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February 7, 2012

propaganda movies for comfort women

My Heart is Not Broken Yet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Produced by
Yang Jing-ja (양징자)
Indiestory (인디스토리)
Yang Jing-ja (양징자)
Ahn Hae-ryong (안해룡)

Habitual Sadness
Korean Comfort Women Today

Revised romanization: Naj-eun mogsoli 2
Hangul: 낮은목소리 2
Director: Byun Young-Joo
Release Date: August 23, 1997
Length: 70 min
Released: 1999
Ages: College
Buy DVD:$250.00

Directed by Byun Young-Joo

During World War II an estimated 200,000 women, mostly Korean, were forced by the Japanese into sexual slavery. This experience scarred the women, who hid their shame in silence. Now in their sixties and seventies, the surviving women have dared to speak of their suffering at the hands of their Japanese oppressors.

This film captures the spirit and spunk of a group of survivors who live together in a sharing community. Amidst the activities of everyday life, they laugh, voice their tough minded views, and care intensely for one another. One of the women, dying of cancer, expresses her past in boldly colored paintings.

Habitual Sadness is a reminder of women's vulnerability during war. It is also a testament to the strength of former victims who have exchanged their painful memories for the warmth of communal life.

"The victims do not look like they are weak. They look powerful. I think that is the spe- cial thing of my documentary." - Byun Young-Joo, director

Young-Joo Byun | South Korea | 1997 | 71 min. | Documentary | Colour | 35mm

category: Voices of Women
In World War II Japan forced many South Korean girls into sexual slavery. Known as "comfort woman," they were abducted as teenagers and shipped off to the front to service as many as 30 troopers a day. In 1991, some of them began testifying about their experiences. Byun Young-Joo worked with such women for two years on her previous film The Murmuring, a documentary which broke nearly a half century of silence on the subject and was screened at the Amnesty International Film Festival in 1996. A "sharing house" was then established for former comfort women and provided the setting for Habitual Sadness, a documentary showing the enduring wounds but strong spirit of these women. "During our time together, these women slowly grew more comfortable and eventually even bold in front of the camera. As I watched them change, I felt as much joy as sadness, a habitual sadness that is always weighing on our lives," said the director. Habitual Sadness was a major success in South Korea and a hit at the Hong Kong Film Festival.

Director´s Note: "What could be more frightening to a person who suddenly reveals herself to the world after fifty years of shame and silence, than to have people forget that determination, as if to tell you not to dare dream that all your hard-found courage could change the world? Myself, I wanted only to express one thing: Let us not forget. We cannot forget. It is with these words of resolution that I repay what these women have helped me learn over the last five years."

filmmakers: Director: Young-Joo Byun
Camera: Yong-Taek Kim
Editing: Gok-Ji Park
director: Buyn Young-Joo

was born in 1996. She studied Law at Ewha Women´s University and Film at Chung-Ang University and was a member in a women´s film group "Bariteo" and director of "Green Image". Now she is the head of "Vista", a documentary film production group. She made her directorial debut in 1993 with the video work A Woman-being in Asia, which documents the situation of a "Geisha tour" in Cheju Island. While shooting this film, she met a woman prostituting to pay for her mother´s medical care, who suffered from the experiences as a comfort woman during WWII. Realizing that this issue was still affecting the lives of Korean women today, she set out to film The Murmuring (1995), the first of the "Harumoni" trilogy with Habitual Sadness (1997) and the now-in-production My Own Breathing.

Filmography: The Murmuring, 1995 (director); A Woman-Being in Asia, 1993 (director); The Line of Battle, 1991 (photography, editor); Our Children, 1990 (photography, editor); Even the Weed Has Its Own Name, 1990 (scriptwriter, photography).

