檀君神話という韓国のデタラ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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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国の始祖とされる檀君の銅像
韓国で10月3日というと、「開天節」という名の国民の祝祭日となっています。
この日はどういう日かというと、朝鮮民族の始祖とされる壇君(タンクン)が、朝鮮王朝を建国したとされる日(日本でいうこところの建国記念日のようなもの)です。
この檀君という人物は、親が桓因(ファンイン)という万物の支配者の子にあたる「桓雄(ファンウン)」です。
この桓雄が、天帝から使わされて、支那と満州との国境にある白頭山に降り立った。
で、その白頭山には、虎と熊の夫婦がいた。
桓雄は、夫の虎を追い払い、祭壇の上で熊女(ウンニョ)を犯して子を儲けた。
その子が檀君で、祭壇の上で授かった子だから「檀君」と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
檀君は、神の血と熊の血がまじったとても強くて立派な大人に育ち、支那の堯帝が即位して50年目のときに、白頭山を後にして平壤にやってきて、そこを都と定め、その国を朝鮮と呼んだ。
これが朝鮮のはじまり、とされています。
この平壌を都に定めた年が、紀元前2333年(いまから4344年前)の10月3日で、だから朝鮮半島では、この日を起点とする檀君紀元(西暦+2333年)が、昭和36(1961)年まで使用されていました。
そしてこの檀君は、周の武王が即位した年に、箕子(キジャ)が朝鮮の統治者として周からやってきたときに、支那人から隠れて山の神となった。
このとき、檀君の年齢は1908歳であったとされています。
北朝鮮では、平成5(1993)年に、平壌でこの檀君の骨が見つかったと発表し、また韓国では、国定教科書で檀君の存在を「史実」として子供達に教えているのだそうです。
なぜ「史実」なのかというと、韓国の歴史が非常に長いことを示すためなのだそうで、それが教育指導要領になっている。
そして日本では一部の学者が、古事記、日本書紀に出てくる天孫降臨の瓊々杵尊(ニニギノミコト)とは、この檀君の父親である桓雄のことであり、檀君というのが神武天皇である、などと馬鹿げた主張をしている者がいるのだそうです。
ところがこの檀君、史記や三国史記などの支那の史書には、まったく登場せず、初めて朝鮮の歴史書に登場するのが、なんと寿命が1908歳というのも、誰がどう考えても異常です。
加えて韓国では、この檀君が、1287年に朝鮮半島で編纂された「帝王韻紀」という書物に記録があるというのだけれど、その書は残念ながら現存していません。
現存する書籍で、檀君の名が初出するのは「桓檀古記(かんだんこき, 朝: 환단고기)という書物で、この本は、超古代からの朝鮮半島の歴史を詳細に書き綴ったものです。
けれどこの本は、書いたのが桂延壽という人で、最初に出版されたのが明治44(1911)年です。
現行版の「桓檀古記」は、昭和24(1949)年に書かれたもので、出版が昭和54(1979)年です。
そして内容をみると、清の嘉慶5年(1800年)に命名された「長春」という地名の表記があったり、男女平等、父権など、近代になってから登場した社会用語がそのまま使用されている等、笑っちゃうくらい、明らかに20世紀に入ってから作られた偽書であることが確実視されている。
要するに、明治にはいり、日本が韓国を併合(日韓併合、明治43年)した後、コリアンの桂延壽がたぶん愛国心からだとは思うのだけれど、日本の記紀を真似て、「ウリたちの国の方が日本の倍くらい古い歴史があるんだぞ」とばかり書きなぐってできあがったのが、檀君神話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
そうそう、ちなみに北朝鮮が平成5(1993)年に見つけたと発表した檀君の骨ですが、「電子スピン共鳴法」による年代測定で、5011年前のものとだと分かったために、檀君は実在の人物と発表されたのだそうです。
ところが、5011年前では、檀君神話に基づく檀君朝鮮の建国年と667年もの違いがある。
加えて、年代測定に電子スピン法を用いたというけれど、その詳細な解析方法については、まるで詳細が公表されていない。つまりこれもでっちあげのねつ造話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
それにしても、民族の誇りを思う気持ちはわからないではないけれど、他人の女房を寝取って子を孕ましただの、その女性が熊だったの、1908年も生きただの、それを韓国の正史として子供達に教科書で教えているだの、なんだかなーと思うのは私だけでしょうか。
