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谷川等伯
Ryukyo suisha zu byobu
the figure of folding screen that willowish bridge and waterwheel
Hasegawa Tōhaku
http://blogs.yahoo.co.jp/hehualu2000jp/34299398.html
http://www.wao.or.jp/aiso/tales/07/index.html
↑早瀬を利用して川水を汲上げている水車
↑하야세(早瀨)를 이용해서 강물을 汲 일으키고 있는 수차
↑Waterwheel that pumped water from river using the rapids
宇治紀行
― その7 ―
The City of Power Station ≈≈≈ UJI ≈≈≈
パワースティション(発電所)の町 ~ 宇治市
柳橋水車図 と 筒車(つつぐるま)
宇治橋を背景に川風に揺れる柳、水車を描いた「柳橋水車図」は宇治川周辺の風景として知られていました。古来より、川風(川霧)・水車(筒車)・網代木などは、宇治の風物詩でした。
安土桃山時代に描かれた長谷川等伯の「宇治川柳橋水車屏風」をヒントを得て動画にしました。
Journey in Uji
scoop wheel
【파와스티숀】(발전소)의 도시∼우지시(宇治市) 야나기바시(柳橋) 수차그림과 통차(つ광랑るま)
우지(宇治) 다리를 배경으로강풍으로 흔들리는 수양버들, 수차를 쓴 「야나기바시(柳橋) 수차그림」은 우지(宇治)강 주변의 풍경으로서 알려져 있었습니다. 고래부터, 냇가 바람(냇가에 낀 안개)·수차(통차)·그물 망대 나무등은, 우지(宇治)의 풍물시이었습니다.
아즈치(安土) 모모야마(桃山) 시대에 그려진 하세가와(長谷川) 등伯의 「우지(宇治)강 야나기바시(柳橋) 수차병풍」을 힌트를 얻어서 동영상으로 했습니다.
★ The City of Power Station ≈≈≈ UJI
古くは『万葉集』『古事記』『日本書紀』に始まり、『源氏物語』や『平家物語』の素材になった宇治は、いにしえより都の人々の心をとらえ、和歌に絵画にさまざまな作品が伝わります。柳、橋、水車、この三つが描かれていれば、それは宇治だといわれたほどで、特に有名なのが、安土桃山時代に長谷川等伯が描いた『柳橋水車図(りゅうきょうすいしゃず)』で、その典型的な作品です。
오래 전에는 『만요집(万葉集)』 『고지키(古事記)』 『일본서 기』에 시작되고,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나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의 소재가 된 우지(宇治)는, 옛날보다 수도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와카(和歌)에 회화에 각양각색인 작품이 전해집니다. 수양버들, 다리, 수차, 이 세개가 그려지고 있으면, 그것은 우지(宇治)라고 말하여졌을 만큼으로, 특히 유명한 것이, 아즈치(安土) 모모야마(桃山) 시대에 하세가와(長谷川) 등伯이 그린 『야나기바시(柳橋) 수차그림(りゅう 오늘 추측해 ゃず)』에서, 그 전형적인 작품입니다.
http://www.geocities.jp/ezoushijp/tureduregusa.html
宇治の先人の里人の匠の技
徒然草 / 第五十一段
亀山殿の御池に大井川の水をまかせられんとて、大井の土民におほせて、水車をつくらせられけり。多くの錢を給ひて、數日にいとなみいだしてかけたりけるに、大方めぐらざりければ、とかくなほしけれども、終にまはらで、徒らにたてりけり。さて、宇治の里人を召してこしらへさせられければ、やすらかにゆひて參らせたりけるが、思ふやうにめぐりて、水をくみ入るゝ事めでたかりけり。 萬に其の道を知れる者は、やんごとなきものなり。
宇治と水車にまつわるお話が吉田兼好の『徒然草』の五十一段に登場します。嵐山の大堰川の里人に水車を作らせたところ、うまくいかず、宇治の里人を召集して作らせると、容易く水車を作り、しかも見事に水を汲み入れたというものです。何事につけてもその道を究めた者はすばらしく、その専門家に任すべきだと、宇治の里人の水車作りの技術を称えています。
当時、宇治では宇治川の急流を利用して、筒車(つつぐるま)と呼ばれる水車が造られ、それによって平等院の阿字池や近隣の田畑に豊富な水を供給していました。柳に水車の風情こそ在りし日の面影を偲ぶばかりですが、豊かな宇治川の流れは今も健在で、宇治市には、宇治発電所、天ヶ瀬発電所、喜撰山揚水式発電所の三つ水力発電所があり、電力を供給しています。
우지(宇治)와 수차에 휘감기는 이야기가 요시다(吉田) 겸 요시미(好)의 『도연초(徒然草)』의 50일단에 등장합니다. 아라시야마(嵐山)의 오이가와(大堰川)의 마을 사람에 수차를 만들게 한 바, 잘 되지 않고, 우지(宇治)의 마을 사람을 소집해서 만들게 하면, 쉽게 수차를 만들고, 게다가 훌륭하게 물을 긷어 넣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일에 붙여도 그 길을 극에 달한 사람은 훌륭하고, 그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우지(宇治)의 마을 사람의 수차만들기의 기술을 칭하고 있습니다.
