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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통신사 -조선통신사란
에도 시대의 조선통신사는 1607년 일본을 처음 방문한 이래 1811년까지 200여 년 동안 12회에 걸쳐서 에도 시대의 일본 정부에 해당하는 도쿠가와 막부의 경사나, 최고 권력자인 쇼군이 바뀌는 시기에 방문해 조선 국왕의 국서전달과 도쿠가와 막부 쇼군의 답서의 교환을 진행하였습니다. 조선통신사 사절단의 수는 매회 300 ~500명으로 구성되는 대사절단이었다고 합니다.
조선통신사 일본 방문 400주년을 기념하는 2007년에는 한국과 일본의 각 관련 지역에서 [조선통신사 방일 400주년 기념 행사]를 다채롭게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통신사 방일 400주년 기념 행사에 관하여 한일 의원 연맹 합동총회에서 행사지원에 관해 양국 의원들이 합의하였고 또 후유시바데쓰조 국토교통성장관 겸 관광입국 장관과 김명곤 전(前)한국 관광문화부장관도 양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합의한바 있습니다. 이 코너에서는 각 지역에서 예정된 조선통신사 400주년 기념 사업에 관한 정보와 조선통신사와 연관이 있는 장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과거 선조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장소를 방문해 보시면 어떨까요?
조선 통신사란
조선은 역사적으로 고대부터 일본과의 관계가 깊은 나라였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의해 양국의 국교는 단절되었습니다. 에도 막부는 조선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쓰시마번의 중개로 교섭을 거듭한 결과 국교가 회복되었고 1607년 조선국왕은 일본에 사절을 파견하였습니다. 이것이 조선통신사의 시작이며, 통신사 일행은 외교 사절로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일본을 방문하였습니다. 에도 막부는 쇼군이 바뀌면 쓰시마 번사를 부산에 파견해 그 사실을 알리고 통신사의 파견을 요청했습니다. 쓰시마(대마도)사절단은 부산의 왜관에서 기다리며 한성에서 통신사 일행이 오면 그들을 쓰시마로 안내 하였습니다. 쓰시마에서 에도(도쿄)까지의 안내와 경호도 쓰시마번이 담당하였습니다. 막부는 조선 국왕과의 국서를 주고 받고 통신사를 접대하며 국내 외에 그 위신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거액의 비용을 아낌없이 사용하였고 최고 수준의 의례로 대접했습니다. 또한 일반인이나 학자, 문화인의 사이에서도 통신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 통신사가 통과하는 각 지역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에도시대 조선 통신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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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수 | 서기(원호) | 조선력 | 최고권력자 | 조선정사 | 목적 |
제1회 | 1607년 | 선조40 | 도쿠가와 히데타다 | 여우길 | 일·조선 국교 회복, 포로반환 |
제2회 | 1617년 | 광해군9 | 도쿠가와 히데타다 | 오윤겸 | 포로 반환, 오사카 항구에서 국내평정 축하연 개최 |
제3회 | 1624년 | 인조2 | 도쿠가와 이에미쓰 | 정욱 | 이에미쓰 책봉축하, 포로반환 |
제4회 | 1636년 | 인조14 | 도쿠가와 이에미쓰 | 임광 | |
제5회 | 1643년 | 인조21 | 도쿠가와 이에미쓰 | 윤순지 | 이에쓰나 탄생 축하, 닛코 도쇼구 축성축하 |
제6회 | 1655년 | 효종6 | 도쿠가와 이에쓰나 | 조연 | 이에쓰나 책봉축하 |
제7회 | 1682년 | 숙종8 | 도쿠가와 쓰나요시 | 윤지완 | 쓰나요시 책봉축하 |
제8회 | 1711년 | 숙종37 | 도쿠가와 이에노부 | 조태억 | 이에노부 책봉축하 |
제9회 | 1719년 | 숙종45 | 도쿠가와 요시무네 | 홍치중 | 요시무네 책봉축하 |
제10회 | 1748년 | 영조24 | 도쿠가와 이에시게 | 홍계희 | 이에시게 책봉축하 |
제11회 | 1764년 | 영조40 | 도쿠가와 이에하루 | 조엄 | 이에하루 책봉축하 |
제12회 | 1811년 | 순조11 | 도쿠가와 이에나리 | 김이교 | 이에나리 책봉축하 (대마도에 쇄국) |
조선통신사가 통과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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