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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ugust 22, 2012

Shooting,stabing,poisoning,South Korean military Slaughtered 380 people in one hour

ゴダイの虐殺(ゴダイのぎゃくさつ、英語: Go Dai massacre, ベトナム語: Thảm sát Gò Dài)とは、ベトナム戦争時の1966年2月26日にベトナムビンディン省で韓国軍が住民380人を虐殺した事件のこと[1]。地名の発音は、むしろ「ゴザイ」に近い。
고자이 양민학살 사건은 1966년 2월 26일 베트남 빈딘 성 의 떠이선현 고자이 마을 주민들이 대한민국 맹호 부대에 의해 대량학살 당하여 380명이 죽은 사건이다.[1][2]

Barbaric act of the Korean military during the Vietnam War


:マンセー名無しさん[] 2010/10/31(日) 11:37:15 ID:PRceV98B(10)
銃を撃って、刀で突いて、毒薬食べさせて、
1時間に 380人殺戮した韓国軍

[企画レポート] ベトナム民間である虐殺現場,香西村に行く 

金孝誠 記者

1966年2月26日朝、平和なベトナムのある村に砲弾が飛んで入った。
幾多のヘリが村の空をいっぱい埋め、緑の戦闘服を着た韓国軍が村で押し寄せて来た。
彼らは村人々を皆呼び起こして残忍に殺害した。
380人余りを殺すには 1時間しかかからなかった。
ベトナムで‘香西虐殺’と呼ばれるこの事件は、 ベトナム戦当時起きた幾多の民間虐殺事件の中一件に過ぎない。
切ない真実は長年の時間そっぽを向かれていた。
1990年代後半で言論はベトナム民間虐殺を扱い始めた。

‘侵略受ける民族’と自ら思って来た韓国の人々に民間である虐殺の真実は衝撃そのものだった。
(以下略)

ソース:Oh My News 2007-05-22 <韓国語>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1109


총 쏘고 칼로 찌르고 독약 먹이고
1시간 만에 380명 살육한 한국군
[기획리포트] 베트남 민간인 학살 현장, 고자이 마을을 가다
07.05.22 08:42l최종 업데이트 07.05.23 12:03l김효성(elchev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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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자이 마을 전경. 멀리 정자 모양 위령소와 위령탑이 보인다.
ⓒ 김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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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2월 26일 아침. 평화로운 베트남의 한 마을에 포탄이 날아들었다. 이내, 수많은 헬기가 마을의 하늘을 가득 메웠고, 녹색 전투복을 입은 한국군이 마을로 밀려들어왔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러모아 잔인하게 살해했다. 380여명을 죽이는 데는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고자이 학살'로 불리는 이 사건은 단지 베트남전 당시 일어난 수많은 민간인 학살 사건 중 한 건에 불과하다.

안타까운 진실은 오랜 시간 외면당하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에서야 언론에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다루기 시작했다. '침략받는 민족'이라고 스스로 여겨오던 한국 사람들에게 민간인 학살의 진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많은 한국 사람들이 학살지역을 방문하여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병원 진료 등 봉사활동을 통해 과거를 반성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베트남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침략받는 민족'이 벌인 민간인 학살


▲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KBS < HD TV 문학관> '랍스터를 먹는 시간'의 한 장면.
ⓒ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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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4일 KBS에서 방영된 HDTV 문학관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다뤄 화제가 되었던 작품으로, 민간인 학살 이후 현지인의 애환과 한국인과의 갈등을 작품 전체에 잘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 건석은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고 그들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지만,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베트남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다. 그러다가 한국군 학살지를 방문해 베트남 사람들의 애환을 듣는 것을 계기로 반성과 함께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상황 또한 이 드라마 주인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현재 과거 민간인 학살이 많이 발생했던 베트남 중부 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민간인 학살이 피부에 닿는 느낌은 한국에서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또한 베트남 사람들의 내면에는 한국군에 대한 혐오와 학살에 대한 애환이 담겨 있음을 항상 느낀다. 때문에 우리가 민간인 학살 문제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노력해야 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나는 앞으로 베트남 중부 지방의 수많은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루고, 이와 함께 베트남 사람들의 시각도 함께 실을 것이다. 또한 매년 학살 지역을 찾아오는 수많은 한국 사람들의 다양한 노력도 소개할 생각이다.