당시, 우지(宇治)에서는 우지(宇治)강의 급류를 이용하고, 통차(つ광랑るま)이라고 불리는 수차가 만들어져, 그것에 의해서 뵤도인의 阿글자지나 이웃의 전답에 풍부한 물을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수양버들에 수차의 풍정이야말로 지난날의 모습을 그리워할 뿐입니다만, 풍요로운 우지(宇治)강의 흐름은 지금도 건재해서, 우지시(宇治市)에는, 우지(宇治) 발전소, 아마가세(天瀨) 발전소, 기센야마(喜撰山) 양수식 발전소의 세개수력 발전소가 있어, 전력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京都の近代化産業遺産 = 宇治発電所
京都府と滋賀県の共同出資により設立された宇治川電気株式会社により「宇治発電所」ができたのは、1913年(大正2年)のこと。1908年(明治41年)2月に着工。完成までには5年を要し、大陸からも多くの労働力が徴用されました。その重労働にたえかねて川畔まで逃げてきた労働者に鮎宗の先々代留吉は食べ物をほどこしたと、亡き叔母まさより聞いております。当時、宇治町は電気代が安かったといわれています。変電所が宇治橋通りにありました。その後、宇治川電気株式会社は戦中戦後の電力会社統廃合により関西電力株式会社となり、今も稼働しています。
宇治発電所につづいて、志津川発電所、大峰発電所が造られ、“おとぎ電車”も走っていましたが、1963年(昭和38年)天ヶ瀬発電所の完成により、これらは埋没しました。旧志津川発電所のレンガのたたずまいが吊り橋より上流の白虹橋たもとに残っています。大峰発電所は宵待橋の辺りにあり、当時の宵待橋は、川面に近く今より低い位置にありました。
また、近年までは巨椋(おぐら)池や宇治橋下流の黄檗あたりには水車がかけられていて、水田に水を供給していました。
교토(京都)의 근대화산업유산=우지(宇治) 발전소 교토부(京都府)와 시가현(滋賀縣)의 공동 출하에 의해 설립된 우지(宇治)강 전기주식회사에 의해 「우지(宇治) 발전소」가 생긴 것은, 1913년(다이쇼(大正)2년). 1908년(메이지(明治)41년) 2월에 착공. 완성까지는 5년을 요하고, 대륙으로부터도 많은 노동력이 징용되었습니다. 그 중노동에 참을 수 없어서 강두둑까지 도망쳐 온 노동자에게 아유(鮎) 소(宗)의 먼 장래 값 멈춤(정지)길은 음식물을 설비했다고, 없는 백모ま공미리 듣고 있습니다. 당시, 우지초(宇治町)는 전기세가 쌌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변전소가 우지(宇治) 다리대로에 있었습니다. 그 후, 우지(宇治)강 전기주식회사는 전시 전후의 전력회사통폐합에 의해 간사이전력(關西電力) 주식회사가 되고, 지금도 가동하고 있습니다.
