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4travel.jp/overseas/area/asia/korea/jeonju/travelogue/10172463/
伝統的韓国家屋(ハノンマウル)が集まっています。ワークショップも沢山あります。
Hair! Wig! Kisaeng!
기생(妓生) 혹은 기녀(妓女)
http://my-favorite-things.ldblog.jp/archives/cat_16898.html?p=6
Chima Jeogori in midnight Osaka Japan No.1473
My room is located in the town bar.
Rather than just bars, there are many Korean lounge,club and bar in the town.
in a Night, i am going to buy cigarettes.
It's about 3 minutes to the vending machine, i often can see hostess who wearing korean Chima Jeogori in the meantime.
there is a lot of older women,but many young and beautiful women.
However, their beauty seem to be uniform or artificial largely.
in such the sightsee,i sometimes as if i am dreaming.
but it is a landscape that is in real autumn 2009 undeniably .
in the Neon, with bright colors of Chima chogori is glamorous atmosphere combined.
in the street,an old man a little bit dirty dressed to go to buy a cigarette,that's me.
No.1473 夜のチマチョゴリ
僕の部屋は飲み屋街の中にある。
飲み屋街でもただの飲み屋ではなく、韓国系のラウンジやクラブが多い。
夜、タバコを切らせて買いに行く。
自販機まで3分くらいだが、その間によくチマチョゴリを着たホステスがいる。
年齢がいったヒトも多いが、若くてきれいな女性も多い。
しかし、その美しさは概ね人工的で画一的な美である。
そういう環境に身を置くと、夢を見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時々思う。
だが、その風景は紛れもなく現実の2009年秋なのだ。
ネオンに、チマチョゴリの鮮やかな色彩が相まって華やかな雰囲気を醸し出す。
その中を小汚い恰好でタバコを買いに行くおっさん。
それが僕だ。
http://cafe.daum.net/kimGallery/8pbX/810?docid=o3ty8pbX81020090621212059
[스크랩] 송인(送人)| ◈【중국 書畵】
春剛(金永善)|조회 47|추천 0|2009.06.21. 21:20
大同江上送情人 楊柳千絲不繫人
含淚眼着含淚眼 斷腸人對斷腸人
(대동강상송정인 양류천사불계인
함루안착함루안 단장인대단장인)
대동강 위에서 고운 님 이별할 제
천만 가지 실버들로도 우리 님 매어두지 못해
님과 내, 눈물 머금은 채 서로 마주 보고
애달피 울며불며 이별이로다
※ 임진왜란 '2대 의기(義妓)'로 꼽히는 기생 계월향(桂月香)의 詩다.
※ 의기(義妓) 계월향(桂月香)의 초상화. 한지에 그린 채색화로 기생을 기린 초상화로는 처음 발견된 작품이다. 고미술품수집가 안병례(46)씨가 일본 교토(京都)에서 입수해 조선일보(2007년 2월 3일자)에 처음 공개했다.
그림에는 "1815년 그린 것으로, 그를 기리는 사당(장향각·藏香閣)에 걸고 1년에 한 번씩 제사를 지냈다"고 적혀 있다. 또 상단에는 '義妓 桂月香(의기 계월향)'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공적을 기리는 글을 한자로 가득 적어 놓았다.
※ 계월향은 기생으로 임진왜란 때 평양성에서 평안도 방어사 김응서(金應瑞/일명 金景瑞) 장군을 도와 왜장 고니시 히(小西飛)를 죽이고 순절(殉節)했다. 본명이 월선(月仙)인 계월향은 진주(晋州)의 논개(論介), 가산(嘉山)의 홍련(紅蓮)과 함께 의기(義妓)로 널리 알려져 있다.
1592년 6월 중순 왜적이 평양성을 함락하였을 때 계월향은 미처 피난가지 못하고 성안에 남게 되었다. 게다가 기생의 신분이라 왜적의 시중을 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왜적에게 시중을 들면서도 수시로 적정을 탐지해 아군에 넘겨주었다.
그러던 중 평소 자신이 따르던 평안도방어사 김응서 장군을 몰래 적진으로 안내해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장인 고니시 히(小西飛)의 목을 베고 성밖으로 탈출케 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응서 장군은 무사히 성을 빠져나왔으나 계월향은 적에게 잡힐 처지에 놓였다. 그는 적에게 잡혀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목숨을 버릴 결심으로 가지고 있던 칼로 배를 갈라 장렬히 순사했다 한다.
전란이 끝난 뒤 평양 사람들은 모란봉 기슭에 <義烈祠(의열사)>라는 사당을 짓고 비를 세워 계월향의 애국충정을 기렸다. 또한 그가 배를 갈랐다는 고개를 '가루개', 그 일대를 '월향마을'이라 불렀다.
북한은 1955년 가루개 일대를 포괄하는 인흥1동 일부와 인흥3동 일부, 기림1동 일부 지역을 통합해 '월향동'으로 개칭했다.
지금 평양시 모란봉구역 월향동의 옛 기림리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월향미용', '월향리발', '월향식료품' 등의 간판을 볼 수 있다. 이들 간판에 등장하는 '월향'은 모두 계월향(桂月香)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 평양 연광정(練光亭) 옆에 세워져 있는 계월향비(碑)와 설명문 표석.
※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은 <계월향에게>라는 제목의 시를 지어 그의 충정과 의절을 노래했다.
"계월향이여, 그대는 아리땁고 무서운 최후의 미소를 거두지 아니한 채로 대지(大地)의 침대에 잠들었습니다. 나는 그대의 다정(多情)을 슬퍼하고 그대의 무정(無情)을 사랑합니다. 대동강에 낚시질하는 사람은 그대의 노래를 듣고, 모란봉에 밤놀이하는 사람은 그대의 얼굴을 봅니다. …"
출처 :청경우독(晴耕雨讀) 원문보기▶ 글쓴이 : 소요유逍遼遊
http://hiburanasia.blogspot.jp/2010/09/kisaeng.html
Kisaeng Modern
Sangat sedikit rumah-rumah atau padepokan kisaeng tradisional yang beroperasi di Korea, karena pelaku tradisi serta tari-tari sudah terlupakan selamanya. Beberapa perusahaan atau perkumpulan bisnis di Korea Selatan kadang-kadang mengundang para rekan bisnis asing ke rumah kisaeng, namun tempat yang dimaksud bukanlah seperti di zaman dahulu, namun dengan interpretasi yang lebih moderen.
(mochi;oh my god!!
her style is absolutely for queen in joseon dynasty. she is not a prostitution.
she wears red deluxe with stitches,rose flowers?,its very beautiful,
but there had not existed suck the cloths had beautiful stitches in Joseon era....
nothing at all of actual stuffs,not painted works........
)
彼女の衣服、髪型は李氏朝鮮時代、女王の正装です、기녀(妓女)ではありません!
赤の薔薇花柄刺繍のローブの刺繍、歴史的史実ではありません)
http://www.flickriver.com/photos/tags/kisaeng/interesting/
Suwon Korean dance performance sword dance Suwon South Korea by Derekwin
Corean beauty by Cornell University Library
Gesang School (i.e. kisaeng school) by Cornell University Library
Dancing girl by Cornell University Library
Korean Teahouse by dok1
Kisaeng at Moran Hill, 1930s by Kernbeisser
Kisaeng dancing, c1910 by Kernbeisser
Kisaeng by diannelab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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