그날 악마처럼 들이닥친 '남조선' 군인들


▲ 고자이 마을 위령탑.
ⓒ 김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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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2일 토요일 아침. 나는 민간인 학살 현장을 취재하고 당시 생존자를 만나려고 고자이 마을을 방문했다. 이 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 빈딩성 떠이선현 떠이빈싸에 있다. 빈딩성 성도이자 과거 한국군 맹호부대의 주둔지였던 뀌년시에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논두렁 사이로 난 길을 가로질러 고자이 마을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40여 년 전 학살이 일어났던 고자이 마을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떠이선현에서도 시골에 속하는 고자이는 물소가 수레를 끌고 진흙길을 힘겹게 오가는 전형적인 베트남 농촌마을이었다.

그러나 이 곳이 무거운 장소임은 마을 중앙에 세워진 큰 규모의 위령탑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위령탑에는 수많은 희생자의 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중앙에는 '1966년 2월 26일 남조선군이 미국의 명령 아래 380명의 무고한 인민을 살해했다'는 글귀가 선명했다.

위령탑 맞은편에는 정자 모양의 위령소가 새로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뒤편 회랑에 그려진 그림이 참으로 끔찍하다. 맹호부대 마크가 선명하게 그려진 한국군이 악마같은 표정을 지으며 마을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총에 맞고 칼로 난자당하는 지옥같은 광경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피해자의 끔찍한 기억을 바탕으로 묘사된 그림에서 악마 같은 모습의 한국군 병사가 40년 전에 일으킨 무시무시한 사건을 이 곳 사람들이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생존자 증언①] "모조리 죽고 3명만 살아남았어"



▲ 위령탑 뒤편 회랑에 그려진 한국군의 무서운 모습.
ⓒ 김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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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에게 물었더니, 고자이 학살 사건의 생존자가 아직도 마을에 살고 있다고 했다. 수소문한 끝에 위령탑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사는 호지에우(86)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호지에우 할아버지는 당시 45세 중년이었고, 사건 당일 10살 난 아들과 함께 방공호에 숨어서 겨우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부인과 자식 넷을 모두 잃었다고 했다.

"그날 아침, 먼저 헬리콥터가 잠자리 떼처럼 날아왔어. 곧 포탄도 날아왔고. 포탄이 공중에서 폭발해서 많은 사람이 죽었지. 곧 있으니 남조선 군인들이 들이닥치더군.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으더니, 총으로 쏘아죽이기도 하고 칼로 찌르기도 했어. 독약을 먹이기도 했지.

그 때는 전쟁 중이라 마을마다 집 아래 땅굴을 파놓았어. 나는 그때 10살 난 아들놈이랑 숨어있었지. 다른 마을 사람들도 땅굴에 숨었지만, 남조선 군대가 탐지견을 써서 숨은 사람들을 찾아내는 바람에 모조리 죽었지. 우리 마을에서는 단 3명밖에 살아남지 못했어."

워낙 오래 전 일이어서인지, 할아버지의 말투에서는 고통이나 슬픔은 배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남은 아들은 굳은 표정으로 당시 어머니가 살해당했다며 하소연했다.

"어머니가 당시 돌아가셨지만, 위령탑에는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어. 난 아직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 아마도 시체가 심하게 손상돼서 그런 것 같기도 해."

[생존자 증언②] 짐승들이 시체 뜯어먹는 생지옥


▲ 고자이 마을 위령탑에 빼곡하게 새겨진 희생자 명단.
ⓒ 김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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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지에우 할아버지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학살지가 있으며 거기서도 단 2명이 살아남았다며, 원한다면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차를 타고 2㎞ 떨어진 다른 마을에 도착해 두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베트남 정부 공식 기록에는 사건 당일이 1966년 2월 23일로 기재돼 있으며, '쯩진 할아버지의 마당'이 학살 장소로 기록된 지역이었다. 고자이 마을과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같은 떠이빈싸의 '빈안'에 속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 엄연히 다른 마을이었다. 이 곳에서는 모두 90명의 민간인이 살해되었다고 한다.

쩐남(82) 할아버지는 방공호에 숨어있던 20명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한다. 한국군이 탐지견으로 수색해 방공호를 쉽게 발견했고 사람들을 모두 끌어냈지만, 할아버지는 방공호 안에 홀로 숨어 있었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한국군은 방공호 안을 다시 확인하지 않았고 끌려간 나머지 19명은 살해당했다고 한다.

"우리 빈안 지역에서 학살은 전부 3군데에서 일어났어요. 첫번째는 호지에우 할아버지가 사는 고자이 마을이고, 두번째는 내가 사는 이 마을, 그리고 세번째는 우리 마을 외곽 변두리에서 일어났지.