Habitual Sadness 2 (1997)
< Na-jeun Moak-so-li 2 >
The story of the women at the "House of Sharing" continues. Old women who share a common bond lead a peaceful life in the countryside, raising vegetables, chickens and painting pictures. They are no different from the elderly women we see every day. But they are all scarred by pain and sorrow from their collective history of being comfort women during World War 2. They became subject to prejudice in their own homeland after their return to Korea. It is painful for t... full story


Born in 1966. After graduating from Ehwa Woman's University, studied Cinema at Jungang University Graduate School. Participated in Independent film productions, especially in women's film productions. Among her video works, Our Children and The Line Battle were screened at 1991 Yamagata Festival, and A Woman Being in Asia was screened at 1993 Yamagata Festival. Her first feature documentary on 16mm, Murmuring was screened as part of the New Asian Currents section of 1995 Yamagata Festival and awarded the Ogawa Shinsuke Prize.




Director's Statement

Habitual sadness. Why does sadness become habitual? These dear woman, harumoni, play a much more active role in this film than the one before. In casually pointing out certain scenes to be included, they decided on the content of the film even before I did. Their exaggerated acting some times embarrassed even myself. While intently watching these dear woman, I did not feel happiness but sadness. Like shackles binding their arms I felt this habitual sadness, and it wasn't just because I remembered the reality that they were hauled away and used as comfort woman by the Japanese Army.

As soon as Kang Dok-yung realized her lifetime was limited, she feared nothing more than being forgotten. Like many woman who have lived in silence for the past fifty years, the thing she feared most when she revealed to the world that she had been a comfort woman, was that the courage it had taken to give out her name when so frightened would be pushed aside and once again forgotten. It's her dream that in coming forth she could have an effect on the world.

Perhaps this is the source of the sadness we habitually feel in our daily lives as woman. Habitual Sadness is not my film. All I did was gather together what these woman wanted to show to world-their discussions and everyday lives. The one thing, however, that I would like to strongly emphasize is my determination of not to forget, perhaps unable to forget them. I think this determination is the only way that I can fulfill my gratitude, for these dear women that has given me the strength these past 5 years to learn about the world.

낮은 목소리 (1995)
The Murmuring

영화정보 > 낮은 목소리
다큐멘터리, 드라마 | 한국 | 개봉 1995-04-22
나눔의 집 할머니, 김선덕, 강덕경, 이영석, 박두리

낮은 목소리, 1, 2 그리고 숨결

- 전쟁과 여성, 일상 속 위선 그리고 감독은 7년간 위안부의 삶을 담고
지식인은 부끄러울 뿐이다 -

1991년 변영주 감독은 기생 관광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동안 일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요정(料亭)에서 일하는 한 여성을 만난다. 그 여성과 대화 중 돌아가신 어머니는 위안부(1) 이었으며, 병원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스스로 성매매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변영주 감독은 1993년부터 위안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이후 1999년까지 7년간, ‘낮은 목소리, 1, 2’, 그리고 ‘숨결’이라는 위안부들의 삶을 담은 세편의 영화가 완성된다.

세 다큐멘터리의 흐름은 매우 간단하다. ‘낮은 목소리 1’은 지금은 경기도 광주에 자리 잡고 있는 ‘나눔의 집’, 1992년 마포구 서교동에서부터 시작한 이곳은 1993년 당시 불교단체에서 위안부들의 안타까운 삶을 알고 지원했던 혜화동 한 한옥(韓屋)에 위치하였다. 그 곳에는 갈 곳 없는 6명의 위안부가 살고 있었다. 한옥 외에는 지금과 같은 지원이나 자급자족(自給自足) 할 수 있는 토지와 시설이 갖춰있지 않은 상태에서 위안부들은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다. 이들의 삶은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트라우마적(traumatic)인 내외적 고통에 시달리고 약에 의존하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전쟁의 시간과 공간 속에 머물러 있었다. 변영주 감독은 ‘낮은 목소리 1’에서 처절했던 과거에 멈춰 선 위안부의 현재 삶을 조명하였다.