우지(宇治) 발전소에 계속되고, 시쓰카와(志津川) 발전소, 오미네(大峰) 발전소가 만들어져, “갈아 전철”도 달리고 있었습니다만, 1963년(쇼와(昭和)38년)아마가세(天瀨) 발전소의 완성에 의해, 이것들은 매몰했습니다. 구 시쓰카와(志津川) 발전소의 벽돌의 모양이 조교보다 상류의 흰 홍교(虹橋) 옆에 남아있습니다. 오미네(大峰) 발전소는 밤저녁 待다리의 부근에 있어, 당시의 밤저녁 待다리는, 수면에 가까운 시일내에 지금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또, 최근까지는 거 무쿠 (ぐら)지나 우지(宇治) 다리하류의 오바쿠(黃檗)당에는 수차가 채워져 있어서, 수전에 물을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宇治発電所
(2006宇治灯り絵巻の時の様子) そもそも宇治発電所は琵琶湖との落差75mを利用したもので、瀬田川洗堰から支水した水でタービンは水車と同じようにタテに回転しています。宇治川の上流にあたる琵琶湖の瀬田は大阪城天守閣の高さがちょうど同じくらいで、瀬田川を渡る東海道新幹線はその天守閣の上程の高さを走っていることになります。
また、宇治市内にはユニチカ宇治事業所内にも天然ガスの自家発電設備が導入され、天ヶ瀬ダムと同量の電力を発電しているとともに、それは奈良県全域のガスの消費量とほぼ同じ量にあたります。
今もなお、そしてこれからも、宇治は“パワースティションの町”なのです。
우지(宇治) 발전소 (2006우지(宇治) 등빛 두루마리 그림(繪卷)의 때의 모양) 처음부터 우지(宇治) 발전소는 비와호(琵琶湖)와의 차 75m을 이용한 것으로, 세타(瀨田)강 씻음제방으로부터 支물 밑 물로 터빈은 수차와 같이 세로에 회전하고 있습니다. 우지(宇治)강의 상류에 맞는 비와호(琵琶湖)의 세타(瀨田)는 오사카성(大阪城) 천수각의 높이가 (꼭)정확히 같은 정도이어서, 세타(瀨田)강을 건너는 도카이도 신칸센(東海道新幹線)은 그 천수각의 상정의 높이를 달려 있게 됩니다.
또, 우지시(宇治市)내에는 유니치카 우지(宇治) 사업소내에도 천연 가스의 자가발전 설비가 도입되어, 아마가세(天瀨) 댐과 동(同)량의 전력을 발전하고 있는 동시에, 그것은 나라현(奈良縣) 전역의 가스의 소비량과 거의 같은 양에 맞습니다.
여태,그리고 이제부터도, 우지(宇治)는 “【파와스티숀】의 도시”입니다.
三連水車
朝倉市菱野
寛政元年(1789)には設置されていたとの記録があり、日本最古の実働する水車として、また朝倉地方の夏の風物詩として全国的にも有名で、平成2年「堀川用水及び揚水車」として国の史跡に指定されました。
triplicate Waterwheel
Asakura Hishino
There are recorded of waterwheel in first year of Kansei; magnanimity policy origin year (1789), and had been installed of it.
as the oldest production of water mile, renowned in nationwide as a summer feature in local Asakura. In addition, "Horikawa artificial ditch and water pumping" has been designated in 1990 as a national historic site as.
http://saikotravel.blog.so-net.ne.jp/2007-10-10
日本最古の水車は新しかった [最古巡礼]
Japan's oldest water mill was new [pilgrimage oldest
水車 1789~
waterwheel since 1789
週刊新潮の連載は,福岡県・朝倉郡にある水車からスタートしました。
現地に到着しての第一印象は、ァ、新しい!なぜ、この水車が最古なのか,しばし呆然状態....。
「5年に一度、作り替えられるんです。」観光協会の説明でようやく,ひと安心した取材班でした。
設置されたのは、1789年(寛政元年)、それから二百余年、5年に一度、
現在も専門の大工さんにより作り替えられる「継続の最古」なのである。(新書未掲載)
our first impression was "its a new! Why is this oldest water mill" a while we are dazed state.
" to be remake once for five years."
the description of the Tourism Association,finally the crew was relieved in.
installed it in 1789 (the first year of Kansei), from then more than two hundred years per five years,redone by professional carpenters even today.
so its "the oldest continuously" (Unpublished weekly Shincho)
주간신조(新潮)의 연재는, 후쿠오카현(福岡縣)·아사쿠라군(朝倉郡)에 있는 수차로부터 스타트했습니다.
현지에 도착해서의 첫 인상은, , 새롭다! 왜, 이 수차가 가장 오래된 것인가, 잠시 멍한 상태 그렇게(그처럼) 상태 .... .
「5년에 1번, 새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 관광 협회의 설명으로 드디어, 한안심한 취재반이었습니다.
