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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February 29, 2012

traitor Taejo of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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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チャングムの誓い」「朱蒙」「太王四神記」「淵蓋蘇文」「大祚栄」「イサン(正祖大王)」など、ここ数年韓国では、歴史ドラマが真っ盛りだ。

ところが本来イの一番でドラマ化されるべき、朝鮮王朝の初代、李成桂を主人公にしたドラマが、なぜか存在しない。

朝鮮王朝の建国は1392年で、日本に併合される1910年まで続いた。いい悪いは抜きにして、朝鮮半島の歴史上、最も重要な王朝だろう。そんな李氏朝鮮を建国したのが李成桂だ。

朝鮮半島の歴史上、李成桂は最重要人物といっていい。そんな李成桂が、どうしてテレビドラマや映画の主人公にならないのか?

まあその理由は、完全に察しがついているのだが。(笑)

李氏朝鮮は、表向き、中国以上の儒教国家といわれてきた。しかし世界一の儒教国家であるはずの李氏朝鮮だが、その建国者は儒教国家にあるまじき、主人殺しの卑劣な男だった!李成桂は高麗の将軍だったが、主人である高麗王を3人も殺し、王位を略奪した。

モンゴル王朝だった中国の元朝末期、元と新たに勃興した漢民族の明は熾烈な戦いを繰り広げた。当時元の属国だった高麗(元寇は、この主従ペアだった)は1388年、元への加勢として明討伐軍を遼東半島に向けて派遣した。その明討伐軍の副将が李成桂将軍だった。ところが李成桂は途中で引き返し、高麗王から任された明討伐軍を使って、高麗王を裏切るクーデターを挙行した。

当時25歳だった32代高麗王王禑 (おうう)は廃位させられ、王禑 の7歳の息子が李成桂の傀儡として即位(33代高麗王王昌)した。しかしこの幼王は8歳になった翌1389年、父の王禑 とともに李成桂によって殺害された。その後李成桂は、20代高麗王の7世孫という高麗王家遠縁の人物を王に担ぎ上げるが、3年後の1392年、王と皇太子をまたもや殺害した。そしてついに李成桂は高麗王朝を完全に乗っ取り、自ら高麗王として即位した。(1392年)

しかし高麗は王氏の王朝であり、李成桂は王氏ではない。元を駆逐した明の朱元璋(明の初代皇帝)は李成桂に対し、国名を変えるよう命令を下した。その命令に対し、李成桂は「和寧」と「朝鮮」という2案をもって、朱元璋にお伺いをたてた。そして朱元璋は「朝鮮」を選び、朱元璋は李成桂に「朝鮮」を下賜した。

「朝鮮」の名づけ親は、江南の貧農から皇帝にまで成り上がった明の朱元璋だった。

ちなみに李成桂は明から「権知朝鮮国事(朝鮮王代理)」という称号しかもらえなかった。朝鮮王という称号が明から下賜されたのは李成桂の孫の代(太宗)にあたる1401年になってからのことだった。

「朝鮮」という国名を朱元璋につけてもらうさい、李成桂は「和寧」という案も提案していた。この「和寧」は、朝鮮半島東北部にある地名で、李成桂の生まれ故郷だった。「和寧」は、女真(満州族)の居住地域だった。

朝鮮の歴史では表向き、李成桂は女真の居住地域(咸鏡道)に入植していた新羅人の末裔(全州李氏)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る。全州とはかつての百済故地で全羅道のこどだ。李成桂は子どもの頃、全羅道にいたのかなと思ったが、そんなことはない。李成桂も李成桂の父親も祖父も曾祖父も高祖父もみんな咸鏡道出身だ。

1388年、最初に高麗王を裏切った段階で、李成桂は王なってもおかしくなかった。ところがその後、高麗王の幼子を王につけたり、高麗王の遠縁の人物を王につけたりしている。李成桂は王にならなかったのではなく、王になれなかったのだろう。明も李成桂に「権知朝鮮国事(朝鮮王代理)」の称号は与えたが、朝鮮王の称号は、孫の代まで与えなかった。

女真(満州族)居住地域に生まれた李成桂は満洲人だったので、なかなか朝鮮王になれなかったのではないか?

