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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April 20, 2012

the record paint that Drown the apparel of Korean envoy party visited to Tsushima in 1811

대마도를 방문한 조선통신사 일행의 복장을 그린 기록(1811년).

http://www.welcometojapan.or.kr/board/tong/

조선 통신사 -조선통신사란
에도 시대의 조선통신사는 1607년 일본을 처음 방문한 이래 1811년까지 200여 년 동안 12회에 걸쳐서 에도 시대의 일본 정부에 해당하는 도쿠가와 막부의 경사나, 최고 권력자인 쇼군이 바뀌는 시기에 방문해 조선 국왕의 국서전달과 도쿠가와 막부 쇼군의 답서의 교환을 진행하였습니다. 조선통신사 사절단의 수는 매회 300 ~500명으로 구성되는 대사절단이었다고 합니다.
조선통신사 일본 방문 400주년을 기념하는 2007년에는 한국과 일본의 각 관련 지역에서 [조선통신사 방일 400주년 기념 행사]를 다채롭게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통신사 방일 400주년 기념 행사에 관하여 한일 의원 연맹 합동총회에서 행사지원에 관해 양국 의원들이 합의하였고 또 후유시바데쓰조 국토교통성장관 겸 관광입국 장관과 김명곤 전(前)한국 관광문화부장관도 양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합의한바 있습니다. 이 코너에서는 각 지역에서 예정된 조선통신사 400주년 기념 사업에 관한 정보와 조선통신사와 연관이 있는 장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과거 선조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장소를 방문해 보시면 어떨까요?

조선 통신사란

조선은 역사적으로 고대부터 일본과의 관계가 깊은 나라였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의해 양국의 국교는 단절되었습니다. 에도 막부는 조선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쓰시마번의 중개로 교섭을 거듭한 결과 국교가 회복되었고 1607년 조선국왕은 일본에 사절을 파견하였습니다. 이것이 조선통신사의 시작이며, 통신사 일행은 외교 사절로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일본을 방문하였습니다. 에도 막부는 쇼군이 바뀌면 쓰시마 번사를 부산에 파견해 그 사실을 알리고 통신사의 파견을 요청했습니다. 쓰시마(대마도)사절단은 부산의 왜관에서 기다리며 한성에서 통신사 일행이 오면 그들을 쓰시마로 안내 하였습니다. 쓰시마에서 에도(도쿄)까지의 안내와 경호도 쓰시마번이 담당하였습니다. 막부는 조선 국왕과의 국서를 주고 받고 통신사를 접대하며 국내 외에 그 위신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거액의 비용을 아낌없이 사용하였고 최고 수준의 의례로 대접했습니다. 또한 일반인이나 학자, 문화인의 사이에서도 통신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 통신사가 통과하는 각 지역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에도시대 조선 통신사
회수서기(원호)조선력최고권력자조선정사목적
제1회1607년선조40도쿠가와 히데타다여우길일·조선 국교 회복, 포로반환
제2회1617년광해군9도쿠가와 히데타다오윤겸포로 반환, 오사카 항구에서
국내평정 축하연 개최
제3회1624년인조2도쿠가와 이에미쓰정욱이에미쓰 책봉축하, 포로반환
제4회1636년인조14도쿠가와 이에미쓰임광
제5회1643년인조21도쿠가와 이에미쓰윤순지이에쓰나 탄생 축하,
닛코 도쇼구 축성축하
제6회1655년효종6도쿠가와 이에쓰나조연이에쓰나 책봉축하
제7회1682년숙종8도쿠가와 쓰나요시윤지완쓰나요시 책봉축하
제8회1711년숙종37도쿠가와 이에노부조태억이에노부 책봉축하
제9회1719년숙종45도쿠가와 요시무네홍치중요시무네 책봉축하
제10회1748년영조24도쿠가와 이에시게홍계희이에시게 책봉축하
제11회1764년영조40도쿠가와 이에하루조엄이에하루 책봉축하
제12회1811년순조11도쿠가와 이에나리김이교이에나리 책봉축하
(대마도에 쇄국)

조선통신사가 통과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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