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pann.news.nate.com/info/253784859
흥선대원군, '뎐 마누라' 명성황후에게 보낸 편지 보니…
문화 > 생활의 팁 | 머니투데이 (뉴스) 2012.06.27 09:56
조회42 스크랩0
[머니투데이 이슈팀 황인선기자]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이 며느리 명성황후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됐다.
흥선대원군은 1882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중국 톈진(天津)에서 유폐 생활을 하던 중 며느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 봉투에는 '뎐 마누라 젼(前)'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어 그동안 아내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했지만, 이종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은 "부인이 아닌 며느리에게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뎐 마누라 젼'의 '뎐'은 대궐 전(殿)자이며, '마누라'는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을 높여 부를 때 사용된 말이기 때문이다.
특히 편지를 부인에게 보내는 것으로 보았을 때는 일부 내용이 해석되지 않지만, 명성황후에게 보내는 것으로 해석하면 모든 내용이 풀이된다.
이 연구원은 "편지 내용 중 '마마께서는 하늘이 도우셔서 환위(還位)를 하셨거니와 나야 어찌 생환하기를 바라오리까'에서 '환위'는 제자리로 돌아옴이라는 뜻으로,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지방으로 피신했다가 왕궁으로 돌아오신 일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즉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도 수신자가 흥선대원군의 부인이 될 수 없다는 것.
이 연구원은 또 "(순조 임금의 딸 덕온공주의 손녀인) 윤백영 여사의 글에도 '뎐 마누라'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중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지난 13일 오후 한국학중앙연구원 신장서각에서 열린 '제1차 조선시대 한글편지 공개 강독회'에서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어 오는 27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제2차 조선시대 한글편지 공개 강독회'에서는 흥선대원군이 톈진에서 유폐 생활을 하던 당시 아들 이재면에게 보낸 편지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강독회에는 지난 5월 최초 공개된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인 나신걸(羅臣傑·15세기 중반~16세기 전반 추정)이라는 군관이 부인인 신창 맹씨(新昌)에게 보낸 편지의 분석 결과도 공개된다. 나신걸의 편지는 조선시대 부부간의 애틋한 사랑을 담고 있어 공개 당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창간기획] 한국의 슈퍼리치들
[book]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관련 키워드] 흥선대원군|명성황후
(mochi thinking)
i think the letter is a fake,
since Joseon high class didn't use Hanguel since they looked down the characters as Toilet scribbles,then they used only Chinese characters.
also Queen Min could not read....
the letter paper is printed on "指日高専"?
it is strange he would not able to forge the japanese paper under house arrest by China....
even the letter is truly, the letter would be written in japan amalgamated era.
興宣大院君(朝鮮語: 흥선대원군, こうせんだいいんくん・大院王(たいいんおう)、フンソン デウォングン、1820年12月21日(時憲暦嘉慶25年十一月十六日) - 1898年(光武2年)2月22日(時憲暦二月初二日))は、李氏朝鮮時代の王族で、高宗の実父。本名は李昰応(이하응、イ・ハウン、昰は、日の下に正)。
Heungseon Daewongun (흥선대원군, 1820–1898) or The Daewongun (대원군), or formally Heungseon Heonui Daewonwang (흥선헌의대원왕) and also known to period western diplomats as Prince Gung, was the title of Yi Ha-eung, regent of Joseon during the minority of King Gojong in the 1860s and until his death a key political figure of late Joseon Korea.
Daewongun literally translates as "prince of the great court", a title customarily granted to the father of the reigning monarch when that father did not reign himself. While there had been three other Daewongun during the Joseon Dynasty,[1] so dominant a place did Yi Ha-eung have in the history of the late Joseon dynasty that the term Daewongun usually refers specifically to him.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