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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동이는 숙종을, 궁녀는 궁녀를 사랑했다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드라마 <동이>,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10.07.12 14:29l최종 업데이트 10.07.12 14:41l김종성(qqqkim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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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은상궁이 된 동이(한효주 분, 오른쪽)를 따르는 궁녀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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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동이 최 숙빈(한효주 분)의 궁궐 복귀를 계기로 MBC 드라마 <동이>의 주 무대는 다시 궁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궁녀들의 삶이 시청자들의 시야에 보다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지난 6일 방영된 제32부에서는 '왕과 잠자리를 가진 궁녀' 즉 승은상궁이 된 동이의 처소를 중심으로 궁녀들의 이러저러한 삶이 부분적으로 스케치되었다. 중전 장 희빈(이소연 분)의 눈치를 보느라 동이의 시녀가 되기를 꺼려하는 궁녀들의 모습, 장 희빈 측이 동이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퍼뜨린 괴질에 걸려 몸져누운 궁녀들의 모습, 동이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자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동이의 시녀가 되기를 자청한 감찰부 궁녀들의 모습 등등.
여느 사극과 마찬가지로 드라마 <동이> 역시 다분히 지배층 혹은 상전의 관점에서 궁녀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중전이나 후궁에게 전적으로 충성하고 그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는 궁녀들의 모습만 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급 궁녀의 시각에서 궁의 삶을 보여주는 장치는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궁녀의 삶, 아니 인간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性)과 관련하여 조선시대 궁중의 이미지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궁녀의 동성애에 관한 것이다.
실록에도 자주 기록된 궁녀들의 동성애
궁녀는 공노비와 마찬가지로 국가에 얽매인 신분인 데다가 국왕의 그늘 아래 있는 여인이라는 이유로, 국왕 이외의 남자와는 성관계를 할 수 없다는 법적 제약을 안고 있었다. 궁녀가 성관계를 할 경우에는 극형인 사형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점은 전직 궁녀는 물론이고 궁녀 밑의 무수리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그 같은 법규가 궁녀의 성문제에 대한 본질적 해법이 될 수는 없었다. 단 몇 년간이라면 모를까, 아예 평생 동안 성관계를 하지 말라는 금령이 제대로 지켜질 리는 만무했다. 이 점은 일부 궁녀들이 궐 밖으로 몰래 나가 고관대작들과 이성관계를 맺거나 아니면 일부 궁녀들끼리 궐 안에서 동성애를 한 사실 등에서 확인된다.
궁녀들 입장에서는 궐 밖에서 이성 상대방을 찾기보다는 궐 안에서 동성 상대방을 찾는 쪽이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다. 그래서 궁녀들의 동성애는 국가의 공식 역사서인 실록에도 자주 기록될 정도로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최 숙빈의 아들인 영조의 집권기를 다룬 영조 3년(1727) 7월 18일자 <영조실록>에서 그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사헌부(감사원 혹은 검찰청)의 정5품 관원인 조현명이 올린 상소문에 궁녀들의 동성애 실태가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예로부터 궁녀들이 어떤 경우에는 친척이라고 하면서 여염집의 아이들을 궁궐에 유숙시키고, 어떤 경우에는 대식(對食)한다고 하면서 요사한 비구니나 천한 과부들과 더불어 (궁궐) 안팎에서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궁녀들이 비구니나 과부와 더불어 '대식(對食)'이라는 관계를 맺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물론 궁녀들이 꼭 비구니나 과부와만 '대식'을 했던 것은 아니다. 뒤에 소개될 <연산군일기>에서 알 수 있듯이 궁녀들 간에도 '대식'이라는 행위가 벌어졌다.
궁녀 간 동성애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 '대식(對食)'
▲ 창덕궁 서향각에 모인 구한말의 궁궐 여인들. 가운데에 앉아 있는 여인이 순종의 왕후인 순정효황후 윤씨. 그 옆으로 후궁과 궁녀들이 서 있다. 일본 여인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 김용숙 저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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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식'이란 문자 그대로 하면 '서로 마주보고 식사를 한다' 혹은 '함께 밥 먹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이 단어가 그런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 이 말은 동성애를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말이 문자 그대로 잠만 자는 것을 의미하지 않듯이, '함께 밥 먹는다'는 의미의 '대식'도 단순히 밥만 먹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의미했다.
'대식'의 구체적 의미는 중국 한나라의 역사서인 <한서> 권97하(下)에 딸린 주석에 나타난다. 여기서는 '대식'을 두고 "궁녀들이 서로 부부가 되는 것을 대식이라고 하며, 서로 간에 질투가 대단했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대식'이란 남녀의 성 역할을 각각 분담하는 두 궁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동성애를 의미했다.
중국에서는 '대식'이란 단어가 나중에는 궁녀와 환관(내시)의 성관계를 의미하는 말로 발전했지만, <영조실록>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한국에서는 이 단어가 오래도록 궁녀 간의 동성애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sillok.history.go.kr)에서 '대식'이란 단어를 두고 "대식: 마주 앉아 먹음"이라고 지극히 단순한 해설을 붙인 것은 위와 같은 역사적 맥락을 간과한 것이므로 수정이 필요하다.