この説は私が考え出したものではなく、以前からずっといわれてきた説だ。戦前の日本の研究者のあいだでは、むしろ定説だった。ところが戦後朝鮮人は、李成桂朝鮮人説を声高に唱えるようになり、現在にいたっている。

事実がどうのというより、朝鮮の建国者が満洲人では絶対まずいという、学問上ではなく、ナショナリズム上の要請だろう。

朝鮮人は歴史的に女真を差別してきたが、高麗王の臣下だった女真の軍閥(李成桂)が、高麗王朝を乗っ取ったというのが事実ではないか。

高麗の将軍李成桂は、主人である高麗王を幼子まで含め、3人も殺害した。ちなみに朝鮮人の姓で王という名前はほとんど聞かないが、李成桂が高麗王家である王氏一族を皆殺しにしたからだ。難を逃れた者も、殺害を恐れ名前を変えたので、朝鮮半島から王氏は絶滅した。

このように、李成桂は儒教的価値観では、絶対に許されない卑劣漢だった。そんな李氏朝鮮が儒教国家などというのは、噴飯ものなのだ!しかも李成桂は、おそらく朝鮮人ではなく、女真(満洲人)だ。

都合の悪いことは、なかった事にしたり、改竄したり、隠蔽するのが韓国朝鮮文化だ。

李成桂は、朝鮮半島の歴史上最重要人物だ。にもかかわらず、韓国の教科書は彼の詳細を伝えず、韓国は歴史ドラマが真っ盛り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李成桂のドラマがまったくない。

もはや言うまでもなく、李成桂のドラマをつくると、韓国の儒教文化は、木っ端微塵に吹っ飛びかねないからだ。李氏朝鮮が、ガチガチの儒教国家をつくりあげたのは、王家に徳があったからではなく、主殺しで王に成り上がった李氏の猜疑心の裏返しだろう。

百姓からのし上がった豊臣秀吉は、天下をとった後、百姓から刀を取り上げた(刀狩り)。「反逆」「裏切り」「卑劣さ」で成り上がった李成桂は、「反逆」「裏切り」「卑劣さ」を何よりも怖れたのだろう。だから儒教を奨励したのだ。

李成桂は、李氏朝鮮建国者だけのことはある。彼の人生には、半島人のエッセンスがぎっしりつまっている。



晩年の李成桂肖像画 衣装は龍が3匹だが、明の県知事クラスの意匠だ。(明の皇帝は9匹、皇族は8~7匹、大臣級が6~5匹、地方の役所の長が4~3匹)明の県知事クラスは龍3尾に赤い衣装なのだか、それより格下の青い衣装を着用している。李成桂の子孫にあたる朝鮮王の肖像画は、龍3匹に赤い衣装が定番だ。青い衣装は朝鮮王になれず、権知朝鮮国事だったことの反映だろう。もちろん事実上、李成桂こそが初代朝鮮王だが。李氏朝鮮は、王の着る衣装までご主人様(明)に完全支配されていた。

「대장금」 「주홍색어리석음」 「후토시(太) 오(王)4신기」 「깊은속뚜껑 소 후미(文)」 「대 祚사카에(榮)」 「이 선(Saint)(정조대왕)」등, 최근 몇년 한국에서는, 역사 드라마가 한창이다.

그런데 원래 이가 제일이어서 드라마화되어야 할, 조선 왕조의 초대, 이성계를 주인공으로 되게 한 드라마가, 왠지 모르게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 왕조의 건국은 1392년으로, 일본에 병합되는 1910년까지 이어졌다. 좋은 나쁘다는 제외로 해서, 한반도(朝鮮半島)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왕조일 것이다. 그런 이(李)씨 조선을 건국한 것이 이성계다.

한반도(朝鮮半島)의 역사상, 이성계는 최중요인물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 이성계가, 어째서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이 안되는 것인가?