남조선 군대는 그날(할아버지는 음력 3월 11일로 기억하고 있었으나 정부 공식 자료에는 양력 2월 23일로 기록됨, 양력과 음력을 병용하는 데서 오는 오류인 듯함)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여기로 와서 사람들을 죽였어. 여기서만 90명이 죽었지. 그런데 이상한 건 그해 음력 1월 22일과 2월 5일에도 남조선 군대가 마을에 들어왔어. 하지만 사람들을 죽이지는 않고 포탄으로만 공격했지."

한국군은 시체들을 태우고 유유히 사라졌고 사람들은 시신을 수습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했다. 마을 사람이 대부분 죽었으니 유가족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썩은 시체를 짐승들이 뜯어먹는 지옥같은 광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또한 당시 생존자도 심각한 상처를 입고 있었기에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고 했다.

"슬픈 과거일 뿐... 한국사람 원망하지 않아"

두 할아버지에게 조심스레 한국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혹여나 아직까지 원망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그러나 두 할아버지의 말씀은 의외였다.

"슬픈 과거가 다시 돌아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지. 슬픈 과거는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 희생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나는 요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네. 한국에서 우리 마을에 학교나 병원을 세우고 지원하는 모습을 보니, 큰 원망도 조금씩 사그라지더군. 한국 사람을 더 이상 원망하고 있지 않다네."

실제로 한국 정부는 빈딩성 떠이선현에 중형 규모의 병원을 건설하고 있고, 고자이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떠이안 초등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대 베트남 개발원조를 대부분 전쟁 피해가 크고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베트남 중부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두 생존 할아버지들과 인사하고 나오는 길에, 지금까지 묵묵히 계셨던 또 다른 생존 할아버지가 나무가 우겨진 모퉁이를 가리키며, 가족들이 저기 숨어있다가 방공호를 덮었던 볏짚에 불이 붙는 바람에 모조리 타 죽었다고 말했다. 그 슬픈 장소를 곁에 두고 40여년을 살아오셨던 분들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차를 타고 다시 고자이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호지에우 할아버지가 내 손을 말없이 잡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푸석한 손끝에서 화해와 용서 그리고 이해가 담긴 할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한국인이기 때문에 느끼는 죄책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한국정부, 민간인 학살 공식 사과해야


▲ 고자이 학살 생존자, 호지에우 할아버지(오른쪽)와 쩐남 할아버지(왼쪽).
ⓒ 김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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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해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 "과거일 뿐이고 전쟁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또 내가 이번에 만난 유족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자기 가족이 무고하게 살해당했는데, 그 누가 쉽사리 용서할 수 있겠는가? 결국 그들의 마음을 풀어나간 것은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기억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수많은 한국인이었다. 또 한국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 또한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보다 더 많은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에서 일어난 만행의 진상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 정부의 노력 역시 공식적인 사과로 이어져야 하고, 베트남전 참전이 한국군의 용맹을 알리며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내용을 교과서에 삭제해야 할 것이다.

참전으로 베트남 사람들을 고통 받게 하고 한국의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피로 얼룩진 돈으로 이룩한 경제성장을 자랑하는 어이없는 광경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

이번 취재에 동행했던 당응우웬푹(34) 뀌년직업기술대학 영어교사는 뀌년시로 돌아오는 길에 넌지시 말했다. 그는 큰아버지를 한국군에게 잃었다.

"민간인 학살은 과거일 뿐이다. 당시 한국 군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서 짚고 나가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 쩐남 할아버지 마을 위령탑.
ⓒ 김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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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획취재기자단 기사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02819



1966년 베트남 고자이 마을의 비극
한국군 민간인 학살, 공식사과 있어야
07.04.07 12:09l최종 업데이트 07.04.07 18:07l김효성(elchev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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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자이 민간인 학살때 살해된 사람들.
ⓒ 김효성
나라가 분단된 것을 빼고는 그들에게는 부족할 것도, 더할 것도 없었다. 평화로운 농촌마을. 노인이 물소를 부려 논을 갈고 아이들이 논두렁을 마음껏 뛰어다녔던 마을. 전형적인 베트남의 마을의 모습이었다.

고자이(Go Day)는 베트남 중부 응아빈(Nghia Binh)성(현재의 빈딩성)의 떠이선현(Huyen Tay Son) 떠이빈 싸(Xa Tay Vinh) 의 안빈(An Vinh) 마을에 있던 작은 둔덕이었다.

