 뒤에 서서 기념촬영 한 것이다.


사처소(四處所) 기생의 성분은 다양하다. 왕실의 잔치에 지방의 기생이 올라온다. 이들은 잔치를 치르고 내려가기도 하지만 서울에 머물기도 한다.

이들의 숙식 문제를 해결해주고, 기생의 영업권을 갖는 자가 기부인데, 기부는 별감(別監), 포도군관(捕校), 승정원 사령(使令), 의금부 나장(羅將), 궁가(宮家)나 외척가의 겸인(탙人,청지기), 무사(武士)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종 때 대원군이 집정하자, 의금부 나장과 승정원 사령은 창녀의 서방이 되는 것만 허락하고 관기(官妓)의 서방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이 사처소(四處所) 기부의 내력이다.

사처소(四處所) 기부 중에서도 가장 끗발이 있는 것이 바로 별감이며, 별감 중에서도 대전별감(大殿別監)이 으뜸이었다. 대전별감(大殿別監)은 임금을 직접 모시는 일을 맡고 있었으며, 가무별감(歌舞別監)은 임금의 좌우에서 가무를 담당하여 임금을 위로하는 일을 하였다. 이들을 화초별감(花草別監)이라고도 하였다.



대전별감(大殿別監)은 궁중에서 열리는 각종 연회를 준비하고
왕을 근거리에서 보좌했다.


기생은 ‘조(操)’라는 것이 있어 양반이나 부호의 명을 거스를 수는 있어도 대전별감의 명령을 듣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승지나 참판 등 고위관료 외에는 기생에게 ‘해라’를 못하고 모두 ‘하게’를 하였는데, 유일하게 액정서(掖庭署)의 사알(司謁)이나 사약(司쿫)은 ‘해라’를 할 수 있었다.

별감(別監)과 기생(妓生)은 이처럼 특수한 관계에 있었다. 승전놀음에서 별감이 수많은 기생을 불러올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승전놀음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그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아래의 내용에서 별감(別監)이 주도했던 호화로운 승전놀음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연회(宴會)가 있는 장소로 이동하는 기생(妓生)들.


구경 가자 구경 가자 승전놀음 구경 가자 / 북일영 군자정에 좋은 놀음 벌였구나 / 눈빛 같은 흰 휘장과 구름 같은 높은 차일 / 차일 아래 유둔 치고 마루 끝에 보계판과 아로새긴 서까래에 / 각 영문 사촉롱을 빈틈없이 달아놓고 / 좁쌀구슬 화초등과 보기 좋은 양각등을 차례 있게 걸어놓고 / 난간 밖에 춘화 가화 붉은 비단 허리 매어 / 빙문진 유리병에 가득이 꽂아 놓고 / 각색 총전 몽고전과 만화등매 담방석에 / 백통 타구 옥타구며 백통 요강 은재떨이 / 왜찬합 당찬합과 아로새긴 교자상과 / 모란병풍 영모병풍 산수병풍 글씨병풍 / 홍융사 구멍 뚫어 이리저리 얽어매고

북일영(北一營)은 경희궁 북쪽에 있던 훈련도감(訓鍊都監)의 분영이다. 먼저 이 놀이판의 차림새를 보자면, 사치스러운 별감의 놀이인 만큼 놀이판의 차림도 호사스럽다. 먼저 휘장을 치고 햇볕을 가리느라 차일을 높이 쳤다. 그 아래에 기름 먹인 종이로 만든 자리인 유둔(油芚)을 깔고, 마루 끝에 보계판(補階板)을 깔았다. 보계판은 좌석을 넓히기 위해 마루에 덧댄 판목을 이르는 말이다.



훈련도감(訓鍊都監) 소속으로
궁궐의 호위를 맡았던 부대인 북일영(北一營).


아로새긴 서까래는 아마도 단청을 올린 서까래일 것이고, 거기에 각 영문(營門)에서 가져온 사촉롱(紗燭籠)과 양각등(羊角燈)을 곳곳에 달아 매었다. 사촉롱은 여러 빛깔의 비단을 겉에 씌운 등롱이다. 등롱이란 대나무나 철사로 틀을 만들고 거기에 종이나 비단으로 겉을 바른, 들고 다닐 수 있는 등이다.

양각등은 양의 뿔을 불에 쬐어 투명할 정도로 얇게 편 뒤에 그것을 등롱에 씌운 등이다. 화초등은 아마도 꽃모양으로 만들거나 꽃모양을 그린 등인 듯하다. 화초등은 아마도 꽃모양으로 만들거나 꽃모양을 그린 등인 듯하다.

이렇게 온갖 등을 단 뒤에 꽃으로 장식을 더한다. 춘화 봄꽃과 가화, 즉 조화를 붉은 비단으로 묶어 빙문(氷紋)이 진 유리병에 꽂아둔다. 사람이 앉을 자리도 호사스럽기 짝이 없다. ‘각색 총전 몽고전과 만화(滿花)등매 담방석’은 관람하는 사람들이 앉을 방석 종류를 늘어놓은 것이다.