설치된 것은, 1789년(히로시(寬) 세이(政) 원년), 그로부터 200여 해, 5년에 1번, 현재도 전문의 목수에 의해 새로 만들 수 있는 「계속의 최고」이다. (신서(신간서적)미게재)
아사쿠라 삼연수차
http://www.catv296.ne.jp/~sensyo/furusato-asakura.htm
ふるさと 朝倉(あさくら)
(福岡県朝倉市)
朝倉を古人は次の様に歌っています。
『小倉百人一首』 から
「秋の田の かりほの庵の 苫をあらみ
わが衣手は 露にぬれつつ」
(天智天皇)
http://100poems-100poets.blogspot.jp/2012/03/aki-autumn-1-arami-roughcoarse-because.html
Aki no ta no kario no io no toma o arami waga koromode wa tsuyu ni nure tsutsu
Emperor Tenji
in the autumn field
a hut, a makeshift hut
of rough thatched straw,
the sleeves of my robe
are damp with dew
(trans. Koy Deli)
autumn rice fields
because a hut of straw
is rough
my sleeves become
damp with the dew
(trans. Jane Reichhold)
『新古今集』 から
「あさくらや 木の丸殿に わがおれば
名乗りをしつつ 行くは 我が子ぞ」
(天智天皇)
quotes form“Shin Kokinshu”
Asakura ya kino marodono den ni waga oreba
Nanori wo shitsutsu iku ha waga ko zo' (Tenchi ten-no)
http://www.geocities.jp/shimizuke1955/309suisya.html
http://www.geocities.jp/shimizuke1955/3070ryukotsu.html
http://www.aquas5.com/knowledge/32/001927.php
水車
お蕎麦屋さんや旅館等で目にした事のある水車。
しかし、昔ながらの本来の役割を果たしている水車を、現在ではほとんど目に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
今回はそんな水車について調べてみました。
●水車とは
水車は、川などの水の流れを利用して車を回転させエネルギーを発生させる一種の原動機。
電動機や蒸気機関が普及するまでは、揚水・脱穀・製粉・製糸など広く使用されていました。
●水車の歴史
水車は、古代メソポタミア時代に発明されたと考えられ、
農地灌漑のために使用されていたとの記録が残っています。
しかし奴隷労働の豊富な古代ローマ社会においては、
滅多に使われない機械としており、あまり普及はしなかったようです。
日本では「日本書紀」において推古18年(610年)に高句麗(こうくり)から来た僧曇徴(どんちょう)が、碾磑(てんがい)という水車で動く臼を造ったといわれ、
平安時代の天長6年(829年)良峯安世が諸国に灌漑用水車を作らせたとあります。
また、鎌倉時代の「徒然草」には
宇治川沿の住民が水車を造る話があり
室町時代には朝鮮使節が日本の水車を見て
技術を持ち帰ろうとしたとの記録があります。
動力水車の使用は江戸時代になってからといわれ、
白米を食する習慣の広がりとともに、精米・穀物製粉のために使用されていたようです。
水という自然のエネルギーを利用し、環境にやさしい水車。
こうした現在、私たちも見直さなくてはいけないなと考えさせられました。
投稿者 アクアス総研 : 2011年10月 3日 10:43
수차 국수집이나 여관등에서 본 것이 있는 수차.
그러나, 옛날부터의 본래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수차를, 현재에서는 대부분 볼 것은 없습니다.
이번은 그런 수차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습니다.
●수차와는 수차는, 강등의 물의 흐름을 이용해서 차를 회전시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일종의 원동기.
전동기(모터)나 증기기관이 보급될 때까지는, 양수·탈곡·제분·제사등 널리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수차의 역사수차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대에 발명되었다고 생각되어, 농지관개를 위해서 사용되고 있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노예노동이 풍부한 고대 로마 사회에 있어서는,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 기계로서 있어, 그다지 보급은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본서 기」에 있어서 스이코 18년(610년)에 고구려(高句麗) (이렇게 밤)로 온 승흐림보람 (탕 나비)이, ⊙⊙(노란담비가 있어)이라고 하는 수차로 움직이는 절구를 만들었다고 말하여져, 헤이안(平安)시대의 하늘장 6년(829년)료(良) 미네(峯) 안(安) 세상이 제국에 관개용 수차를 만들게 했다고 있습니다.
또, 가마쿠라(鎌倉) 시대의 「도연초(徒然草)」에는 우지(宇治) 강 기슭의 주민이 수차를 만드는 이야기가 있어 무로마치(室町) 시대에는 조선 사절이 일본의 수차를 보아서 기술을 갖고 가자로 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동력수차의 사용은 에도(江戶) 시대가 되고나서라고 말하여져, 백미를 먹는 습관의 넓어져 와(과) 함께, 도정·곡물제분을 위해서 사용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이라고 하는 자연의 에너지를 이용하고, 환경에 상냥한 수차.
이러한 현재, 우리들도 다시 보지 않으면 안되구나라고 생각하게 했습니다.
투고자 아쿠아스 종합연구소:2011년10월3일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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