자 그 이유는, 완전히 짐작이 가고 있는 것이지만. (웃음)

이(李)씨 조선은, 표면상, 중국이상의 유교국가라고 말하여져 왔다. 그러나 세계 제일의 유교국가일 것인 이(李)씨 조선이지만, 그 건국자는 유교국가에 있을 수 없는, 주살인이 비열한 남자이었다! 이성계는 고려(高麗)의 장군이었지만, 주인인 고려(高麗)왕을 3명도 죽이고, 왕위를 약탈했다.

몽골 왕조이었던 중국의 원조 말기, 원래와 새롭게 발흥한 한민족의 명은 치열한 싸움을 펼쳤다. 당시 원의 속국이었던 고려(高麗)(원寇는, 이 주종 페어이었다)은 1388년, 원래에의 가세로서 명토벌군을 랴오둥반도를 향해서 파견했다. 그 명토벌군의 부장이 이성계 장군이었다. 그런데 이성계는 도중에 되돌아가고, 고려(高麗)왕에게서 맡긴 명토벌군을 사용하고, 고려(高麗)왕을 배신하는 쿠데타(coup d'etat)를 거행했다.

당시 25세이었던 32대 고려(高麗) 오(王) 오(王)? (쫓는 う)은 폐위시켜져, 왕? 의 7세의 아들이 이성계의 괴뢰로서 즉위(33대 고려(高麗) 오(王) 오(王) 아키라(昌)) 했다. 그러나 이 유왕은 8세가 된 다음 1389년, 아버지의 왕? 과 함께 이성계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 후 이성계는, 20대 고려(高麗)왕의 7세 손자라고 하는 고려(高麗)왕가 먼 친척의 인물을 왕에게 메어 올리지만, 3년후의 1392년, 왕과 황태자를 다시금 살해했다. 그리고 결국 이성계는 고려(高麗)왕조를 완전히 탈취, 스스로 고려(高麗)왕으로서 즉위했다. (1392년)

그러나 고려(高麗)는 오(王)씨의 왕조이며, 이성계는 오(王)씨가 아니다. 원래를 구축한 명의 주원장(朱元璋)(아키라(明)의 초대황제)은 이성계에 대하여, 국명을 바꾸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에 대하여, 이성계는 「가즈(和) 야스시(寧)」와 「조선」이라고 하는 2안을 가지고, 주원장(朱元璋)으로 질문(방문)을 세웠다. 그리고 주원장(朱元璋)은 「조선」을 선택하고, 주원장(朱元璋)은 이성계에게 「조선」을 하사했다.

「조선」의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강남(江南)의 빈농에게서 황제에게까지 출세한 명의 주원장(朱元璋)이었다.

덧붙이자면 이성계는 명으로부터 「권지식 조선 국사(조선 왕대리)」이라고 하는 칭호밖에 받을 수 없었다. 조선 왕이라고 하는 칭호가 명으로부터 하사된 것은 이성계의 손자의 값(태종)에 맞는 1401년이 되고나서이었다.

「조선」이라고 하는 국명을 주원장(朱元璋)에게 기입하게 할 때, 이성계는 「가즈(和) 야스시(寧)」라고 하는 안도 제안하고 있었다. 이 「가즈(和) 야스시(寧)」는, 한반도(朝鮮半島) 동북부에 있는 지명으로, 이성계의 태어난 고향이었다. 「가즈(和) 야스시(寧)」는, 여자진(만주족)의 거주지역이었다.

조선의 역사에서는 표면상, 이성계는 여자진의 거주지역 (함(咸) 가가미(鏡) 길)에 이주하고 있었던 신라(新羅)인의 후예(전주 이(李)씨)이라고 하게 된다. 전주와는 그전의 백제(百濟) 고(故)땅에서 전라도(全羅道)의 こど이다. 이성계는 어렸을 때, 전라도(全羅道)에 있었던 것일까라고 생각했지만, 그러한 일은 없다. 이성계도 이성계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증조부도 고조부도 모두 함(咸) 가가미(鏡) 길출신이다.

