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ugust 19, 2011

Statement by the Chief Cabinet Secretary Yohei Kono on the result of the study on the issue of "comfort women" 慰安婦関係調査結果発表に関する河野内閣官房長官談話
Statement by the Chief Cabinet Secretary Yohei Kono
on the result of the study on the issue of "comfort women"

August 4, 1993

   The Government of Japan has been conducting a study on the issue of wartime "comfort women" since December 1991. I wish to announce the findings as a result of that study.

   As a result of the study which indicates that comfort stations were operated in extensive areas for long periods, it is apparent that there existed a great number of comfort women. Comfort stations were operated in response to the request of the military authorities of the day. The then Japanese military was, directly or indirectly, involved in the establishment and management of the comfort stations and the transfer of comfort women. The recruitment of the comfort women was conducted mainly by private recruiters who acted in response to the request of the military. The Government study has revealed that in many cases they were recruited against their own will, through coaxing coercion, etc., and that, at times, administrative/military personnel directly took part in the recruitments. They lived in misery at comfort stations under a coercive atmosphere.

   As to the origin of those comfort women who were transferred to the war areas, excluding those from Japan, those from the Korean Peninsula accounted for a large part. The Korean Peninsula was under Japanese rule in those days, and their recruitment, transfer, control, etc., were conducted generally against their will, through coaxing, coercion, etc.

   Undeniably, this was an act, with the involvement of the military authorities of the day, that severely injured the honor and dignity of many women. The Government of Japan would like to take this opportunity once again to extend its sincere apologies and remorse to all those, irrespective of place of origin, who suffered immeasurable pain and incurable physical and psychological wounds as comfort women.

   It is incumbent upon us, the Government of Japan, to continue to consider seriously, while listening to the views of learned circles, how best we can express this sentiment.

   We shall face squarely the historical facts as described above instead of evading them, and take them to heart as lessons of history. We hereby reiterated our firm determination never to repeat the same mistake by forever engraving such issues in our memories through the study and teaching of history.

   As actions have been brought to court in Japan and interests have been shown in this issue outside Japan, the Government of Japan shall continue to pay full attention to this matter, including private researched related thereto.



위안부 관계 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관방장관 담화(일본어: 慰安婦関係調査結果発表に関する河野内閣官房長官談話 이안부 칸케이 초사켓카 핫표니 칸스루 코노 나이카쿠칸보초칸 단와[*])는 1993년 8월 4일에 미야자와 개조내각의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이다. 주로 고노 담화(河野談話)라고 약칭하여 부른다.

목차 [숨기기]
1 본문
2 반대
3 주석
4 바깥 링크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정부는 재작년 12월부터 조사를 진행해 왔으나, 이번에 그 결과가 정리되었으므로 발표하기로 하였다.

이번 조사 결과, 장기간에, 또한 광범한 지역에 걸쳐 위안소가 설치되어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영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하였다. 위안부의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 경우에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하였다는 것이 명확하게 되었다. 또한, 위안서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태 하에서의 참혹한 것이었다.

또한, 전장에 이송된 위안부의 출신지는, 일본을 제외하면 조선반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당시의 조선반도는 일본의 통치 하에 있어, 그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하여졌다.

결국, 본건은 당시 군의 관여 하에서,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준 문제이다. 정부는 이 기회에, 다시금 그 출신지의 여하를 묻지 않고, 이른바 종군위안부로서 허다한 고통을 경험당하고, 심신에 걸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린다. 또한, 그런 마음을 우리 나라로서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유식자의 의견 등도 구하면서, 앞으로도 진지하게 검토해아 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역사의 사실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역사의 교훈으로서 직시해 가고 싶다. 우리는,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해, 이런 문제를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며, 같은 과오를 결코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금 표형한다.

또한, 본 문제에 대해서는, 본국에서 소송이 제기되어 있으며, 또한 국제적으로도 관심이 모여 있으며, 정부로서도, 앞으로도, 민간의 연구를 포함해, 충분히 관심을 기울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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