<낮은 목소리 1의 한 작면>

1993년부터 2년간 진행된 ‘낮은 목소리 1’이 완성된 후, 1995년 12월 나눔의 집은 지금의 위치인 경기도 광주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강덕경 위안부로부터 변영주 감독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폐암 말기를 선고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강덕경 위안부는 자신의 삶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영화로 제작해 줄 것을 부탁한다. 이에 변영주 감독은 1997년 2월 2일까지 강덕경 위안부의 마지막 삶을 지켜보며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2’를 제작한다. 감독은 강덕경이라는 한 한국 여성을 중심으로 위안부들의 고통스러운 현재 삶을 ‘낮은 목소리 2’로 재현한다.

<낮은 목소리 2의 한 작면>

4년 후 변영주 감독은 위안부를 다룬 세 번째 영화 ‘숨결’을 완성한다. 변영주 감독은 위안부 시절과 그 후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는지, 이번에는 한 위안부가 직접 만들어가는 영화를 기획한다. 본 영화에서는 한 위안부가 한국뿐 아니라 필리핀 등 국내외 여러 곳을 방문하여 다른 위안부들과 태평양전쟁 당시 경험한 처절한 삶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촬영하여 다루고 있다. 이는 기존의 변영주라는 간접적인 '기계'를 통하기 보다는 쟁점의 대상들 스스로가 그들의 경험을 나누는 직접적 목소리를 재현한다는 점에서 영화뿐 아니라 학문 분야에서도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숨결 영화의 한 작면>

본 영화들이 주는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위안부’는 1945년 해방 후 극 소수자들만의 고통과 쟁점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1990년 일본 정부의 위안부 관련 내용에 대한 부정과 1991년 지금은 처절했던 삶의 한을 풀지 못한 채 고인이 된 김학순 위안부(1997년 12월 16일 사망)의 증언으로부터 이 쟁점은 한국 사회의 표면으로 들어나기 시작하였다. 국내에서는, 비록 한국 정부는 미온(微溫)적 태도를 보일지라도, 이러한 표출에 힘입어 NGO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예컨대, 1992년 1월 8일 수요일 정오부터 시작하여 16년 동안 진행해 온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집회’는 2008년 8월 13일에도 200여명이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826번째를 맞이했다. 국제적으로도, 일본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UN과 ILO(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 국제노동기구) 같은 국제기구들의 다양한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논의되기 시작한 1991년 이후 18년이 지난 현재, 강덕경 위안부의 죽음 앞 마지막 바람과는 달리, 그리고 1991년 초기의 적극적인 온 국민의 관심은 간데없이 ‘위안부’의 쟁점은 많은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잊혀 진 채 사라져 가고 있는 듯하다. 쟁점의 해결 없이 하나 둘씩 한을 품은 채 무관심 속에 사라져가는 위안부들(2007년 통계에 의하면 위안부임을 밝힌 233명 중 112명 사망)과 위에서 소개한 세편 영화의 비대중성에서 나는 그와 같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위안부는 국제개발과 이해의 관점에서 살펴 볼 때도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각도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세 가지만 꼽아보고자 한다. 첫째, 여성주의적인 시각에서 국제개발이라는 가면을 쓴 전쟁이 강요하는 여성이라는 특정 계층의 수난을 꼽을 수 있다. 전쟁과 국제개발이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최근 어느 한 신문에 게재된 기사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기사는 일제강점기의 참혹한 침략의 만행과 다양한 수탈 행위를 한반도의 근대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한 집단에 대해서 비판적 논의를 하고 있었다. 근대화를 가장(假葬)한 전쟁은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발생해왔고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일제강점기를 근대화로 바라보는 역사관의 입장이라면 전쟁과 국제개발은 같은 선상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시 여성주의 시각으로 돌아가면, 전쟁을 빙자한 국제개발은 남성 중심 국가주의(nationalism)와 군사주의(militarism)를 강력히 불러 오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특정 계층의 무시와 희생을 강요한다. 즉, 여성의 위치는 남성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희생의 대상이며, 그에 대한 대표적인 역할이 위안부이다. 한국의 역사 속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예외일 수 없다. 이를 테면, 원나라의 지배하에 당한 여성의 수모와 한국전쟁 이후 미군을 위한 집창촌(集娼村) 여성의 수난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일본과의 문제뿐 아니라 전쟁과 국제개발이라는 측면에서 여성에게 폭력을 가한 인류 역사의 일상에 잠재되어 있는 부끄러운 오류적 의식(false-consciousness)의 발현(發現)으로서 반드시 조명되고 논의해야 할 쟁점인 것이다.