비단을 겉에 씌운 휴대용 등불은 어두운 밤길을 안전하게 밝혀주었다.




왕골로 짠 돗자리 가장자리를 헝겊으로 두른 등매.


만화석(滿花席), 곧 꽃무늬를 넣어서 짠 왕골 방석이고, 등매는 가장자리를 검은 헝겊으로 두른 돗자리를 말한다. 담방석은 짐승털로 짠 방석이다. 이렇게 호사스런 자리를 깐 다음, 백동(白銅)과 옥으로 만든 타구와 요강과 은재떨이를 갖추었다.

이런 잔치에 먹는 즐거움이 없을 수 없다. 교외에 나왔으니 당연히 먹을 것은 찬합에 담아 온다. 일본에서 수입한 왜찬합(倭饌盒)과 중국제 당찬합(唐饌盒)을 쓰고, 번듯한 교자상에 올린다. 잔치상 뒤로는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병풍, 새를 그린 영모병풍, 산수화를 그린 산수병풍과 붓글씨로 된 글씨병풍을 두르되, 혹 넘어질까 보아 구멍을 뚫어 홍융사로 묶어둔다.

이렇게 무대가 차려진 뒤, 이제 놀이판에 음악을 제공하는 가객(歌客)과 금객(琴客)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이쯤에서 놀이의 흥을 돋구는 기생(妓生)들이 온갖 치장을 하고 차례로 들어온다. 예사로운 놀음에도 치장이 놀랍거든 하물며 승전놀음 별감의 놀음인데 범연히 치장하랴.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이 그린 기생(妓生).


어름같은 누런 전모 자지갑사 끈을 달고 / 구름 같은 허튼머리 반달 같은 쌍얼레로 / 솰솰 빗겨 고이 빗겨 편월(片月) 좋게 땋아 얹고 / 모단 삼승 가리마를 앞을 덮어 숙여 쓰고 / 산호잠(珊瑚簪) 밀화(蜜花)비녀 은비녀 금봉차(金鳳釵)를 / 이리 꽂고 저리 꽂고 / 당가화 상가화를 눈을 가려 자주 꽂고

도리불수 모초단을 웃저고리 지어 입고 / 양색단 속저고리 갖은 패물 꿰어 차고 / 남갑사 은조사며 화갑사 긴치마를 / 허리 졸라 동여 입고 / 백방수주 속속것과 수갑사 단속것과 / 장원주 너른바지 몽고삼승 것버선과 / 안동상전 수운혜를 맵시있게 신어두고 / 백만 교태 다 피이고 모양 좋게 들어온다



한껏 멋을 부린 명기(名妓)들.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작품, ‘연소답청(年少踏靑)’


자리를 호사스럽게 꾸미고, 음식을 준비하고, 악기를 대령해놓고, 어여쁜 기생들까지 불렀으니 이제 승전놀음이 시작된다.

차례로 늘어 앉아 놀음을 재촉한다/화려한 거문고는 안족을 옮겨 놓고/문·무현 다스리니 농현소리 더욱 좋다/한만(汗漫)한 저 다스림 길고 길고 구슬프다/피리는 침을 뱉고 해금은 송진 긁고/장고는 굴레 죄어 더덕을 크게 치니/관현의 좋은 소리 심신이 황홀하다

여기서 ‘다스림’은 음악의 합주에서 악기간의 속도 호흡 음률을 맞추어보는 것, 또는 그것을 위해 만든 곡이다. 이어서 “피리는 침을 뱉고”라 하고 있는데, 이것은 피리 혀에 침칠을 하고 불어야 소리가 잘 나기 때문에 침을 뱉는 것이다. “송진 긁고”도 마찬가지다. 해금 줄에 송진을 칠해야 소리가 잘 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장고에 굴레를 죄어 팽팽하게 한 뒤 장고를 더덕쿵 친다. 이것을 “더덕을 크게 친다”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조율이 끝나면 노래가 시작된다.

거상조 나린 후에 소리하는 어린 기생 /한 손으로 머리 받고 아미를 반쯤 숙여 / 우조라 계면이며 소용이 편락이며 / 춘면곡 처사가며 어부사 상사별곡 / 황계타령 매화타령 잡가(雜歌) 시조(時調) 듣기 좋다



평양 부벽루에서 열린 연회.
가객(歌客)과 금객(琴客)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기생들이 춤을 추는데
구경 나온 사람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춘면곡(春眠曲), 처사가(處士歌), 어부사(漁父詞), 상사별곡(相思別曲), 황계(黃鷄)타령, 매화타령은 십이가사의 곡목이다. 여기에 백구사, 죽지사, 행군악, 권주가, 양양가, 수양산가가 추가되면 십이가사가 된다. 십이가사는 조선후기 기방에서 손님들이 가장 선호하는 레퍼토리였다.