ついでに申し上げると、日本の建国は、神武天皇が即位した紀元前660年です。
この年から起算して、今年(2011年)は、皇紀2671年となる。
そして日本では、いまから1万6500年前の土器が青森県大平山元1遺跡から発見され、また出雲氏の砂原遺跡からは、いまから12万年前のものとみられる石器が出土しています。
そして古代文明の発見されている土地は、世界中どこの古代遺跡でも、すべていまでは砂漠化している。
これは人類が火を使うために木を伐採したためだけれど、日本では、古くから植林文化があって、森林は現代においても、日本の国土の70%を覆っています。
木を植えるという文化は、日本独自のもので、古くはスサノオのミコトと一緒に天下ったイタケルのミコトが、九州から東北まで植林してまわったとされています(なぜか朝鮮半島には行かなかった)。
そして現代でも、陛下がお手ずから植樹祭を執り行なう。
そして日本にある山々の木々は、そのほぼ全て、その一本一本の全てが、私たちの父祖によって植樹された木々なのです。
日本は、何のねつ造も必要がないほど、古い歴史と伝統をもった国です。
その日本に、私たちは産まれた。
そして私たちは、未来を生きる子供達に、この豊葦原の瑞穂の国をちゃんと残し、伝える義務をもっている。
絶対に、この日本を、檀君神話の国などに渡してはいけない。
そう思います。
↓銅像に刻まれている文字
통일기원국조단군상(統一祈願國祖檀君像)
한국의 위대한 역사 (桓檀古記)
◆'환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의 내용은? 이 책이 소개하는 우리 고대사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 역사의 시발점이 1만 년 전 가까이 올라간다. 그 강역도 대단히 넓다. 세계 문명의 시원(始源)이 한민족에게 있다고 여겨질 정도다.
▲ 중국 지린성(吉林省) 왕칭(汪淸)에 세워진 웅녀의 석상. 단군신화에 등 장하는 환웅의 부인이자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는‘환단고기’에선‘웅씨 의 딸’‘곰족의 우두머리 여인’으로 기록돼 있다. / 조선일보 DB '삼성기'에 따르면 단군신화에서 단군의 할아버지로 등장하는 환인(桓仁)이 천해(天海) 동쪽에 환국(桓國)을 세웠다. 영토가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였고 12개의 나라로 구성된 연방국가였다. '천해'를 바이칼호로, 12환국 중 하나인 수밀이국(須密爾國)을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을 낳은 수메르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삼성기'는 7명의 환인이 재위하는 동안 환국이 3301년 또는 6만3182년 동안 지속됐다고 썼다. 환국 말년에 아들인 환웅(桓雄)이 태백산 신단수로 가 웅씨(熊氏)의 딸과 결혼하고 백성을 교화하며 배달국(倍達國)을 세웠다. 배달국은 18명의 환인이 1565년 동안 다스렸다. 그 중 14대 자오지환웅(慈烏支桓雄)이 바로 치우천왕(蚩尤天王)이다. 치우천왕은 중국 신화에서 삼황오제의 한 사람인 황제(黃帝)로 등장하는 헌원(軒轅)과 73차례 전쟁을 벌여 모두 이겼다.('삼성기'와 '태백일사') '단군세기'는 이후 단군왕검(檀君王儉)이 배달국을 계승한 새 나라를 아사달에 열고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고조선)이라 했다고 기록한다. 조선은 2대 부루, 3대 가륵, 4대 오사구 단군을 거쳐 마지막 고열가 단군까지 모두 47명의 단군에 의해 2096년 동안 존속했다. 당시 한반도와 중국 동북 대부분의 지역이 조선의 영역이었다. 조선을 계승해 북부여를 세운 해모수가 단군의 지위에 올랐고 7대 주몽이 고구려를 세웠다.('북부여기') '환단고기'와 유사한 내용을 지닌 역사서가 '규원사화(揆園史話)'와 '단기고사(檀奇古史)'다. 두 책 모두 다른 사서엔 없는 고조선 역대 단군의 재위 기간과 치적을 기록했다. 이 세 권의 책은 한마디로 '재야사학계 상고사 복원의 3종 세트'라 할 만하다.
