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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February 24, 2012

the true photo of Empress Myeongseong 明成皇后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366317

명성태황후 민씨明成太皇后閔氏
Empress Myeongseong 19 October 1851 – 8 October 1895), also known as Queen Min






사진 희귀 명성황후에게 얼굴 콤플렉스?
[연합] 입력 2006.07.25 17:24 / 수정 2006.07.25 17:51


고종 정비로 을미왜변에 희생된 명성황후는 사진을 찍었을까? 몇몇 사진을 두고 이것이 바로 명성황후다, 아니다, 궁녀다 하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주인공.

그의 시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나, 남편 고종, 그의 친아들 순종, 그 외에 영친왕 의친왕 등 조선말-대한제국 시기 조선왕실 주요 인물의 사진 자료는 흔한 데 비해 명성황후는 아직까지 확실한 실제 모습을 알 수가 없다. 물론 명성황후라는 주장이 있는 사진은 간혹 있으나, 그 어느 것도 확실하지가 않다.

이런 와중에 미국에서 명성황후가 주인공이라고 추정되는 자료가 공개됐다.

이번 사진이 명성황후인지 아닌지를 확정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명성황후는 사진 모델로 나서기를 좋아하지는 않았으며, 그렇기에 생전에 아예 사진을 찍은 적이 없거나, 있었다 해도 몇 번 되지 않았으리라는 점은 확실한 듯하다.



같은 시대를 산 다른 왕실 가족들은 사진 모델로 기꺼이 나선 데 비해, 명성황후는 왜 이런 일을 꺼려했을까?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단순화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나 순종비인 윤비 등의 사진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의친왕의 손자이자 국립고궁박물관 전문위원인 이혜원(51) 씨는 다소 흥미로운 증언을 들려주었다.

"연세 여든이 넘은 집안 고모들에 의하면 명성황후는 얼굴에 곰보 자국이 있어 나서기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마마 자국 같은 게 얼굴에 있었다는 말이지요. 물론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고모님들도 어릴 때 집안 어른들께 전해 들은 이야기니까,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요."

그는 연합뉴스를 통해 미국에서 25일 공개된 명성황후 추정 사진에 대해서는 "(흥선)대원군 할아버지의 첩인 초선일 가능성도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그러한 근거로 이 사진과 함께 공개된 이하응 사진과 비교할 때, 사진 배경이 거의 똑같다는 점을 주목했다. 즉, 사진 속 '명성황후 추정 인물'과 이하응이 의자에 앉은 채 디딘 카페트라든가, 그 뒤를 장식한 장막 등이 같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씨는 이 사진 속 이하응이 청나라 복장을 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임오군란 이후 청에 끌려갔다가 귀국한 뒤 그가 운현궁에 기거할 때 찍은 모습으로 판단되며, 이 당시 초선이란 여인이 그를 시중들었다는 기록을 감안할 때, 그럴 가능성도 내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http://news.donga.com/3//20060726/8333559/1



이번에는 진짜 명성황후?…독일인이 찍은 사진 발견

기사입력 2006-07-26 03:06:00 기사수정 2009-09-29 15: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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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추정 사진
① 1894∼95년 한국을 방문했던 독일인의 사진첩에 실려 있는 명성황후 추정 사진.
임플란트 하지말고, 재생하 [정보]고혈압완치..알고보니

《명성황후(1851∼1895)로 추정되는 사진이 새로 발견돼 학계에 논란이 일고 있다. 새로 발견된 명성황후 사진은 19세기 동아시아 사진을 수집해 온 영국인 테리 베닛(56) 씨가 한국 관련 소장품 중 무명의 독일인 사진작가 사진첩을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개하면서 드러났다. 》

독일 출신의 사진작가는 을미사변이 일어나기 직전인 1894년부터 1895년까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와 모두 33장의 사진을 기록으로 남겼으며 이 중에는 명성황후로 추정되는 사진도 포함돼 있다. 베닛 씨는 3년 전 런던의 고서적상에게서 이 사진첩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사진첩의 한 페이지에는 4장의 사진이 배열돼 있다. 위쪽에는 고종과 순종이 함께 찍은 사진과 명성황후 추정 사진이, 아래쪽에는 흥선대원군의 사진 2장이 배치됐다. 명성황후 추정 사진 밑에는 독일어(필기체) ‘Die Ermordete K¨onigin(시해된 왕비)’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의 진위를 놓고 학계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서울대 이태진(국사학) 교수는 대원군 사진의 배경과 명성황후 추정 사진의 배경이 같다는 점을 예로 들며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은 것으로 보아 명성황후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원군이 앉은 자리에 왕비 급이 아닌 궁녀가 앉을 수 있겠느냐는 것.


② 청나라 옷을 입은 흥선대원군으로 명성황후 추정 사진과 배경이 같다.
③ 한때 명성황후로 추정됐으나 원본이 실린 책에 ‘궁중여인’이란 사진설명이 붙어 있어 진위를 놓고 논란을 빚은 사진. 연합뉴스 동아일보 자료사진

반면에 한영우(국사학) 한림대 특임교수는 “당시 왕비는 원칙적으로 왕궁의 법도상 함부로 사진을 찍거나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며 “사진의 주인공이 명성황후라고 보기에는 의심이 가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왕실에서 가족사진 찍듯이 사진을 찍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왜 대원군과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었는지 이유를 규명해야 하며 △명성황후가 입은 저고리는 소매가 좁고 가슴 부분이 짧아 앞가슴이 드러날 정도인데 이는 당시 왕비 의상으로는 적합하지 않고 △머리는 정식으로 성장을 했는데 옷은 평상복인 점 등을 지적했다.

또 고종의 종손자이자 의친왕의 손자인 이혜원(국립고궁박물관 연구자문위원) 씨는 사진의 주인공이 대원군의 첩으로 알려진 초선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복식 전문가들은 사진 속 여인의 머리 모습은 예장(禮裝)용으로 왕비와 공주 등 비교적 높은 위치의 여인들이 할 수 있는 머리라는 점을 주목한다.

명성황후는 그 모습을 묘사한 글(이사벨라 비숍은 “눈빛은 날카롭고 냉정한 빛을 띠고 있어 기밀한 두뇌 회전이 느껴졌다”고 썼다)만 남아 있을 뿐이어서 사진과 초상화가 나올 때마다 진위를 놓고 논란을 빚었다. 명성황후 사진으로 거론된 경우는 주한 이탈리아 영사로 재직하던 카를로 로제티가 동료 사진작가 가리아초와 함께 서울을 돌아다니며 기록한 서적 ‘꼬레아 꼬레아니’(1904년)에 실린 사진, 고종의 정치 고문이었던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의 ‘대한제국멸망사’(1906년)에 게재된 사진 등이 있다.

두 사진은 배경만 다를 뿐 인물은 같다. 한때 이 사진은 1990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제작한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지만 1997년 개정판 교과서에서 삭제됐다. 진위에 대한 논란이 있었기 때문. 두 책의 사진 밑에는 ‘정장한 궁녀’라고만 설명이 돼 있다.

역사학자들은 이번에 공개된 사진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진작가와 촬영 배경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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