1388년, 최초에 고려(高麗)왕을 배신한 단계에서, 이성계는 왕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후, 고려(高麗)왕의 어린 아이를 왕에게 취임시키거나, 고려(高麗)왕의 먼 친척의 인물을 왕에게 취임시키거나 하고 있다. 이성계는 왕이 안된 것이 아니고, 왕이 친숙해지지 않은 것일 것이다. 명도 이성계에게 「권지식 조선 국사(조선 왕대리)」의 칭호는 주었지만, 조선 왕의 칭호는, 손자의 값까지 주지 않았다.

여자진(만주족)거주지역에 태어난 이성계는 만주인이었으므로, 상당히 조선 왕이 친숙해지지 않은 것이 아닐까?

이 설(說)은 내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니고, 이전부터 쭉 말하여져 온 설(說)이다. 전전의 일본의 연구자의 사이에서는, 오히려 정설이었다. 그런데 전후 조선인은, 이성계 조선인설을 큰소리로 외치게 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실이 어떻게의라고 하는 것 보다, 조선의 건국자가 만주인에서는 절대로 좋지 않다고 하는, 학문상이 아니고, 내셔널리즘(nationalism)상의 요청일 것이다.

조선인은 역사적으로 여자진을 차별해 왔지만, 고려(高麗)왕의 신하이었던 여자진의 군벌(이성계)이, 고려(高麗)왕조를 납치했다고 하는 것이 사실이 아닐까?

고려(高麗)의 장군 이성계는, 주인인 고려(高麗)왕을 어린 아이까지 포함시키고, 3명도 살해했다. 덧붙이자면 조선인의 성으로 왕이라고 하는 이름은 대부분 듣지 않지만, 이성계가 고려(高麗)왕가인 오(王)씨 일족을 몰살로 했기 때문이다. 위난을 벗어난 사람도, 살해를 두려워해 이름을 바꾸었으므로, 한반도(朝鮮半島)에서 오(王)씨는 멸종했다.

이렇게, 이성계는 유교적 가치관에서는,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 비열한이었다. 그런 이(李)씨 조선이 유교국가등이라고 하는 것은, 분반 물건이다! 게다가 이성계는, 아마 조선인이 아니고, 여자 마코토(眞)(미쓰루(滿) 주인)이다.

형편의 나쁜 것은, 없었기로 하거나, 고치거나, 은폐하는 것이 한국 조선문화다.

이성계는, 한반도(朝鮮半島)의 역사상 최중요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과서는 그의 상세를 전하지 않고, 한국은 역사 드라마가 한창인에도 불구하고 이성계의 드라마가 완전히 없다.

이미 말할 필요도 없고, 이성계의 드라마를 만들면, 한국의 유교문화는, 산산조각이 남에 휙 날아갈 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李)씨 조선이, 딱딱의 유교국가를 만들어 낸 것은, 왕가에게 덕이 보온들이 아니고, 주죽이기에서 왕에게 출세한 이(李)씨의 시의심의 뒤짚임일 것이다.

백성에게서 올라 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천하를 차지한 후, 백성에게서 칼을 빼앗았다 (칼사냥). 「반역」 「배신」 「비열이지」에서 출세한 이성계는, 「반역」 「배신」 「비열이지」를 무엇 보다도 두려워한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유교를 장려한 것이다.

이성계는, 이(李)씨 조선 건국자만것은 있다. 그의 인생에는, 반도인의 에센스가 가득 막혀 있다.

만년의 이성계 초상화의상은 용이 3마리이지만, 명의 현 지사클래스의 의장이다. (명의 황제는 9마리, 황족은 8∼7마리, 각료급이 6∼5마리, 지방의 관공서의 대표가 4∼3마리)명의 현 지사클래스는 용 3마리에 빨간 의상일인가, 그것보다 하향조정이 푸른 의상을 착용하고 있다. 이성계의 자손에게 맞는 조선 왕의 초상화는, 용 3마리에 빨간 의상이 정평이다. 푸른 의상은 조선 왕이 친숙해지지 않고, 권지식 조선 국사이었던 것의 반영일 것이다. 물론 사실상, 이성계야말로가 초대 조선 왕이지만. 이(李)씨 조선은, 왕이 입는 의상까지 주인님 (명)에 완전지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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