◆어디 있다가 20세기에 출현했을까 교과서에 등장하지 않는 이 책들의 존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이며
▲단군조선의 역사가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고 배워 온 많은 사람의 상식체계에 혼란을 일으킨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환단고기'의 일부인 '삼성기'란 책은 조선 초기까지 실제로 존재했던 책과 이름이 같다. '세조실록'에는 1457년(세조 3) 임금이 팔도관찰사에게 압수령을 내린 책들 중에 이 책의 이름이 등장한다. '환단고기' 첫머리의 범례(凡例)를 보면 '삼성기'는 신라의 안함로(安含老)와 원동중(元董仲)이, '단군세기'는 고려말의 이암(李�V)이, '북부여기'는 같은 시기 범장(范樟)이, '태백일사'는 이암의 현손 이맥(李陌)이 지은 것이라고 돼 있다. 이 책들을 '환단고기' 한 권으로 엮은 사람이 평북 선천 출신의 대종교도 계연수(桂延壽)였다고 한다. 계연수는 1911년 묘향산 단굴암에서 이 책을 필사했는데 독립운동가인 홍범도와 오동진이 여기에 자금 지원을 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이 책이 곧바로 공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연수는 1920년 사망하면서 '한 간지(干支·60년) 뒤에 발표하라'고 제자인 이유립(李裕��)에게 유언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 사이 이유립이 한 차례 계연수의 원본을 분실했다가 다시 필사했다는 얘기도 있다. 마침내 '환단고기'는 1979년 영인본 형태로 세상에 등장한다. 필사본 '화랑세기'가 공개되기 10년 전의 일이었다. 일본인 가시마 노보루(鹿島昇)가 1982년 일본에서 번역본을 출간했고 이것이 국내에 역수입되면서 비로소 큰 반향이 일어났다. '규원사화'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훨씬 이전이다. 1675년(숙종 1)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썼다는 이 책은 광복 직후 국립중앙도서관 직원이 서울의 한 책방에서 구입해 귀중본으로 등록했으며 이미 양주동 등의 학자가 일제시대에 필사본을 소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책의 서문에서 북애노인은 과거에 떨어지고 전국을 방랑하다 한 산골에서 '진역유기(震域遺記)'를 발견한 뒤 참고했다고 썼다. 이 책은 고려 초 발해 유민이 쓴 '조대기(朝代記)'를 토대로 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조대기'라는 책의 이름은 앞서 세조 3년의 기록에 나온다. '단기고사'는 서기 8세기 초 발해 시조 대조영의 동생인 대야발(大野勃)이 발해 글자로 편찬했다는 역사서로, 100년 뒤 황조복(皇祚福)이라는 사람이 한문으로 번역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원문' 자체가 없다. 대야발의 발해본과 황조복의 한문본 모두 전해지지 않으며 남아있는 자료는 1949년과 1959년에 나온 국한문본이다.
▲ (왼쪽부터) ‘환단고기’를 다룬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환국시대의 영토’라며 소개한 지도. / ‘붉은 악마’의 상징인 치우천왕. ‘환단고기’에서 14대 환웅으로 나온다.
세 책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20세기 이후에 출간되거나 알려졌고
▲편자들은 '오래 전부터 전승돼 왔거나 전승된 책을 참고한 책'이라 말하며
▲선교(仙敎) 또는 특정 종교의 색채가 깔려 있고
▲1980년대 이후 재야사학계의 상고사 관련 주장에 중요한 논거가 되고 있는 동시에 강단사학계로부터는 위서로 치부되고 있다는 점들이다.
◆주류 역사학계 "말이 되는 얘기냐"
세 권의 책이 진짜라면 한국 고대사는 물론 세계 문명사를 송두리째 다시 써야 한다. 하지만 국내 주류 역사학계는 줄곧 '위서'라는 입장이다.
'환단고기'는 책의 출처가 불명확하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계연수가 썼다는 원본이 전해지지 않을뿐더러 편찬되고 나서 공개되기까지 70년이 걸렸다는 사실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숱한 어휘가 근대 이후에 나타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백력(시베리아)' '파나류산(파미르 고원)' '국가' '인류' '전세계' '세계만방(世界萬邦)' '남녀평권(男女平權)' 같은 용어가 고대 사서에 등장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위서론자들은 '나라가 형(形)이라면 역사는 혼(魂)'이라는 구절은 1915년 출간된 박은식의 '한국통사'를 인용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고고학적 근거다. '환국'이나 '배달국'이 존재했다는 시기의 동아시아는 신석기시대인데 어떻게 국가와 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가? 14대 단군인 고불(古弗) 때의 인구가 1억8000만 구(口)였다는 기록도 위서의 근거로 곧잘 지적되는 부분이다.
'규원사화'에 대해서도 주류 학계는 위서로 보고 있거나 '설사 숙종 때의 진본이라 해도 사료적인 가치보다 조선 후기 민족주의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부 내용이 성경 '창세기'와 비슷하다는 것 등이 그 논거가 되고 있다.