안빈 마을에 한국군이 닥친 것은 1966년 2월 26일. 한국군은 마을 사람들 380명을 모아 불과 1시간만에 모조리 살육해버렸다. 생존자는 아무도 없었고 한국군은 만행을 저지르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것은 뀌년시에 위치한 빈딩성 통합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는 '빈안(안빈의 현재 이름) 지역 민간인 참살 보고서'의 고자이 지역에 관한 내용이다. 고자이 지역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내용은 1988년 7월 7일에 씌어져 해당 현, 성의 인민위원회의 인증을 걸친 정부 기록 자료이다. 해당 자료를 더 살펴보자.

'고자이는 1966년 빈안 싸 에서 일어난 참살 사건 중 가장 큰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2월 26일 남조선 군대는 빈안 싸 각 농촌에서 농민들을 소집했다. 또한 근처 싸의 농민들도 소집한 후에 피의 살인을 저질렀다.고작 1시간 동안 그들은 모두 380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 남조선 군대의 피에 목마른 야만성의 본질이 여기서 드러나게 되었다(중략)'

또한, 빈딩성 통합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집에는 고자이 지역 뿐만 아니라 빈딩성 전체에서 벌어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게다가 학살 일시, 장소 뿐만 아니라 민간인 희생자 수와 그 명단이 매우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자료집에 따르면, 빈딩성 내에서 공식 확인된 민간인 학살은 총 8차례로 이 과정에서 총 1581명이 희생된 것으로 밝혀졌다.


▲ 고자이 학살문건(빈딩성 통합박물관 소장)
ⓒ 김효성 빈딩성 통합박물관에서 자료정리업무를 맡은 흐엉(37)씨는 "이곳에 와서 이 자료를 본 한국인은 당신이 네 번째다. 처음 온 사람은 불과 한달 전에 온 구수정씨다. 이 자료가 당신과 당신의 나라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베트남 측의 정부기록이 명확한데도 이러한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는 한국인이 많지 않은 것은, 우리 스스로의 자기반성 부재와 베트남측 피해자의 문제제기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9년 구수정씨가 <한겨레21>을 통해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밝힌 이후, 양국에서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지만, 한국 정부는 구두로 유감을 표시했을 뿐,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고 있다.

또한 문제제기가 필요한 베트남의 유족들은 거의 대부분 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에서 생업에 종사하느라 한을 마음 속에만 담아두고 있다. 게다가 베트남 정부는 공식적으로 투자액 수위를 다투는 한국과의 관계악화를 염두하여 민간인 학살문제가 당분간은 이슈화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처럼 관련된 모든 일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지난 2월 빈딩성 떠이선현에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한국의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소속 회원 40여 명이 일주일간의 의료 봉사를 위해 이곳까지 날아온 것이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시골분들을 위해 '봉사' 가 아닌 '사죄' 하러 왔다는 그들에게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Barbaric act of the Korean military during the Vietnam War



http://patrick.guenin2.free.fr/cantho/vnnews/korea.htm
South Korea's dark Vietnam war legacy lingers

HANOI - In central Vietnam's Binh Dinh province stands a large gravestone with 1,004 names etched in the granite -- victims, local officials say, of a killing spree by South Korean troops during the Vietnam War. The locals say 1,000 people, mainly civilians, died in the six-week rampage in early 1966 -- including 380 in one day.

Now a Korean journalist who has spent several months documenting harrowing accounts of survivors from the alleged killings in Binh Dinh says it's time Seoul apologised for the brutality of its troops and paid compensation to victims. Ku Su-Jeong, who works part-time for South Korea's Hankyoreh21 magazine, plans to give a speech on her findings next month at a human rights conference on Korea's Cheju island, just before the 25th anniversary of the end of the war in April. Ku stumbled upon the gravestone while doing research on Seoul's involvement in the war, and began interviewing victims whose stories invoked memories of an infamous massacre of Vietnamese by U.S. troops at My Lai village two years later. Ku hopes her paper will draw attention to the issue, although an article she wrote for her magazine last May drew only a muted response from Korean veterans who insisted it was unclear if civilians were killed in Binh Dinh.

``South Koreans must know about these massacres. They cast shame on us and we have a duty to apologise,'' Ku said. During the Vietnam War, Seoul wholeheartedly supported U.S.-backed South Vietnam, afraid that Washington might withdraw American troops stationed in South Korea. About 300,000 Korean troops fought in the war, and they had a fearsome reputation among ordinary Vietnamese.