이런 음악에 맞추어 기생들이 춤을 추는데, 그 종목은 웃영산 늦은 춤, 중영산 춤, 잔영산 입춤, 배떠나기 북춤, 대무, 남무, 검무의 순서다. 배떠나기 북춤은 아마도 서도 민요인 배따라기곡을 부르면서 북을 치고 추는 춤으로 보인다. 대무는 남녀가 함께 추는 춤, 남무는 남자가 추는 춤이 아니라 기생이 쪽빛 창의를 입고 추는 춤이다. 이어서 약간 길게 묘사되는 것은 검무인데, 검무는 칼을 들고 춘다.



‘쌍검대무(雙劍對舞)’.
혜원풍속도첩(蕙園風俗圖帖)에 실려있는 그림이다.




왕조실록에 기록된 왈패 별감들의 추태

왕을 비롯한 왕실가족과 친밀한 유대를 가졌던 별감(別監)이라는 직책이 가지는 특수성과 남성들의 밤 문화가 지니는 묘한 ‘기밀성 정보’가 별감들에게 다른 양상의 권세를 지니게 했는데, 이로 인한 폐단도 많았다.

‘왕조실록’에는 이들 별감에 관한 자료가 적지 않은데, 대개는 술을 먹고 소란을 떨거나 폭력을 행사한 사건에 관계된 것들이다.

숙종 35년 3월25일 사헌부가 왕에게 보고한 내용에는, 별감 송정희(宋鼎熙) 등 6, 7명의 불량배들이 술과 고기를 차려놓고 기녀의 집에 모여 술을 마시면서 거문고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왁자하게 놀고 있어, 사헌부의 금리(禁吏)가 체포하려고 하자 금리를 구타하고 도망하여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기녀(妓女)들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왈자(왈패) 별감들의 생활을 묘사한 그림.


영조 43년 7월 29일에는 액예(掖庭署 下隷란 뜻, 곧 별감을 가리킴)가 야음을 타서 의녀(醫女)를 결박한 뒤 치마를 벗기고 추행한 사건이 보고되고 있다. 이것은 별감이 기생 노릇을 하는 의녀를 지배하고 있는 형편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숙종 38년 10월20일 형조판서 박권(朴權)이 보고한 사건은 능소(陵所)에서 적간(摘奸)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별감 김세명(金世鳴)이 종실인 원흥(元興) 수(守) 이후(李煦)가 김세명의 인사를 받고도 답례를 하지 않자 화가 난 김세명이 욕을 하였는데, 이후(李煦)는 김세명의 입에 오물을 집어넣고 난타하였다.

그러자 김세명(金世鳴)이 동료 별감 20여 명을 이끌고 이후(李煦)의 집을 찾아가 끌어내 묶은 뒤 있는 힘을 다해 구타하여 분을 풀었다. 이후의 형 이경(李炅)이 입궐하여 이 사태를 알리려 했더니, 별감들이 알아차리고 역시 빰을 치고 구타하였다. 결국 김세명은 전가사변(全家徙邊)의 벌을 받아 가족과 함께 변방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기방 앞에서 난투극이 벌어지는 장면(기방난투)을 그린
신윤복의 풍속화 ‘유곽쟁웅(游廓爭雄)’.
가운데 서서 싸움을 말리는 사람이 기방의 운영자인 별감(別監)이다.


유사한 사건이 또 있는데, 순조 16년 6월 3일의 일이다. 포교들이 술 취한 무뢰배들을 잡았는데, 그 중 박몽현(朴夢賢)이란 자가 있었다. 궁중의 하인을 지냈다 하기에 석방했는데, 박몽현의 아비가 왕대비전의 별감 한 패를 거느리고 우포도대장 서영보(徐榮輔)의 집으로 들이닥쳐 포교와 포졸을 구타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포교의 집을 부수는 등 행패를 부린 일로 처벌되었다.

숙종 43년 2월6일에는 별감이 금령을 범하고 밤에 나다니다가 포도청에 잡히자 같은 별감들이 나졸을 구타하고 갇힌 동료를 구출하는 사건이 있었고, 영조 51년 2월25일에는 별감과 포교가 술집에서 싸우다가 별감이 포교를 결박하였는데, 별감들이 무리를 지어 포교를 구타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이처럼 별감이 통행금지를 어기고 돌아다니거나, 술을 먹고 술주정을 하는 것이 다반사였고, 술에 만취하여 포교에게 잡히자 포교의 집에 들이닥쳐 난동을 부리기도 하였다.






















글 / 강명관 부산대 교수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
/shin/2003/01/30/200301300500030/200301/300500030/_10.html

[출처] 조선시대의 파티 플래너(Party Planner) – ‘별감(別監).출처... http://blog.naver.com/himammo/90083882586 |작성자 Sar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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