커플문화를 넘어 파벌 형성으로 연결되다
▲ 드라마 <동이> 속 숙종(지진희 분)과 동이(한효주 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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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유형의 동성애가 극소수의 궁녀들 사이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라 상당한 숫자의 궁녀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의 <영조실록>뿐만 아니라 조선 전기의 <연산군일기>에서도 궁녀들의 동성애가 상당히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거론된 데에서 그런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또 궁녀들 사이에서 일종의 동성애 문화가 형성된 데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연산군 10년 11월 8일자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궁녀들 사이에서 '친구'를 의미하는 붕(朋)자를 팔에 새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동성애 쌍방의 의리를 유지하기 위해 팔에 문신을 새겼던 것이다. 이는 이런 커플 문화가 형성될 정도로 동성애가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실록에 따르면, 이런 현상이 비단 동성애에서 그치지 않고 궁녀들 간의 파벌 형성으로 연결되어 궐내 비밀이 외부로 누설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 같은 동성애를 방지하기 위해 왕궁에서는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중 한 가지로서 해당 궁녀들의 몸에 낙인을 찍는 장치를 예로 들 수 있다.
연산군 11년(1505) 7월 13일자 <연산군일기>에 아주 짤막한 기사 하나가 있다. "두 궁녀를 밀위청(의금부 당직청)에 보내 '위법교붕'(違法交朋) 네 글자를 가슴에 새기도록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두 궁녀의 가슴에 '위법교붕' 즉 '법을 어겨 벗을 사귀었다'는 글자를 새기도록 한 것이다.
<연산군일기>의 전체 맥락을 볼 때, 두 궁녀가 그런 처벌을 받은 데에는 '동성애를 했다는 점'과 함께 '파벌을 형성해 궐내 비밀을 외부에 누설했다는 점'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위의 연산군 10년 11월 18일자 <연산군일기>를 함께 살펴볼 경우, 두 궁녀 역시 팔에 '붕'자를 새겼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두 궁녀의 가슴에 '위법교붕'이란 낙인이 찍힌 본질적 원인은 동성애 문제였다고 말할 수 있다.
상전과의 관계 속에서만 조명돼 왔던 궁녀의 삶
▲ 조선시대의 궁궐 내부. 사진은 경희궁 자정전 앞마당.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대문 방향으로 5~10분간 걸어가면 경희궁이 나온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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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를 막기 위한 또 다른 장치가, 궁중생활사 연구자인 고 김용숙의 저서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에 소개되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세수간(洗手間) 나인에서 고종의 후궁이 된 삼축당 김씨는 궁녀 시절에 소주방 나인인 한희순 상궁과 한 방을 썼다고 한다. 여기서 세수간이란 왕·왕후 등이 세수 혹은 목욕하는 데에 필요한 물을 준비하는 곳이고, 소주방이란 음식을 준비하는 곳이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왜 같은 처소의 궁녀들끼리 한 방을 쓰지 않고 세수간 나인과 소주방 나인이 한 방을 썼느냐'라는 것이다. 김용숙은 동성애를 방지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같은 작업장에서 근무하는 궁녀들끼리 한 방을 쓸 경우에는 이들이 더욱 더 친밀해질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 문제와 관련하여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궁녀들의 동성애가 꼭 이성애의 제약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이성교제를 금지했기 때문에 동성애가 나타난 측면도 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라는 점이다. 신체적 혹은 심리적 이유 때문에 이성애보다는 동성애가 더 자연스러운 궁녀들도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통 10세 이전에 궐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일평생을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이성과의 접촉이 단절된 금남(禁男)의 영역에서 살아야 하는 궁녀들의 삶에서 동성애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드라마 <동이> 속의 최 숙빈처럼 국왕의 승은을 입는 궁녀들은 극히 드물었다. 조선시대에도 TV가 있었다면, 궁녀들은 최 숙빈 같은 삶을 TV 속에서나 구경했을 것이다.
중전이나 후궁 같은 보스에게 전적으로 충성하는 궁녀의 모습. 보스가 누구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궁녀의 모습. 이제까지 우리가 사극에서 주로 관찰한 궁녀들의 모습은 대개 다 그러했다. 궁녀의 삶이 주로 지배층 혹은 상전과의 관계 속에서만 조명되었던 것이다.
한번쯤, 하급 궁녀의 관점을 철저히 유지하는 사극이 나온다면, 다시 말해 자신에게 부과된 성관계 금지 같은 봉건적 제약 속에서 스스로 인간의 삶을 찾으려고 고뇌하고 투쟁하는 하급 궁녀를 소재로 한 사극이 나온다면, 역사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한층 더 구체적이고 생생해질 수 있을 것이다.
태그:동이, 최숙빈, 대식, 궁녀, 동성애 태그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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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chi thinking)
i wonder that what the report tries to intend ????
my goggle translation might be broken............???
what or where is the conclusion from???
i think some korean look down to women for certain.
in joseon era,lady maids were had fan with court Yanban;noble, if her betrayal was found, she would be get a capital offense by beaten till die.
but queen also had fan with young martin.....
historical document about women in joseon era was too much few than japan.
more importantly,there was not existed the literature....
joseon women were oppressed whole of high or 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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