Women, Children and elderly killed

Three local officials, including one who said he survived the alleged killings, spoke at length in telephone interviews with Reuters about the events in Binh Dinh. The officials, who declined to be identified, said that in early 1966, Korean troops entered the then Binh An commune, a collection of villages within Tay Son district which they believed was a Viet Cong stronghold. The Koreans were intent on flushing out opposing forces but civilians bore the brunt of their actions, the officials said.

An official at Tay Son's Communist Party history unit said the attacks began in early 1966 and culminated in a massacre of 380 people on February 26, 1966, at a place called Go Dai.
``They (the Korean troops) herded people up onto the hill, shot them and threw grenades,'' he said. ``In some cases they tied old men up... until they died. They tore children apart and threw their (limbs) onto trees,'' he said, adding that some Viet Cong were also killed. The Korean troops threw some bodies into an existing 150-200 metre (500-650 ft) long trench, the official said. Survivors later buried most of the rest of the dead. The names of those who died at Go Dai, along with other known victims of the six-week killing period, were carved on the gravestone, the official said. The number totalled 1,004.

``There has been a lot of propaganda about this in the area, but because no correspondents witnessed it, I think that is why no one outside knows about it,'' he said. One local official who said he survived the attacks reported that the main victims were women, children and the elderly. ``It was all part of a Korean campaign called 'burn all, destroy all and kill all'. They aimed to clear the whole area, which is why they killed old people and children. They also killed cattle, burned houses and paddy (rice),'' he said. A People's Committee official in Tay Son district also confirmed the details, saying 1,200 people were killed. A government official in Hanoi said central authorities had later investigated what happened at Binh Dinh and compiled detailed reports, which showed more than 1,000 people were killed during the period, including around 380 at Go Dai.

Let bygones be bygones, says Vietnam

However, when asked for comment and to confirm the alleged killings, Vietnam's Foreign Ministry said it did not want to dwell on the matter. Reuters could not visit Binh Dinh to interview survivors. Foreign journalists need approval to report outside Hanoi, and the Foreign Ministry said in December Binh Dinh officials were too busy with the aftermath of recent floods to receive visitors.

``South Korean troops committed crimes against Vietnamese people. With humanitarian and peaceful neighbourly traditions, it is Vietnam's policy to close the past...,'' the Foreign Ministry said in a statement in response to questions. South Korea's embassy in Hanoi has declined to comment on the general issue of Korean actions during the Vietnam War. Asked if Reuters could view official reports on the killings kept at the War Crimes Department within the Ministry of Labour, War Invalids and Social Affairs, the Foreign Ministry said officials there were also too busy.

The accounts of the killings by South Korean troops in Binh Dinh come not long after Seoul launched a probe into an alleged massacre at a village on its own soil by U.S. soldiers in the early days of the 1950-53 Korean War. Villagers and U.S. veterans were quoted as saying hundreds of innocent people were killed by the U.S. military at No Gun Ri. Professor Chun Kyung-soo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who has spent years researching the role of Korean troops in Vietnam, feels there is a double standard.

``This issue (of Korean actions in Vietnam) has long been very sensitive in Korea,'' Chun told Reuters. Publicity about alleged Korean massacres during the Vietnam War stands in sharp contrast to the events on March 16, 1968, when U.S. troops commanded by Army Lieutenant William Calley entered My Lai village and gunned down 500 civilians. That massacre reverberated around the world when it was exposed and became synonymous with the horror of the conflict.

Seoul expressed "regret" over wartime actions

During a visit to Hanoi in 1998, South Korean President Kim Dae-jung expressed regret over Korean actions in the Vietnam War, but he did not apologise. Vietnam responded by saying it sought no apology from any nation that fought on its soil. Long-time Vietnam watchers say Hanoi does not like to highlight specific horrors from decades of wars against the French and then the U.S.-backed South Vietnam.

Carl Thayer, an expert on Vietnam at the Asia-Pacific Center for Security Studies in Hawaii, said the killing of civilians by Koreans had largely faded from view because the Vietnam War was mainly seen as an American war. ``Vietnamese propagandists always make a distinction between the American government and the American people,'' he said. ``In their view the Vietnam War was a war launched by a wicked government. Koreans, Thais and Australians were all lackeys. ``It is easier to point the propaganda finger at one enemy, several only clouds the issue,'' he said.

Hanoi also did not want historical baggage to weigh it down as it sought aid and investment from the region, Thayer added.

Reuters - January 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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