둘째,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만큼이나 부끄러운 위선적 태도의 모습을 위안부 쟁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발생한 ‘화냥년’, ‘일제강점기 위안부’, ‘미군기지 집창촌’ 등은 모두 국가주의와 군사주의에 의해 강요된 여성의 희생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뿐 아니라 그로부터 혜택을 받은 모든 한국인들은 순결 이데올로기(chastity ideology)라는 얼토당토않은 소리와 함께 남의 일 보 듯하며, 심지어 위안부들 각 개인적인 잘못으로 인정하고, 그들을 경멸하고 스스로 부끄럽도록 의식화한다. 이러한 직•간접적인 두 번의 희생을 강요하는 위선적인 태도는 우리 일상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한 예로 일제강점기 위안부 문제를 1945년 이후 50년이 넘도록 아무런 진전 없이 위안부들이 죽어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한국 정부의 미온을 넘어선 무시 행위를 들 수 있다. 이러한 현 상황에서 진행하는 한국의 국제개발의 주체와 객체 역할 그리고 국제이해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즉, 국제 관계 속에서 발생한 위안부와 같은 오래된 문제점을 ‘검정 고무신이 낡고 닳아 사라지듯 대하는’ 현 한국의 사회와 정부의 위선은 바로 우리가 최근 강조하는 국제이해, 국제개발, 그리고 다문화 등 세계화의 방향성에 근간이다.

셋째, 한국 지식인들의 위선, 그들에 대한 경멸, 그리고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변영주 감독이 7년간 세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다. 모든 지식인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부 지식인들은 현실과 실제를 무시한 다양한 피상(皮相)적이고 관념(觀念)적인 논의를 찬미하고 그를 추종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나르시스적으로 평가하며 쟁점이 불거질 때마다 유행에 편승하듯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작 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나 적극적인 대응의 모습과 태도를 보여주기보다 이권이나 명성(名聲)만을 챙길 뿐이다. 반면에 현실적 문제를 아무런 보장 없이 실제적으로 다년간 다루는 ‘영화인’ 변영주 감독의 모습은, 현 시대에 주류 지식인 학자들에게 매우 놀라운 자극이 아닐 수 없다. 즉, 학문 분야의 시론(時論)이 관념에 지친 학자들에 의해 실행(praxis)을 강조하는 ‘숨결’과 같은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표출하고자 하는 노력이 난무하는 지금, 변영주 감독의 7년간 다큐멘터리를 위한 작업은 일시적 유행에 따르며 내용 없는 목소리를 높이는 일부 학자들의 태도에 일격을 가하는 듯하다.

(1) (군)위안부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정부의 조직적 계획에 의해 전쟁터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로 착취당한 여성들을 말한다. 피해자 대부분은 11세에서 32세에 이르는 한국을 비롯한 일본 식민지 국가의 젊은 여성들이었으며 그 숫자는 약 200,000명으로 추산된다(영화 ‘숨결’ 중 재인용, 1999).

작성: 허창수 / 교육학 박사


미나리11-03-24 17:44

북한하고 통일한 뒤에 일본 쓰레기들 내장을 칼로 꺼내서 천천히 죽여주마 너네가 아시아인 2천만명을 죽인 것처럼 그리고 일본 여자들 창녀로 만들어 내장을 끄집어 내줄꺼다. 개 쓰레기만도 못한 종자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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