'단기고사'는 일부 재야사학자들마저 당혹해 하는 책이다. 이런 문장들 때문이다. '매년 부(府)와 군(郡)의 대표가 의사원(議事院)에 모이게 해… 백성에게 참정권을 허락하시옵소서.'(전단군조선 9세 아술) '만국박람회를 평양에서 크게 개최했다. 각종 기계를 제조했는데 자행륜차(自行輪車), 천문경(天文鏡), 자명종(自鳴鍾), 어풍승천기(御風昇天機), 흡기잠수선(吸氣潛水船) 등이 상을 받은 발명품이었다.'(11세 도해)
'지구도 태양계의 하나의 행성이나 본래는 태양에서 분리된 천체다'(13세 흘달) '입법 사법 행정기관을 세워 다스렸다'(후단군조선 7세 등올) '도덕률이라는 것은 그 의지가 항상 자기의 자율법칙과 함께 생기는 것입니다'(기자조선 29세 마간) 등의 문장도 사람들을 아연하게 했다.
'환단고기' 등이 과연 민족주의적인 책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고려 말 왜구와의 전투기록은 생략된 반면 곳곳에서 일본 건국신화나 신도(神道)와 비슷한 점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학자는 고대 단군민족이 일본까지 포괄하는 거대 문명권을 이뤘다는 기술이 대동아공영권이나 내선일체론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진서론자들 "식민사관은 이제 그만"
'환단고기' 등을 '진짜'로 보는 쪽은 "지엽적인 자구에 연연해 전부를 위작으로 단정할 수는 없고 모든 내용이 후세에 창작됐다는 증거는 없다"는 입장이다. 진서라는 근거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환단고기'와 '단기고사'에서 13대 흘달(屹達) 단군 50년조에 나오는 '오성취루(五星聚婁)'라는 기록이다. '다섯 개의 별이 누성(婁星·이십팔수의 16번째 자리에 있는 별들)에 모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1993년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 등이 수퍼 컴퓨터를 통해 추적한 결과 기록보다 불과 1년 뒤인 기원전 1733년에 금성·목성 등 다섯 개의 행성이 한 곳으로 모인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대해선 '고조선 건국 연대를 2333년으로 잡은 연구의 설정이 잘못됐다'는 등의 반론도 있었다.
'환단고기'에서 연개소문의 조부 이름을 자유(子遊)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도 진서라는 근거로 제시된다. 1923년 중국 뤄양(洛陽)에서 발견된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男生)의 묘비에 처음 나타난 이름이므로 책의 진가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서론자들은 '책이 1923년 이후에 쓰여졌다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규원사화'에 대해서는 1972년 이가원, 손보기, 임창순 등의 학자들이 '조선 중기에 쓰여진 진본'이라고 판정했던 것이 진서라는 논거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환단고기' 등이 지난 30년 동안 우리 사회와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중국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었던 '치우'는 '환단고기'의 존재를 거쳐 국가대표 축구 응원단의 상징이 됐다. 바이칼호에서 민족의 기원을 찾는 시각도 이 책과 무관하지 않았다.
고조선 시대에 한글과 유사한 문자인 '가림토(加臨土)'가 존재했다는 주장의 논거도 '환단고기'였다. 안시성 전투 직후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당 태종을 장안성까지 추격해 항복을 받아냈다는 이 책의 기록도 곧잘 인용됐다.
반면 '환단고기' 등을 위서로 보는 주류 학계의 의견은 대중들의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식민사학'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시인 김지하씨 등의 일부 문인들은 "고조선의 역사를 열지 않으면 미래를 위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없다"며 '환단고기'를 옹호하고 있다.
◆천부경·삼일신고·부도지·격암유록
이 밖에도 진서 여부가 의심받고 있는 옛 서적들은 많다. 환인이 환웅에게 전승했다는 81자의 '천부경(天符經)' 역시 20세기에 그 존재가 처음으로 알려진 책이다. '환단고기'의 편집자라는 계연수가 1916년 묘향산 벽에서 그 내용을 발견해 1917년 단군교로 보냈다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가 1929년 위작이라 말한 이후 역사학계의 자료로 쓰인 예는 거의 없다.
또 다른 고조선 관련 경전인 '삼일신고(三一神誥)'는 대종교 교주 나철(羅喆)이 1906년 서대문역 근처에서 한 노인으로부터 단군 초상화와 함께 전해 받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부도지(符都誌)'는 신라의 박제상(朴堤上)이 저술했다는 사서 '징심록(澄心錄)'의 일부라고 전해지는 책이다. 1953년 박제상의 55세손이 공개했고 1986년 번역본이 출간됐다. 전설상의 '마고(麻姑)'를 민족의 시조라고 기록한 이 책은 위서 논쟁조차 일어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 명종 때의 남사고(南師古)가 신인(神人)에게서 받았다는 '격암유록(格庵遺錄)'도 위서로 의심받는다. 이 책에는 국토 분단과 6·25사변을 예측했다고 해석되는 내용과 통일 한국이 동양 최고의 강대국이 된다는 예언이 적혀 있지만 '1960년대에 특정 종교의 지도자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책'이라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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